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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에 대한 고찰

가을다움의 시간에 나다움을 고민하다 

 움에 대한 고찰     


‘움’은  우리를 고정시킨다.          

올가 토카르축은 『방랑자들』에서 '인간 그리고 인간이 삶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성좌와 같다. 우리가 사는 장소, 우리가 지닌 이름은 잊혀도 무방한 아무 의미 없는 귀속의 수단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사람의 정체성은 그가 살아가는, 살고 있는 장소성, 시간성과 떼어내어 설명할 수 없다.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것을 끌어와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성좌와 같다. 고착되지 않고 부유하고 싶은 삶과 떠도는 삶이 두려워 고착되기를 바라는 삶이 있다. 어떤 삶이든 삶은 우리에게 ‘움’을 요구한다.     


나다움, 당신 다움, 학생다움, 아내다움, 며느리다움, 스승다움, 윗사람다움, 친구다움, 수필가다움, 부모다움, 시민다움, 사람다움.... 역할로서의 ‘움’ 외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움’이 존재한다. 그리움, 아름다움, 키움, 자연스러움, 사랑스러움, 외로움, 괴로움, 고통스러움, 서러움, 그냥 움, 도처에 산재한 모든 움들..     

어떤 '움'은 자발적으로 내부로부터 발현되는 움이지만  또 어떤 움은 어쩔 수 없이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움이다. 어떤 ‘움’은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어떤 ‘움’은 익숙한 평상복처럼 다가온다.

 어떤 ‘움’은 발현되지 않았으면 싶고 또 어떤 ‘움’은 삶을 삶답게 하는 움이기도 하다.      


 식물에게는 움트는 시간이 있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움을 틔우느냐가 생존과 직결된다. 식물이 움을 틔우는 일은 식물다움을 획득하는 일이다. 어떤 하나의 식물이 그 식물에 합당한  '식물다움'을 선택하는 일은 오랜 진화의 산물일 것이다. 그 식물이 처한 환경에 적합한 움을 스스로 터득하는 일은 아름답지만 강요당한 움은 고통이다. 개나리에게 진달래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야만이고, 민들레에게 장미다움을 요구하는 것도 야만이다. 

    


계절들, 움은 봄에만 트는 것은 아니다. 여름다움, 가울다움, 겨울다움...

저마다의 움을 만드는 시간이다. 가을다움의 시간. 창밖엔 가을꽃이 만발하다. 코스모스다움.... 바람은 가을답게 불어온다. 베란다의 올리브 그린 빛 천막이 춤추듯 경쾌하게 펼럭인다. 나무들은 또 나무답게 가을다움을 즐긴다.  
    

세상 모든 것들에는 저마다 움트는 시간이 있다. 내가 움트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새싹처럼 두텁고 무거운 흙을 뚫고 세상에 나오던 그때가 움트던 시간이었을까

내 목소리를,  삶의 방향을 찾고 싶어 방황하던 시간이 움트던 시간이었을까

절망감과 허무 사이에 나다움을 저울질하던 그 시간이....

나 아닌 것들 사이에서 오직 ‘나’로 살기 위해 몸부림하던 그 시간이..     

이른 새벽 대학도서관 자판기 앞에서 동전을 넣던 시간이

동전을 빠르게 꼴깍 삼키던 공중전화 앞에서 수화기너머 누군가에게 빠르게 지껄이던 시간이...

더 이상 자라지 않던 화단의 동백나무의 꿈이 벽돌담에 묶여버렸던 시간이....

아버지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달리듯 타자기 위를 달리던 시간이.......


그래도

나는 여전히 움트고 있다.

어리석음의 움과 지혜로움의 움 사이에서

방황과 고정, 정지와 움직임, 희열과 불안, 전진과 후퇴, 용기 없음과 있음 사이에서

신호대기 중인 교차로에서

빨간 신호등 앞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달려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 사이에서...

나의 속도를 지키려는 빈약함과 용기 없음 사이에서     


달력이 몇 장 남지 않았다.

해마다 새 달력을 걸면서 다짐하곤 했다. 올해는 나답게 살아보겠다고... 

그 열망에 찬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거칠게 중력에 거스르는 연어의 비늘처럼 뜯겨나간 치열한 일상이었을까? 게으르고 지루하게, 무력하게 보낸 일상이 버려진 달력 뒤에 문신처럼 묻어나갔을까?     

숨 고르기와 각성이 필요한 시기다. 한 해의 끝자락에 접어들면 달력의 숫자들이 모두 ‘움’으로 도배되어 보일 것이다. 움이 나를 뒤흔드는 계절이 다시 올 것이다.         

       

내 안에 움이 있었다. 나답지 못한 일을 할 때는 내 안의 움이 일어나 울었다.

나 다움을 행할 때 내 안의 움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가을다움의 시간에 나는 나다움을 실천하는 중이다.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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