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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줄 모르는 질주와 불안 사이에서 '다움'을...

지누다움. 마담 '지누'는 고흐와 고갱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그려진다


<지누 부인의 초상> 그림의 주인공 마담 지누는 1888년 고흐가 아를에 머물 당시 즐겨 찾았던 '까페 드 라 갸르'의 주인이었다. ‘까페 드 라 갸르'는 고흐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밤의 까페(the Night Cafe)>의 실물이기도 하다.      

고갱이 아를에 오면서 화가 공동체를 꿈꾸며 시작된 두 사람의 동거 기간에  같은 시각, 같은 장소(노란 집)에서 같은 인물(마담 지누)을 그렸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마담 지누를 작품 속에 투영하였다,               

 '까페 드 라 갸르'의 주인 마담 지누.


고흐의 지누 부인은 몇 권의 책이 놓인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왼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다, 노란 집의 샛노란 배경이 눈에 들어온다. 술집 여주인 지누 앞에는 술 대신 책이 놓여있다. 상념에 잠긴 듯 시선은 먼 곳을 향한다.          


고갱이 그린 지누부인. 분명 고흐의 노란 집,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지만 배경은 그녀가 술을 팔던 까페로 그려져 있다. 그녀의 테이블 위에 놓인 술과 술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지누 부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의 뒤로는 당구공이 있는 당구대가 있고, 몇몇 남자들이 매춘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갈색 옷의 남자는 취한 듯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다.

밤의 까페. 술도 팔고 사랑도 팔고 이야기도 팔고 외로움도 팔고 유혹적인 눈짓도 판다. 

실 시간 수요와 구매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고갱은 모델 자격으로 와있는 지누부인의 테이블 위에 고흐가 몇 권의 책을 가져다 놓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1881년 겨울의 초입. 그들은 저마다의 느낌과 터치로 지누 부인을 완성해 간다. 지누 부인은 고흐의 그림과 고갱의 그림 중 어느 작품이 마음에 들었을까?     


책과 술, 지누부인은 술과 차를 파는 까페의 여주인이다. 오갈 데 없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멈추었다 가는 곳, 슬픔과 애환을 토로하는 곳, 웅숭깊은 날씨, 몸을 웅크리고 찾아드는 곳.

지누 부인은 날마다 사람을 읽고 있었으리라. 수많은 사람들, 낡고 허름한, 세련된, 왜소한, 풍채 좋은, 호기로운 침울한, 밝은 어두운, 가난한 부유한...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자서전을 읽는 지누 부인. 고흐가 그녀 앞에 책을 가져다 놓은 이유가 단지 정물로서의 책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누 부인은 책을 좋아하는 독서광이었을지 모르고 교양 있는 마담으로 보이고 싶은 허영을 지닌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1881년 초겨울. 고흐와 고갱과 지누부인. 노란방에서 탁자에 턱을 괴고 앉은 마담 지누를 그리는 고흐와 고갱의 모습을 상상한다. 고흐의 작품에는 마담 지누이면서도 마담 지누가 아닌 ‘지누’를 보여주고 싶은 고흐의 열망이 들어있고 고갱의 마음에는 본업에 충실한 마담 지누를 담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을 것이다. 고갱이 고흐와 지누부인을 비하하는 의도로 일부러 그런 그림을 그렸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지만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     

다움. '지누다움'을 다시 생각한다. 우아하고 고상한 포즈로 책을 앞에 두고 앉은 마담 지누와  ‘까페 마담’으로서의 그녀의 공간에 자리 잡은 지누 중 어떤 것이 지누다움 인가. 지누 안에는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지누가 있다. 지누 자신도 알지 못하는 그녀. 

고흐는 아를에서 지누 부인의 초상화를  여럿 그렸다. 지누 부인에게 도움을 받기도 해서였겠지만 지누부인에 대한 호의와 존경의 표현일 것이다. 

      

고흐가 그린 또 다른 마담 지누의 초상화다. 지누 부인은 왼손으로 턱을 괴고 누군가를 바라본다.

여전히 그녀 앞애는 빨간 표지의 책이 두 권 놓여있다. 그 유명한 작품 <밤의 카페테라스>의 여주이었던 여인 지누..... 고흐가 그녀의 인물화를 그릴 당시 고흐는 유명한 화가가 아니었기에 그녀의 인물화가 경매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으리라. 

그림을 보며 그림 속 인물의 생각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다움. '지누다움'을 다시 생각한다. 우아하고 고상한 포즈로 책을 앞에 두고 앉은 마담 지누와

그녀의 공간, 그녀의 ‘카페 마담’으로서 삶의 현재에 자리 잡은 지누, 어떤 것이 지누다움인가.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지누가 있다. 

지금 내가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있다고 하여 그 모습 만으로 ‘나다운 것’이라 규정할 수는 없다. 날마다 내 안의 ‘나다움’을 찾으려 하고 있다.                  


바람


나는 현재에 연연하며 살 수 없네

나는 불안한 꿈들을 사랑하네

타는 듯한 태양 빛 아래

축축하고 희미한 달빛 아래

나는 현재에 연연하며 살고 싶지 않네

나는 귀 기울이네, 암시적인 현의 울림에

꽃과 나무의 웅성거림에

바다 물결이 전하는 옛이야기에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욕망으로 괴로워하며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네

안개 자욱한 미명 속에 한숨 쉬고

저녁 먹구름 속을 떠다니네

종종 예기치 않은 희열 속에서

입맞춤으로 입사귀들 불안케하네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질주 속에 살아가네

끝 모를 불안 속에 살아가네.

 

꼰스딴찐 드미뜨리에비치 발몬뜨 1895년


현재에 연연하며 살 수 없고, 현재에 연연하여 살고 싶지 않은 시적 화자는 지칠 줄 모르는 질주 속에 살아가며 그와 동시에 끝 모를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다.

꼰스딴찌 드미뜨리예비치 발몬뜨가 이 시를 쓰던  1895년이나 2023년 지금이나....

우리는 모두 지칠 줄 모르는 질주와 그와 동시에 끝모를 불안 속에 살아간다. 

고흐와 고갱이 마담 지누를 그리던 1881년의 11월에도.... 지칠 줄 모르는 질주와 끝모를 불안이 노란 방에 가득하였으리라.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안에 존재하는 것 ... 지칠 줄 모르는 질주와 끝모를 불안이 만들어낸 '다움' 때문 일 것이다.

2023년 10월 햇살 고운 날, /나는 지금 지칠 줄 모르는 질주와 끝모를 불안을 느끼며 글을 쓰고 있다. 무엇이 될지 모를, 또 무엇이 내게 다가올지도 모를 그 불확실성 사이에서 오직 지금에 집중하며./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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