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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무를 수도 없는 참혹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며..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이미 고인이 된 허수경 시인을 떠올릴 때마다 이 시 <혼자 가는 먼 집>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로 시작하는 따뜻함은 어느새 가슴을 저미는 슬픔으로 바뀐다. 끝없이 ‘킥킥 당신’이란 말이 반복되지만 실은 ‘킥킥’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킥킥’이 아니다. 허수경 시에서의 ‘킥킥’이 나는 ‘흑흑’으로 읽힌다.

어떤 형태로든 이별을 하고 혼자 먼 집을 향해 갈 때의 심정을 애써 ‘킥킥’에 감춰놓았다. 혹은 말줄임표에 혹은 쉼표에..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어.

시적화자는 킥킥거리며 당신을 불러보고. 킥킥거리며 당신을 부른다.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이 시에는 ‘상처에 기대’, ‘나에게 기대와’, ‘그 아름다움에 기대’라는 3군데에 기대다는 포현이 등장한다.

 홀로 설 수 없기에 무언가에 그리고 누군가에 기대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상처든 아름다움이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와 진설 음식하나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데 킥킥 당신 이쁜 당신을 부르고 있다.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임을 알면서도  ‘그러나 킥킥 당신’이라고... 


시의 첫 부분에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로 시작하고 종결 부분에 다시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가 등장한다.  벌초까지 해버릴 마음의 무덤에 와서... 여전히 하는 말은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다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임을 알면서도...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당신’을 건너왔다.

내가 아니라서 버릴 수 없고, 포기할 수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같은 당신을...     

어떤 당신은 11월 은행나무 아래서 

또 어떤 당신은 3월의 목련 나무 아래서

또 어떤 당신은 4월 쌍계사 벚나무 아래서

또 어떤 당신은 5월의 장미아래서.... 또 어떤 당신은 허공을 향해 하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 또 어떤 당신은.... 또 어떤 당신은.....

끝내 지울 수 없는, 버릴 수 없는, 삭제가 불가능한 당신.

마음의 무덤에 벌초까지 끝내고... 이미 오랜 세월 건너와 각자의 ‘먼 집’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무렇지 않게 기억 저편에 킥킥 눌러두고... 킥킥 감춰두고.. 킥킥 외면하며.... 그렇게 킥킥거리며.... 쉼표와 말줄임표로 은폐하며..

끝내 ‘당신’을 만나지 않으리라는 전제 하에 자유롭고 

끝내 ‘당신’을 만나지 않으리라는 전제하에 기억 속의 ‘당신’은 늘 아름답다.


끝내 버릴 수 없고 무를 수 없어 나도 허수경처럼 ‘킥킥 이쁜 당신’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허수경 시 속에 등장하는  ‘당신’ 킥킥거리며 불러야 하는 당신은 누구였을까.

부재와 이별,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야만 하는 먼 집은 또 어디였을까?

킥킥 거리며 끝없이 킥킥 이쁜 당신이라고.. 읊조리고 있는.     

저마다의 먼 집에 와 있다.

혼자 가는 먼 집.

혼가 가야만 하는 먼 집..../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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