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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stoner
넌 무엇을 기대했나?

존 윌리엄스 소설 < 스토너> 


'넌 무엇을 기대했나?'     

암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스토너의 독백이다.

죽음의 발걸음이 느껴지는 순간. 죽음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순간, 죽음의 냉기가 자극하는 순간... 그 순간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스토너 교수는 자신의 집에서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존 윌리엄스의 소설 < 스토너>가 1965년 미국에서 처음발행되었을 때  이 책을 다뤄준 매체는 한 곳밖에 없었으며 독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 결국 초판 2천 부가 팔리지 못하고 이듬해 절판되었다. 그 후 눈 밝은 독자들이나 대학원생, 교수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수십 년 뒤, 뉴욕 북스 리뷰의 편집자 에드윈 프랭크는 책방 〈크로포드 도일〉 주인에게 좋은 작품이지만 빛을 보지 못한 책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재빨리 책을 구해 읽은 뒤 판권을 사들였다.  ‘결국 《스토너》는 출간된 지 거의 50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현재 전 세계 수많은 문학 애호가들이 추천하는 대표적인 인생소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책 소개 인용)


소설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윌리엄 소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 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난한 농부의 아들 윌리엄 스토너는 새로운 농사법을 배워오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미주리대 농과에 진학한다. 대학에 대한 기대와 비전도 없이 보내는 시간이 이어지는데  2학년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편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슬론교수의 시선이 윌리엄 스토너에게 되돌아왔다.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미주리주 중부 분빌 마을, 그의 부모는 이미 젊어서부터 늙어버린 이들이었다. 서른 살 때 이미 쉰 살처럼 보이는 아버지, 아무 희망 없는 눈으로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리려는 의지를 지닌 척박한 땅의 소유자, 어머니는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만 하는 순간으로 점철된... 숙명적인 인내심의 소유자였다. 어린 스토너는 집안의 허드렛일보다는 조금 수월한 허드렛일을 하듯 학교 공부를 따라갔다.     

군청 직원의 권유로 아들의 농과대학 진학을 결심한 아버지. 아버지가 스토너를 대학에 보내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 새로운 농법을 배워오라는 것.     

어머니가 달걀을 팔아 사 준 검은색 브로드클로스 양복 한 벌, 아버지의 낡은 외투,  한 달에 한 번씩 감리교회에 길 때 입는 파란색 서지 바지, 하얀 셔츠 두 장,  작업복 두 벌, 이웃에서 빌려온 25달러가 스토너의 대학 생활의 시작점이었다.


2학년 때 아처 슬론 교수의 영향을 받아 진로를 농과대학에서  문학 쪽으로 변경한다. 1914년 6월 미주리대에서 문학사 학위 수여를 받던 날, 당연히 스토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농법을 적용할 기대에 부푼 부모에게 스토너는 대학에 남겠다고 선언한다.

“ 군청 직원은 농사학교가 4년이면 충분하다고 했어... 오늘 너의 졸업식을 봤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널 위한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부모는 스토너를 대학에 남겨두고 분빌로 돌아간다.    


박사과정을 거치며 특히 데이비드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와 친해지는데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두 사람은 참전하지만 스토너는 아처 슬론 교수의 조언대로 대학에 남는다.

“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조시아 클래어몬트의 저택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스토너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온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에게 마음을 뺏긴다.

키가 크고, 약해 보이고, 얼굴은 갸름했고 강해 보이는 이를 감추고, 투명해 보이는 피부, 밝은 갈색 머리카락,... 그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녀의 연한 파란색 눈이었다. 그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로 끌려갈 것 같은 눈에 이끌려 사랑고백을 한다.

 “ 이제 당신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세인트 루이스로 가서 이디스의 부모를 만나고 결혼식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당신의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스토너의 아버지는 예비 며느리에게

“ 윌리엄은 언제나 착한 녀석이었다. 남자한테는 이것저것 보사 펴 주고 위안을 주는 여자가 필요하지. 윌리엄에게 잘해 주어라. 녀석에게도 누군가 잘해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노력할게요. 아버님.”     

윌리엄은 이디스의 눈에 눈물이 흥건히 고인 것을 보았다.

     

무지한 상태로 결혼한 두 사람. 컬럼비아로 돌아와 낡은 헛간 같은 건물 2층의 빈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이디스는 정복할 적이라도 만난 양  적의를 드러내며 날마다 청소를 했다. 한 달도 안 돼서 스토너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으며 1년도 안 돼서 결혼 생활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버렸고 침묵을 배웠다.

이디스는 의례적으로 손님을 초대하고 가식적인 행동뒤 찾아오는 불만, 분노 슬픔으로 끝나는 일상을 반복했다.  결혼 3년 만에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이디스는 욕정에 굶주림 여자처럼 못다 한 숙제를 하듯 결의를 품고 임신에 성공하지만 딸 그레이스가 태어나자마자 육아는 모두 스토너의 몫이 된다.     


아처 슬론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미주리대 문과에 홀리스 N 로맥스 교수가 초빙되어 오면서 스토너와 수많은 갈등을 일으킨다. 스토너의 책이 1925년 출간되고 그 책 덕분에 조교수로 승진하면서 종신교수가 되었다.

이디스는 친정아버지로부터 6천 달러를 빌려와 새 집으로 이사를 고집하고 마침내  오래된 2층 짜리 주택, 넓은 마당, 널찍한 실내. 망가지긴 했어도  위풍당당한 집을 선택한다. 집을 수리하고, 가구를 새로 장만하고 파티를 열고... 스토너는 빚과 궁핍에 익숙해지면서도 그래도 약간의 행복을 느꼈다. 북향에 서재를 마련하고.. 그레이스도 아버지 서재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다.


평생 흙을 파고 살아온 부모의 죽음.  분빌 외곽의 작은 땅에 묻고. 11월의 차가운 바람 속 두 개의 무덤을 바라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즐거움이 없는 노동에 평생을 바쳤다. 의지는 꺾이고. 두 분은 평생을 바친 땅 속에 누워있었다. 땅은 서서히 두 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리라. 습기와 부패의 기운이 시신이 담긴 소나무 상자를 침범해서  두 분의 마지막 흔적을 먹어치울 것이다. 그리하여 두 분은 이미 오래전 자신을 바쳤던  고집스러운 땅의 무의미한 일부가 될 것이다. 부모님의 땅을 정리한 돈으로 집을 사는데 들었던 빚을 일부 갚았다.     

세인트루이스의 작은 민영 은행인 머천트러스트 도산으로 이디스의 아버지 호러스 보스트윅이 자살한다. 이를 빌미로 이디스는 친정에 오래 머무르며 변신을 꾀한다. 화장품과 향수를 사고 담배도 피우고 머리를 짧게 잘랐다. 새 옷을 사들이고 피아노를 배우고 연극을 하고 그람과 조각을 배우고...  이 모든 것에 싫증 날 무렵 이디스의 또 다른 분출구 혹은 분풀이 상대는 그레이스였다.  서재에서 아버지와 놀던 조용하고 온순한 아이 그레이스에게 화려한 옷을 사주고 방을 공주 풍으로 바꿔주고 수시로 파티를 열어 친구들을 불러들였다.


“ 그레이스는 아주 행복해요. 아이가 외향적으로 변했다는 명백한 근거는 소리 내 웃는다는 것”

“ 아이를 이용하지 마시오. 뭐든 당신 맘대로 하되 그레이스를 끌어들이지는 마오”     

이디스는 그의 서재를 자신의 조각과 그림 수업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버렸고 스토너의 서재를 유리로 둘러싸인 일광욕실로 옮겨버렸다.

     


스토너의 세미나에 로맥스 교수의 제자 중 하나인 워커가 개입되면서 그나마 수업을 통해 만족을 얻던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로맥스와 워커의 집요한 공격의 목표는 스토너였다. 제시 홀의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 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강의 청강생인  캐서린 드리스콜 강사의 논문을 검토해 주면서 오랜만에 스토너의 삶에 활력이 찾아왔다. 캐서린 드리스콜의 아파트로 찾아가는 것이 생활의 유일한 낙이 되고 두 사람은 사랑과 공부를 병행한다. 오자크 대산맥 외곽 산악지대의 숙소에서 10일을 같이 머무른다. 낮에는 산책을 하고 저녁이면 램프에 불을 밝히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불꽃을 보고  서로를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도 꾸지만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대학 내 소문이 나고 홀랜드의 공격의 빌미가 된다.     


“만약 내가 모든 걸 던져버린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떠나기로 한다면 당신은 나랑 함께 가주겠지?”

“그래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겠지.”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모든 것.. 우리가  했던 모든 일과 우리의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오. 교단에 설 수 없게 될 것은 확실하고 당신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겠지. 둘 다 지금 과는 다른 사람, 우리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될 거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

“아무것도 아닌 존재.”

“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번 일에서, 적어도 우리 자신의 모습은 지킬 수 있었소. 지금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니까.”

“장기적으로 볼 때 날  이 자리에 붙들어 둔 것은 이디스도 그레이스도 아니오. 당신이나 내가 상처입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추문 때문도 아니오.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도 아니고, 어쩌면 사랑을 잃게 되리란 생각 때문도 아니오. 그저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이란 생각, 우리의 일이 망가질 것이란 생각 때문이지”

“알아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도 세상의 일부인 거요. 그걸 알았어야 하는 건데,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조금 뒤로 물러나서 그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던 거요. 그래야 우리가.”

....

캐서린 드리스콜과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드리스콜은 영문과 사무실에 사직서를 우편으로 보내고 짐을 챙겨 떠났다. 스토너는 그녀가 떠날 계획을 미리 세웠음을 자신이 미리 알지 못했단 것에. 그리고 그녀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캐서린이 떠난 뒤 그는 급속히 늙어갔다.  다시 가을에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수척하고 앙상한 얼굴, 흰머리, 구부정한 몸, 거칠고 무뚝뚝한 목소리의 소유자로 변해버렸다     

스토너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이디스의 히스테리는 커졌고 그레이스는 어느새 남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나이가 되었다. 그레이스를 찾는 전화가 수시로 울려댔고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나타나 그녀를 차에 태우고 사라졌다. 그레이스는 도피의 수단으로 에드 프라이의 아이를 갖는다. 임신 사실에 경악한 이디스는 서둘러 결혼을 시키고 모든 것을 잘 마무리하는 것 같았지만 뱃속 아이의 아빠이자 그레이스의 남편인 에드 프라이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군에 지원하여 전쟁 중 사망한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면서 진료를 받게 되고 암 진단을 받은 스토너는 끝까지 남아 수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단념하고 퇴직을 결정하고 생의 마지막 준비를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들이다. 그의 독백이 이어진다. 무엇을 기대했던가...라고          


넌 무엇을 기대했나?     

암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스토너의 독백이다.

죽음의 발걸음이 느껴지는 순간. 죽음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순간, 죽음의 냉기가 자극하는 순간... 그 순간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스토너 교수는 자신의 집에서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긴 잠을 자고 일어나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늦봄 또는 초여름... 뒷마당의 커다란 느릅나무 이파리들이 풍요롭게 반짝였다. 느릅나무 그늘은 그도 전에 경험한 적이 있는 깊이와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풀과 이파리와 꽃의 향기로운 냄새에  묵직함이 잔뜩 섞여서 그 향기들을 허공에 묶어두었다.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깊숙이 긁히는 것 같은 자신의 숨소리가 들리고 여름의 달콤함이 허파 속에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그 들숨과 함께 자신의 안쪽 깊숙한 곳 어딘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은 뭔가를 멈추게 하고, 그의 머리를 움직일 수 없게 고정해 버렸다. 하지만 이내 그 느낌이 사라졌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 이런 느낌이구나...         

 


넌 무엇을 기대했니?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산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 런 생각이 하잘적 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의식 가장자리에 뭔가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생생해지려 힘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 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협탁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책들...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없다는 사실이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해 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것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부분)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다음과 같이 추천 후기를 남겼다.     

서술형 수학 문제의 경우 답이 틀려도 풀이 과정에서 부분 점수를 받는다. 인생이라는 문제를 푸는 세상의 많은 좋은 소설들도 자신만의 오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분적 옳음을 성취한다. 그러나 <스토너>를 다 읽고 이것은 답도 맞아버린 희귀한 경우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스토너의 삶은 뜻밖의 ‘기회’와 그에 따르는 ‘대가’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그런 그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이 계산 과정은 경이롭도록 정확해서 어떤 아름다움에까지 이른다.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눈물이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이 나도록 슬픈 날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모두 저 속절없는 0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스토너처럼, 삶이라는 서술어의 보편 주어 같은 이 사람 윌리엄 스토너처럼.” 


"소설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이서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문학에 대한 그의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술어의 보편 주어 같은 윌리엄 스토너'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이는 스토너 stoner의 이름이 stone(돌)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한다. 돌처럼 무심한, 혹은 돌처럼 묵묵한 혹은 돌처럼 변화 없는 혹은 돌처럼 인내심이 강한 혹은 돌처럼 무저항적인....           

같은 책을 읽어도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자의적인 해석의 바탕에는 저마다의 가치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내가 윌리엄 스토너를 '삶이라는 서술어의 보편 주어'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스토너가 수동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상당히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은근슬쩍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슬그머니 거머쥔. 조용한 야심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새로운 농법을 배우고 오라는 이유로 가난한 형편애도 불구하고 애써 학위를 마치게 하였더니 부모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기 의지대로 문학도가 되었다. 흙을 파고 사는 부모의 삶을 답습할 이유는 없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학우들이 애국심에 불타 참전하는 세계대전의 한 복판에서도 대학에 남아 학위를 따는 일, 자리를 얻는 일에 집중하여 교수로서의 자리매김을 하였다. 우연히 리셉션에서 한눈에 반한 (자신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미모의 이디스에게 청혼하고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문화적 환경을 애써 외면하고 결혼한다

문화적으로 다른 환경,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이들, 잘 알지 못하면서 서두른 결혼의 기저에는 세련되고  교양 있는 아가씨를 아내로 맞으려는 욕망이 잠재되어 있었는 자 모른다. 흙내 나는 체념과 무지의 여인이 아닌... 그저 모든 것을 흙처럼 견디고 사는 어머니와는 정반대의 여인을...      

교수로서 수업에서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고 저술로 종신교수 자리를 얻기도 하였고 로맥스와의 싸움으로 전설의 인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불행한 결혼 생활이라 하였지만 어쨌든 이디스가 저질러 마련한 제법 그럴듯한 집을 소유함으로써 일상적인 수준의 만족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레이스를 키우며 느꼈던 소소한 행복도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부모. 흔히 동양에서 말하는 효도를 받아본 적 조차 없이 끝없이 일만 하다 세상을 떠났고 스토너는 땅과 부모 소유의 땅과 집을 판 돈으로 장인의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일부를 갚는다.     

그는 삶에 무기력하고 기대할 게 없다고 하였지만 영민하고 아름다운 20대 강사 캐서린과의 지적인 측면과 성적인 측면이 절묘하게 뒤섞인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선언한다

그리할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고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지 않느냐고...     

 마침내 임종이 다가올 무렵 자신이 저술한 책을 꺼내어 책장을 넘기어 보면서 생을 마감한다


스토너가 우리 주변의 평범한 남자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그는 인생의 길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그 감정들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자 노력하였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스토너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지나치게 비극적이고 히스테리적이고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스토너는 삶을 잘 견디는 남자,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남자. 돌과  같은 남자는 아니다.

스터너가 얼마나 생을 잘 견디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대비로 주변 인물들이 극단적인 캐릭터로 설정된 것처럼 보인다.

워커가 비록 그의 수업을 따라가기에 능력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지난날 아처 슬론 교수가 문학에 무지한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서서히 기다리며 지적 성장을 끌어올려주었듯이 모든 게 뒤처지게 보이는 박사과정의 학생 워커 군에게도 어느 정도의 관용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학의 학점이란 것이 그 학생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에 말이다.


케서린과의 격정적인 사랑,  미모의 아내 이디스, 소중한 딸 그레이스, 그런대로 넓은 2층 집,  학자로서 저술, 종신교수, 모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기쁨. 단 한 반도 자신을 힐난하지 않았던 흙의 본성을 닮은 부모... 문학에 대한 성취와 기쁨... 스토너는 삶을 견딘 자가 아니라 어찌 보면 삶을 누린 자이다.

그러하기에 보편적인 삶의 동사에 꼭 맞는 '주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


삶....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누구나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묻는다.

알 수 없는 것.  학점처럼. 성적처럼.  혹은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

그 삶의 어느 부분은 실패였을지라도 또 어느 부분은 성취였으리라. 또 어느 부분은 슬픔이었다 하더라도 또 어느 부분은 기쁨이지 않았을까...

1965년 미국에서 발행된 소설이지만 2023년 지금의 현실에 가져도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책.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보듯.... 스토너의 모습에서 이디스의 모습에서 그레이스의 모습에서 케서린의 모습에서 홀랜드 교수의 모습에서... 그의 부모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을 본다.

소설 속 캐릭터에 우리는 결국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서 보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의 어디쯤에 있을까. 이 소설의 어떤 인물과 닮아있을까를 끝없이 생각하며....


지금껏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으며 앞으로도 가야 할 길....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걸어가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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