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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욘 포세,나는 완전히 내 고유 의 방식으로 쓴다

잠 못 드는 사람들, 올라브의 꿈, 해 질 무렵

<3부작>  2015년 북유럽문학 최고의 영예인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 수상      

2023 노벨상 수상, 욘 포세의 ‘대표작’. 「잠 못 드는 사람들」(2007)과 「올라브의 꿈」(2012) 그리고 「해질 무렵」 2014 세 편의 중편 연작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세상에 머물 자리가 없는 연인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한 아기의 이야기이다. 욘 포세는 가난하고 비루한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소박하고 거룩한 사랑, 쓸쓸한 희망과 좌절, 사라지는 것들과 영원히 이어질 것들을 그의 특유의 문장에 담았다. 최소한의 인물과 대사, 현실이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름답고도 서글프며, 신비하고도 섬찟하게 읽힌다. 단순한 이야기 구도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예술과 운명, 양심과 죄, 가족의 탄생과 소멸 등 삶의 굵직한 주제들이 퍼져 있다. 마침표가 거의 없거나 쉼표만으로 이어지는 문장들도 이채롭다. 운명, 예술, 죄, 양심, 사랑, 가족, 탄생, 죽음, 존재, 소멸 등 인간을 이루는 모든 굵직한

주제에 관한 질문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출판사 제공 책 소개 -


“나는 완전히 내 고유의 방식으로 쓴다”          

욘 포세의 작품은 그것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마침표와 구두점 없이 쉼표로만 이어진 텍스트는 작품을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덩어리로 보이게 하고, 반복되어 사용되는 어휘와 구절은 소설을 자유시나 음악처럼 읽히게 만든다. 이는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된다.     

욘 포세는 일찍이 음악을 접했고, 바이올린과 기타를 병적으로 연주했으며 록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6세 이후 음악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음악의 형식을 글쓰기에 적용했다. 이것이 고유한 구조와 수많은 반복을 지닌 독특한 글을 만들었다. 포세는 어휘, 문장 구조, 수사에서 무척이나 간결한 문장을 쓰는데, 동일하거나 유사한 어구를 반복하고 그 리듬을 살리는 수사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불필요한 것이 제거되고 압축된 간결한 문장은 언급되는 것보다 언급되지 않은 것들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고, 이는 반복을 통해 그 의미가 강화되며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포세는 최소한의 인물과 최소한의 대사로 꾸며지지 않은 현실의 상황을 구현하며,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하루의 일과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근원적인 고독을 포착해 소리, 리듬, 흐름을 가진 자신만의 문학적 언어로 표현한다.     

옮긴이의 말 – 욘 포세를 한국에 소개하며          


1부는 아슬레와 알리다가 깉은 비중으로 등장하고 2부는 아슬레(올라브)를 중심으로 3부는 알리다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제 1 부 : 잠 못 드는 사람들          


하지만 너한텐 내가 있어, 알리다가 말한다 그리고 너한텐 내가 있고, 아슬레가 말한다 -

이제 인생이 시작되는 거야, 그녀가 말한다

이제 인생 속으로 항해해 가는 거야, 그가 말한다


17세인 아슬레와 알리다가 벼리빈에서 방을 찾아 , 헤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삭의 알리다, 비는 세차게 내리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기꺼이 받아주지 않는다.

    

어두웠고, 추웠다. 알리다와 아슬레가 여러 집 문을 두드려서 거처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그건 어렵겠네요. 임대해 줄 방이 없어요, 임대하려고 한 방은 이미 임대가 되어 버렸어요. 아니 임대를 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마주한 대답들은 이러했다

아슬레와 알리다는 벼리빈(현재 베르겐의 옛 명칭) 거리들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아슬레는 그들이 가진 물건을 담은 보따리 두 개를 어깨에 메고 손에는 아버지 시그발에게서 물려받은 바이올린이 든 가방을 쥐고, 알리다는 음식이 든 그물자루를 들고서. 그들은 몇 시간이나 벼르빈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머물 곳을  찾으려 했다. 


P 46

비는 내리고 춥고 어둡고 이제 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늘 아까까지만 해도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는데, 젊은 사람들, 늙은 사람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보였는데 하지만 지금은 하늘에서 비가 줄기차게 쏟아져 내려 물웅덩이에 고이고 있으니, 이제 모두 자신의 집에, 집 안의 불꽃과 그곳의 따스함 속에 머물러 있는지, 알리다는 자신의 자루들을 보다가 웅크리고 앉아서 턱을 가슴에  파묻는데 눈꺼풀이 그녀의 눈을 덮어 내리자...

             

아슬레의 연주 속에 그녀는 계속해서 아버지 아슬락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알리단는 자기 삶과 자기 미래를 듣고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알리다는 자신의 미래 속에 있는데 모든 것이 열려있고 모든 것이 어렵다. 하지만 그곳에는 노래가 있다. 그것이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노래이리라. 오직 연주 속에만 있고 다른 어떤 곳에도 있고 싶지 않다.     


P. 14

만약 알리다가 아니었더라면, 아슬레는 혼자, 완전히 혼자였다. 어머니 실리야가 죽어서 영원히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누워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떠올렸던 단 한 가지, 그것은 바로 알리다였다. 그녀의 검고 긴 머리, 그녀의 검은 눈동자. 그녀의 모든 것. 그에게는 알리다가 있었다.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은 알리다였다. 


P 48

피할 길이 없거든, 너 역시 연주자가 될 테니까,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 시그발은 그건 이런 거란다. 내가 연주자이고 나는 이미 좋은 연주자였으며 연주를 하는 한 나는 이미 뛰어난 연주자였던 게지. 그리고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그럼 넌 이미 연주자인 게야.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네 아들 역시 마찬가지야, 그건 놀랄 일이 아니란다. 내 아버지인 늙은 아술레와 할아버지인 늙은 시그발 두 분 모두 연주자셨으니까, 연주자가 되는 건 우리 가문의 운명이야. 연주자가 되는 게 비운으로 여겨진다 해도 그래, 그런 게야.

네가 연주자라면 그래, 그럼 넌 이미 연주자란다. 그런 게지, 그래, 내 생각엔, 그다지 다른 여지가 없어, 그래,라고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그 운명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나는 슬픔이라고, 무언가에 대한 슬픔이거나 아니면 그냥 슬픔이라고 답할 게다, 음악 속에서 그 슬픔은 가벼워질 수 있고. 떠오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 떠오름은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연주룰 해야만 하는 거지,..



연주자의 운명은 비참하지,... 늘 버려, 늘 포기해야 해,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터질 것 같은 슬픔을 몰아내고 싶고, 그 슬픔을 가볍게 만들고 싶다... 그는 음악이 고조되는 곳을 발견한다... 



 알리다와 아슬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은 정해졌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아니면 무얼 더 말하는 게 좋은지 그런 것은 없이, 모든 것이 이야기되었고 모든 것이 정해졌다 .아슬레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정해졌음을 느낀다., 중요한 건 내가 아냐, 크게 떠오르는 것, 그게  중요한 거야, 크게 떠오르는 것, 나에게 그것은 알리다야     


이제 다시 우리만 있네, 알리다가 말한다

당신과 나, 아슬레가 말한다

그리고 아기 시그발, 알리다가 말한다          


<제 2 부  : 올라브의 꿈>


이 굽은 길을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피오르가 눈에 들어올 거야 하고 올라브는 생각한다, 이제 난 아슬레가 아니라 올라브야, 그리고 이제 알리다는 알리다가 아니라 오스타, 우린 오스타와 올라브 비크,     

장애물 같은 남자.. 어째서 저 남자가 내 앞길을 가로막는 거지... 어딘지 낯설지 않아. 뒬리야에서였나, 벼리빈에서였나,... 자네 날 못 알아보겠나 내가 여길 걷고 있는 이유가 자네 때문이라고  아슬레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벼리빈에 가서 바이올린을 판 돈으로 반지를 살 거야 저 피오르가 파랗게 반짝이는 날, 반지를 사서 오스트와 시그발에게 가는 거야

맥주집에서 오스카우트라는 남자를 만나고 그의 아내 닐마를 위해 샀다는 팔찌 샛노란 금에 새파란 진주가 박힌 팔찌를 알리다에게 사주려고 생각한다.      

뒬리야에서 보트에 살던 남자, 어떤 여인이 살해되고 벼리빈에서 늙은 산파가 사라졌지 아슬레 자네는 알고 있지. 나는 그래 뒬리야의 작은 농장에서 살았지 ... 넌 아슬레야 이슬레     


p126

우린 떠나야 해,, 더 이상 여기서 살 수 없어

대체 왜... 여기 살던 여자가 돌아올지 몰라

그렇지만 오래 시간이 흘렀고 아무도 오지 않았는 걸

우린 어디로 가는 거야

더 이상 벼리빈에 머물지 않을 거야 누가 우리를 쫓고 있어

가능한 빨리 벼리빈에서 벗어나는 게 좋겠어     


p 129  바이올린을 팔았으니 얼마간 보탬은 될 거야 당신은 바이올린을 팔면 안 되었어

우린 돈이 필요했고 우리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

가족과 함께 하는 게 가장 좋은 거야 내가   연주자의 운명을 타고났을진 모르지만 그 운명과 싸우고 싶었어 난 더 이상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야 이제 아빠가 되었고  당신의 남편이 되었어     

알리다가 아슬레를 만나서 행복하다고 말하자 아슬레도 알리다를 만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당신과 나, 아기 시그발     

올라브는 선착장 근처 보석상에서 새파란 진주로 된 황금팔찌를 산다 사랑하는 알리다를 위해 .     


P. 173

안 돼, 당신 오늘은 벼리빈에 가면 안 돼, 그랬다간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거야,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랬다간 뭔가 끔찍한, 무섭고 끔찍한 일이,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 감히 상상도 못 하는, 견딜 수 없고, 모든 걸 파멸시킬 뭔가가 일어나고 말 거야



너는 살인자야 핀텐에서 목에 밧줄을 두르게 되겠지     

두 남자가 올라브에게 다가와 팔을 붙잡아 끌고 문 쪽으로 집아 끄는데 올라브의 귀에 노인의 말이 들어온다

그래 이게 자네의 결말이야 뒬리야 출신의 아슬레의 결말, 남을 살해한자는 그도 살해당한다, 돈이 있는데도 맥주 한잔 사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거지


올라브는 끌려나가다가 금발머리 소녀가 황금 팔찌를 손에 차고 있는 것을 본다     

오스타와 아기 시그발은 어디 있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오스타



우리 성은 비크라고 하자

오스타와 올라브 비크... 우리는 오스트와 올라브 비크, 결혼한 사람들이고 아들 시그발 비크를 데리고 있어, 비크의 교회에서 결혼했고 시그발은 거기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해야 해

말리 고기가 농장 마당엔 넘칠 만큼 많았어 그가 말한다

하지만 이웃한테서 훔치면 안되잖아 그녀가 말한다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지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가 고기를 잡을 거야

그래 그럼  우린 잘 해낼 거야

올라브가 벼리빈에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아. 오늘

나랑 시그발이랑 같이 가도 될까.. 하지만 나 혼자 가는 게 더 빠를 거야     

당신이 사라지게 될 거야, 아버지 아슬락이 사라졌던 것처럼... 정말 확신해, 너무 분명해서 당신에게 이야기해야겠어, 알리다는 말한다     


벼리빈의 모든 주민들이네가 매달리는 걸 보게 될 거야 목이 부러져 바닥에 뻣뻣하게 쓰러진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벼리빈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퓐텐에서, 정의가 구현될 거야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살해를 당해야지‘

노인은  검은 자루처럼 생긴 것을 머리에 쓰고 있다가 벗는다  봤나, 아슬레

오세요 모두 나오세요 정의가 구현될 겁니다

올라브는 걸으며 춥다고 덥다고 그리고 모든 것이 공허하다고 느낀다. 비명과 외침을 들으며

더는 아무것도 없어, 떠오르는 것뿐이야. 내가 떠오르고 알리다가 떠올라..

아슬래는 파랗게 반짝이는 피오르를 바라본다

검은 자루가 그의 머리에 덮어씌워지고 밧줄이 목을 휘감는다.. 알리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거기 있구나, 착한 아기, 소중한 아기,,, 아슬레는 푸르게 반짝이는 피오르 위로 떠오른다 


P. 187

너는 그저 잠이 들렴, 울지 말고, 그저 살아 숨 쉬렴, 그저 행복하고 진실되렴, 그저 살아서 네가 되렴

P. 188~189

너 거기 있구나, 우리 착한 아기, 넌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기야,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지, 여기 반짝, 저기 반짝, 겁내지 말렴, 우리 아기, 우리 소중한 아기, 그러자 아슬레는 푸르게 반짝이는 피오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리다가 잘 자라 우리 아기, 너는 그저 떠오르고, 너는 그저 살아가고, 너는 그저 연주하렴, 우리 착한 아기, 라고 말하자 그는 푸르게 반짝이는 피오르를 넘어 높이 푸른 하늘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리다가 아슬레의 손을 잡고 그는 일어서서 알리다의 손을 잡는다            


<제 3부 : 해질 무렵>


아슬레가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 뒤 아기 시그발과 알리다는 우연히 선착장에서 같은 고향 출신의 오슬레이크를 만나 그의 농장으로 가서 함께 살게 된다, 이미 세상에 없는 아슬레지만 알리다는 그의 영혼과 교감하면서 아기와 자신이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고 시그발은 자라 아슬레처럼 떠돌이 바이올린 연주자가 된다. 인생의 모든 일이 안정될 무렵 알리다는 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제 3부는 알리다의 딸 알레스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이부 오빠 시그발, 그의 아버지도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고 했어, 그의 이름은 아슬레였고 벼리빈에서 교수형을 당했다고 했지 어머니는 오슬레이크와 재혼했지 아버지 오슬레이크를 다들 비카라 불렀지 알리다가 아들 시그발을 데리고 가정부로 들어왔지

     


오슬레이크는 보따리 둘을 짊어지고 걸어가고 알리다는 아기를 안고 그 뒤를 따르다 벼리비의 선착장에서  파란 진주 황금 팔찌를 길에서 줍는다, 이 팔찌는 아슬레가 주는 선물이야, 나와 아슬레가 있던 하늘을, 나와 아슬레가 있던 바다를 닮은 푸른색이야.

바다가 철썩이고 출렁이는 소리만 들린다,

내 눈으로 직접 봤단다. 그를 목매다는 것.  그러나 알리다는 자신과 아슬레가 여전히 함께라고 생각한다.  아슬레가 당신 안에도 있고 아기 시그발 안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오슬레이크를 따라가는 게 최선이야, 아기 시그발과 당신을 위해서


P. 231

그러나 알리다는 자신과 아슬레가 여전히 연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서로 함께해, 그는 나와 함께하고, 나는 그와 함께해, 나는 그 안에 있고, 그는 내 안에 있어, 하고 알리다는 생각 한다, 그리고 그녀는 바다 저편을 내다보고, 하늘에서 아슬레를 본다, 그녀는 저 하늘이 아슬레인 것을 보고, 저 바람이 아슬레인 것을 알아차린다,  그는 저기 있어, 그는 바람이야, 그를 찾지 못해도 그는 여전히 저기 있어, 그러자 그녀의 귀에 아슬레가 말하는 것이 들린다, 나는 저기 있어, 당신은 저기 있는 날 보는 거야. 당신이 바다를 내다보면 바다 저편 하늘에 내가 있는 것을 보게 될 거야라고 아슬레가 말한다, 그리고 알리다가 바다를 내다보자 물론 아슬레가 보이는데, 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도 하늘에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아슬레가 나는 당신 안에도 그리고 아기 시그발 안에도 존재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그러자 알리다가 그래, 당신은 존재하고 있어, 앞으로도 늘 그럴 거야,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바다 서편에 있는 섬 출신이야 그분이 여기 정착해서 땅을 다지고 건물을 지어 올렸지

그분의 이름은 나와 똑같은 오슬레이크였어, 뒬리야 출신의 소녀와 결혼하셨지. 그중 장남이 우리 아버지였지, 아버지도 역시 뒬리야 출신 소녀와 결혼했어 그리고 내가 태어났고.. 어머니와 비카에서 살았는데 늙으셨고 병이 드셨고 돌아가셨지, 그래 그랬지 난 도움이 필요한단다

집 헛간 보트하우스, 부두, 배 양 암소, .. 너와 네 아기는 잘 살 수 있단다    


P. 254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갈매기 소리도, 그가 하는 말도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세월이 바람처럼 흐른 어느 날 양이, 소가 물고기가 알레스가 태어난다, 그녀는 무척이나 예쁜 여자아이고 머리가 나고 이가 자라면서 미소를 짓고 방긋 웃는다 그리고 아기 시그발은 자라서 알리다가 기억하는 그녀의 아버지처럼 덩치가 큰 소년이 되고, 노래를 부를 때면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오슬레이크는 고기를 잡아 배를 타고 벼리빈에 가지고 갔다가 설탕과 소금, 커피, 옷과 신발, 술과 맥주, 절인 고기를 가지고 돌아온다, 그러면 그녀는 라스페발을 만들고 그들은 고기와 생선을 훈제하고 말린다 그렇게 해가 가고 어린 여동생이 태어난다 그녀는 무척이나 곱고 금발이 아름답다 그리고 세월이 바람처럼 흐른 어느 날 추운 아침에 난로가 그들을 데운다 그리고 빛과 온기와 함께 봄이 온다 그리고 타는 태양과 함께 여름이 온다, 그리고 어둠과 눈과 함께 겨울이 온다, 그리고 비 그다음엔 눈 그리고 다시 비 그리고 알레스는 어머니 알리다가 저기서 있는 것을 본다, 정말 그녀가 저기 서 있어, 부엌 한가운데에 창문 앞에 그녀가 나이 든 알리다가 서 있어 그녀는 그럴수가 없는데, 이건 불가능해 그녀는 저기 서 있을 수가 없어, 그녀는 오래전에 죽었어, 그런데 늘 차고 다니시던 새파란 진주로 장식된 금팔찌를 차고 계시구나 아냐, 이건 불가능해, 하고 알레스는 생각한다,   


    

시그발이 바이올린 가방을 열고 그들에게 배를 향해, 햇빛 속에 내어 보인다.. 스크롤 위에 조각된 용머리에 코가 날아가 있는 것을 바라본다 시그발은 좋은 연주자가 되었지 시그발은 그냥 사라져 버렸고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라, 어머닌 여러 해전에 돌아가셨어 바다로 걸어 들어가셨다고들 했어, 


알리다는 어둠 속에서, 빗속에서 짧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비카의 집을 나와 바다를 향해 내려간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집을 바라보지만 볼 수 있는 것은 어둠 속에서 더 어두운 것들 뿐이다, 다시 몸을 돌려 계속 걸어 내려간다, 파도 속으로

모든 추위는 따스함이고, 모든 바다는 아슬레다, 그녀가 더 깊이 걸어가자 뒬리야에서 아슬레가 처음으로 춤판의 연주를 했던, 그들이 처음 만났던 밤처럼 아슬 레가 그녀를 감싼다, 세상에는 오직 아슬 레와 알리다뿐이다 그리고 파도가 알리더를 넘어온다 그리고 알레스가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는 계속해서 걷고, 깊이 더 깊이 들어간다 그러자 파도가 그녀의 잿빛 머리를 넘어온다. (책의 마지막 부분)     

  


마침표가 없이 쉼표로만 이어지는 글 당황스러웠다.      

꿈과 기억, 대화와 독백이 뒤섞인 욘포세의 작품은 과거와 현실, 미래에 대한 것들이 텍스트 안에 함께 들어있다. 작가는 온전히 고유의 방식으로 쓴다고 말하지만 그의 고유의 방식에 독자는 혹은 적어도 나는 익숙하지 않다.     

운명에 대한 순응과 운명에 대한 거역을 바이올린으로 이어지는 연주자의 가계도를 통해 그려진다

결국 올라브가 벼리빈의 시장에 팔아버린 바이올린은 아들 시그발의 손에 들어간다     


"내가 연주자이고 나는 이미 좋은 연주자였으며 연주를 하는 한 나는 이미 뛰어난 연주자였던 게지. 그리고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그럼 넌 이미 연주자인 게야.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네 아들 역시 마찬가지야, 그건 놀랄 일이 아니란다. 내 아버지인 늙은 아술레와 할아버지인 늙은 시그발 두 분 모두 연주자셨으니까, 연주자가 되는 건 우리 가문의 운명이야."

아버지 시그발은 연주자가 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삶의 부력을 키우는 일, 떠오르는 일이라고 네 아들도 연주자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내가   연주자의 운명을 타고났을진 모르지만 그 운명과 싸우고 싶었어 난 더 이상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야 이제 아빠가 되었고  당신의 남편이 되었어"     

아슬레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아내의 남편이고 아이의 아빠가 연주가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바이올린 보다 알리다의 손가락에 끼워줄 반지가 더 중요하다  


P. 136

이건 특별한 순간이야, 여기 내가, 나처럼 비참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사러 가는 길이니까        


뒬리야에서 벼리빈으로 타고 온 보트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알리다의 엄마 헤르디스의 집에서 돈과 먹을 것을 훔쳐 나오고  벼리빈에서 늙은 산파의 집에 보금자리를 튼다. 

17세의 알리다와 아슬레, 고아가 된 아슬레에게는 가족이 필요했다. 알리다, 그리고 알리다 뱃속의 아기. 절박한 상황, 비는 오고 춥고 아무도 들여보내 주지 않으며 만삭의 알리다는 금방이라도 아기를 낳을 것만 같다.          

보트의 남자, 헤르디스, 늙은 산파를 ... 살해했다는 암시는 있지만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2부에 등장하는 노인, 끝없이 아슬레의 실명을 환기시키는 그 남자를 통해 아슬레의 범행이 하나씩 드러나지만... 책을 읽는 우리 또한  노인의 입을 통해 아슬레의 범죄를 단죄한다.

퓐텐으로 끌려가는 과정에 노인은 목소리를 높여 사람들에게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모여서 구경하라고 외친다. 노인의 정의... 노인의 딸과 아내는 매춘으로 살아간다. 뒷골목의 정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가. 살해하지 않았으니까. 거래이니까... 현상금을 노린 신고 또한 거래이니까 정의를 빙자한.  세상은 원래 그린 곳이니까.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는 것보다 고기를 잡고 가족을 부양하고 싶다는 아슬 레.

오직 그의 눈에는 알리다와 아기 시그발이 있을 뿐, 세상의 정의는, 정의로운 세상은  없다. 

등을 누일 자리 하나 내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쟁취하는 일이(죽여서도라도 혹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아슬레의 정의가 되었다. 그러하기에 아슬레는 순간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사랑의 고결함이 아니라 뺏고 죽여서라도 유지하려는 섬찟한 사랑이 나는 두려웠다.

뺏고 죽여서 근근이 유지되는 사랑이 과연 사랑일까? 지키기 위해 끝없이 뺏아야 하는 현실이 ...

세상이 등을 누일 자리 하나 주지 않으나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으로 면죄부가 성립될 수는 없으리라. 보따리 두 개를 든 17세의 어린 부부, 게다가 만삭의 임산부 ... 그들의 절박함만으로 세상에 틈입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견고하고 잔인하고 냉혹하다. 


3부 <해 질 무렵>은 먹고살기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한 알리다의 이야기다. 알리다의 딸이 어머니의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본문 곳곳에 알리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뒤섞여있다

오슬레이크는 집을 관리할 여자가 필요하고 무일푼의 알리다는 의식주가 필요하다

오슬레이크는 시그발과 자기를 기꺼이 거두어줄 남자이고...

시그발은 아슬레처럼 연주자의 길을 걷는다          

아슬레의 아버지 이름이 시그발이고 아슬레의 아들 이름이 시그발이다

오슬레이크의 할아버지 아름이 모두 오슬레이크다.

가문의 같은 이름...  같은 운명의 지속...     

아슬레와 알리다, 아기 시그발 이렇게 3명

끝없이 반복되는 나와 당신 그리고 아기...   

결국 욘 포세의 < 3부작은>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나와 당신과 아기... 세상의 모든 나와 당신과 아기에 대한 이야기다, 나와 당신과 아기를 위해 틈을 내어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달려든 남자 아슬래와 나와 당신과 아기를 위해 기꺼이 오슬레이크의 가정부 겸 아내가 되는 실리를 택한 알리다와 .... 

결국 모든 것은 되돌아오게 되어있기에 뒬리야의 바다로 떠내려가 죽음을 맞은 알리다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아슬레의 이야기, 그리고 그 틈에서 태어나는 세상의 아기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적인 소설이고 꿈과 기억이 왔다 갔다 하는 하이퍼리얼리즘 스타일의 소설이고 

또한 저자 자신이 "완전히 내 고유의 방식으로 쓴다"라고 선언했음에도 

어딘지 매우 불편한 소설이다. 운명, 예술, 죄, 양심, 사랑, 탄생, 죽음, 소멸에 대한 모든 내용들이 담겨있긴 하지만 결국 욘 포세가 독자인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대체 무엇일까..... 

바이올린을 판 돈으로 결혼반지를 사려다가 푸른 진주가 박힌 황금팔찌를 사는 것,  아슬레는 끝내 법률상으로는 부부가 될 수 없으리란 걸 예감했을까.  번쩍이는 황금과 푸른 진주가 박힌 팔찌에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벼리빈에서 시간낭비를 하지 않고 소박한 결혼반지를 하나 사서 최대한 빨리 돌아왔다면 아마도 이 소설은 없었으리라....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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