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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은 자작나무일까

후계림 조성을 위해 베어지는 나무들... 인간의 논리란 야만적이다

원대리 원대봉 자락엔 1989년부터 1996년까지 138헥타르(㏊) 규모로 조성된 자작나무숲이 있다.  

자작나무는 남한에 자생종이 아니어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이다. 곧게 뻗은 하얀색, 이국적인 정취 탓에 해마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자작나무의 수명은 평균 40~50년 정도로 다른 나무에 비해 수명이 짧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조성된 지 30년이 되어 후계림 조성을 위해 축구장 14개 규모(약 10ha 정도)의 천연림을 베어내고 있다고 한다.  밑동만 남은 굴참나무에 날이 박히고 소나무, 물박달나무 밑동들이 늘어서있다. 그 사이사이에 새하얀 어린 생명이 들어서고 있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조성된 자작나무 ‘후계림'이다.     

 후계림 조성에 대해 산림청은 자작나무숲 인근 노령·불량림을 대상으로 수종을 갱신해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지만 자작나무 군락 조성을 위해 60년 이상된 자생적 숲을 파괴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모를 일이다. 자연에 인간의 논리를 들이댈 수 없는 일, 오직 나무들만이 알고 있으리라.   


나의 브런치 닉네임도 ‘날고 싶은 자작나무’ 일 정도 자작나무를 사랑한다.

아마도 글을 쓰는 이로서 ‘자작나무’가 주는 영감을 사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작나무는 서식지가 대부분 매우 춥고 눈 쌓인 곳이어서 과도한 햇빛은 반사하고 적당한 열만 흡수하기 위해 수피가 하얗다고 한다. 자작나무의 영어 이름인 버취(Birch)의 어원은 ‘글을 쓰는 나무껍질’란 뜻이다. 사람들은 종이처럼 얇은 껍질이 겹겹이 쌓인 자작나무 껍질을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글을 쓰는 나무껍질. 실제로 종이가 귀하던 시절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여 ‘낭만 나무’라고도 불린다.      

돌돌 말린 자작나무 수피는 하얀 붕대처럼 보인다. 자작나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몇 겹 인지도 모를 붕대를 감고 있다. 세상 속에서 발화되지 못한 언어들을 붕대 안에 싸고 있다. 자작나무들은 바람이 불어올 때 자작자작 이야기를 나누고 입으로 못다 한 말은 수피에 적어가며 돌돌 말린 제 몸을 풀어가며  밤새도록 자작거릴 것이다.     


모든 나무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우점종이 되기 위해.... 

 불모지에서 얼마나 빨리 자라 수관을 형성하고 우점종이 되느냐는 나무의 생존에 중요하다. 서로 어깨와 어깨를 겯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홀로 선 것들의 치열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대지에 뿌리박고 온몸으로 중력에 역행하여 위를 향해 팔을 뻗어 올리는 것. 존재 증명 투쟁의 방식이다. 

 자작나무는 햇빛을 좋아하여 산불이나 산사태로 빈 땅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자리 잡고 빠른 속도로 숲을 이루고 다른 종의 나무와는 어떤 경쟁도 허용하지 않는 듯 바람이 불면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가 채찍처럼 경쟁자 나무의 수관을 때려서 그 나무의 성장에 지장을 준다고 한다. 이기적인 행동으로도 보이지만 결국은 일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투쟁처럼 여겨진다.  짧은 시간 동안 그 어떤 나무보다도 저돌적이며 치열하게 생을 살다 가야 하는 자작나무의 숙명이기도 하다.     

나무와 나무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경외감을 주지만

인간을 위해 오랜 기간 자연스럽게 조성된 천연 숲을 파괴하면서까지 자작나무숲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자작나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시 백석의 <백화>가 있다.     


< 백화 >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너머는 平安道 땅이 보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           


백석의 시 <백화>는 순우리말로 흰 자작나무란 뜻이다. 눈처럼 흰 자작나무 숲에 들러 싸인 깊은 산속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작나무는 모든 것을 위한 '모든  것'이다.  집을 구성하는 대들보, 기둥, 문살도 자작나무고, 메밀국수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고 박우물도 자작나무로 되어있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북부지방 사람들에게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이 잘 붙고 오래가서 불쏘시개로 유용하다. 자작나무는 자신의 몸을 태울 때 ‘자작자작’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눈 덮인 산골마을 마가리에 자작나무 장작이 타들어가면 자작자작 소리 들려오고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먼 산의 여우는 캥캥 울어댈 것이다. 자작나무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 그들도 자작나무를 닮았을 것만 같다.     


자작나무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에겐 '모든 것이었다. 나무가 인간의 의,식,주가 되어야 했던 때 자작나무는 제 용도를 다한 셈이다.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은 눈 내리는 날 절경으로도 유명해서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수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그곳을 찾을 것이다. 새하얀 직립이 주는 거룩함을 느끼기 위해...

새하얀 직립이 주는 거룩함이 다른 나무를 훼손시키면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마음이 불편해진다.


지금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계절.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늙은 나무들은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우러르고 있을 터인데... 자작나무들은 지금 날고 싶은 것일까.  다른 나무의 죽음을 대가로 새로운 곳에 어린 자작나무들이 지라는 것을 바라보는 자작나무의 마음은 어떠할까.  


어떤 나무들은 잘려나가고 어떤 나무들은 심어진다.

인간의 기준에 따라... 인간의 쓸모에 따라..

'쓸모'에 대한 인간의 기준이란 참 모호하고 알 수 없고 불편한 것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픽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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