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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며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수시로 세우고.... 또 수시로 무너뜨리고...

가진 것은 탄식, 희망이라는 것을 돌아보면 희망의 내용은 온통 질투뿐이었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미친 듯 사랑을 찾아 거리를 헤매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다.   

그의 말처럼 질투는 삶의 동력인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끝없이 질투한다는 것은 내 삶에 그만큼 결여가 많다는 의미일 것.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 허기와 허기 사이 또 허기가 태어나고 있다는 것......

    


돌아보면 단 한 번도 ‘만족’을 느껴보지 못한 것은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삶 속에 존재하는 ‘나’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끝없이 질투하는 것, 지나간 시간에, 어디선가 오고 있을 미래에, 어딘가 이루지 못한 꿈들에 대해

끝없이 질투한다     

다만 사람에 대해서는 질투하지 않는다

타인은 내 영역을 넘어서는 대상이고 그 타인이 가진 것에 대해 질투한들 그것은 열등감이지 온전한 질투가 아닐 것이기에.... 누군가를 질투하는 일은 지치는 일, 소모적인 일이다.

           


나는 질투한다. 오래전 시인 기형도가 종이 위에 수많은 희망의 공장을 세우며

끝없이 질투하던 것처럼... 내 희망의 내용이 질투뿐이라 해도 괜찮다. 

동백의 선홍빛 붉음을 질투힌 다. 꽃잎 한번 흩날려보지 않고 가차 없이, 미련 없이 한꺼번에 툭 떨어지고 마는 그 명료한 추락을 나는 질투한다.     

까치 한 마리 마른 가지를 물고 겨울나무로 호로로 날아간다.

나무의 위태로운 끝에 제법 그럴듯한 둥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부리로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날아가는 새는.... 저만큼의 둥지를 만들기 위해 대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날갯짓을 하였을까?

나뭇가지를 물고 비상하는 까치의 날갯짓을 질투한다     

온통 드러난 겨울나무의 비움을 질투한다. 감출 것 하나 없는,.... 가지와 가지 사이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그 찬란한 여백을 질투한다.     

끝없이 쉬지 않고 내리는 2월의 봄비를 질투한다. 그 비를 맞고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수많은 음모들을 나는 질투한다.

이른 아침, 비에 젖은 땅 위로... 양귀비 씨앗을 뿌려놓았다.

어딘가로 어딘가로 스며들어 터를 잡고 뿌리내릴 그 어린 씨앗의 가능성을 질투한다. 그 작은 씨앗 속에 그토록 진한 아름다움이 숨어있음을 질투한다.

수많은 사물들의 인내심을 나는 질투한다. 의자와 책상, 컴퓨터... 뒤엉킨 책들.... 

밑줄 그어진 책의 한 페이지를 질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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