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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기억은 ‘기록’을 통해 집단의 역사가 된다

기록이 없다면 역사도 없다/ 김동우 작가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 김동우 씨의 기사를 보았다.

     

"개인의 기억은 ‘기록’을 통해 집단의 역사가 된다. 휘발성 강한 기억을 누구나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붙잡아 두는 것이 기록의 역할이다. 기록이 없다면 역사도 존재할 수 없다. 설사 불행한 기억이라도 이에 관한 기록을 찾고 정리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역사로 남겨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    


35년간 식민 지배하에서도  민족의 정체성, 언어, 문화...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기록’으로 확인 가능하다는 그는 “문제는 이러한 기록은 스스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찾고,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이 맡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고 말한다.

 

“육체적인 힘듦은 견딜 수 있다. 그보다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독립운동사적지를 방문해 가장 마음이 안 좋을 때가 아무것도 없는 ‘빈터’이거나 다른 건물이 서 있을 때다.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기록해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심적으로 힘이 든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나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이걸 누가 기록하겠나. 이 흔적을 외롭게 두지 말자는 생각으로 버틴다.”     

(기사 부분 발췌) 


중국 길림성 왕청현 나자구 신선동에는  1910년대 나자구사관학교 학생들이 그려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가 동굴 벽면에 그려져 있다. 대한독립이란 글귀와 이준, 양(량)희, 지승호, 장태호라는 4명의 이름이 함께 쓰여 있다고 한다.  트랙터를 타고 찾아가야 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곳. 동굴 벽면에 태극기를 그리며 '대한 독립'이란 글자와 자신의 이름을 적는 4명의 젊은이들..

그들에게 '대한 독립'은 꿈이고 희망이고 인생의 모든 것이었으리라.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어도 좋은 것이었으리라. 
     


“일본 후쿠오카현에 가면 소에다 마치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거기에 가면, 휴가 공동묘지라는 곳이 있는데 근처 탄광에서 일하다 죽은 조선인들을 몰래 화장해서 묻은 무덤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바닥에 돌아다니는 못생기고 쓸모없는 돌멩이를 하나 갖다 놨다. 일종의 묘비인 셈이다. 보타이시 무덤이라 한다. (*보타이시는 쓸모없는 돌이란 뜻). 이곳에 묻힌 조선인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이런 무덤 옆에는 반려동물 무덤도 함께 있다. 동글동글하고 잘생긴 돌로 이곳이 반려동물 무덤이라고 표시를 해뒀다. 반려동물보다 못한 것이 조선인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보타이시 무덤 : 쓸모없는 돌의 무덤...

오직 이 한 마디가 오늘 아침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수많은  쓸모없는 돌... 강제징용되어 낯선 탄광에서 일하다 죽은 조선인들..

그들은 죽음으로써 '쓸모 있음'에서 '쓸모없음'이 되었다는 의미인가

어쨌든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추모는 해야 했기 애 주변에 굴러다니는 쓸모없는 돌들을 추모의 의미로 가져다 놓다 보니 '보타이시'가 되었다는 의미인가


길을 가다 무심코 지나쳐버릴 작은 돌멩이 하나... 누구의 무덤인지조차 알 수 없는 보티이시 무덤.

낯선 타국에서 조국의 하늘을 그리워하며 죽었을 그들을 기억하는 3월 1일의 아침이다


"개인의 기억은 ‘기록’을 통해 집단의 역사가 된다. 휘발성 강한 기억을 누구나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붙잡아 두는 것이 기록의 역할이다. 기록이 없다면 역사도 존재할 수 없다"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는 질문에 김동우 사진작가는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독립운동 흔적이 남은 현장을 더욱더 생생하고, 성의 있게 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기록자로서 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자로서의 소명....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버릴 역사의 현장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 일.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죽음에 대한 부채 의식. 기록에 남겨야만 후대로 전해질 수 있다는 사명감이 그를 밀고 가는 것이리라.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꽃샘추위라더니.. 아닌 게 아니라 바람결이 매섭다.

이 땅의 우리는 모두 오래전 그 처참했던 시기에 목숨을 바쳐야 했던 이들의 죽음을  딛고 살아간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부채를 품고 살아야 한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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