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렬한 외침을 다시 듣고 싶다
<봄에 꽃들은 세 번씩 핀다>
필 때 한 번
흩날릴 때 한 번
떨어져서 한 번
나뭇가지에서 한 번
허공에서 한 번
바닥에서 밑바닥에서도 한 번 더
봄 한 번에 나무들은 세 번씩 꽃 핀다
-김경미(1959~)
봄에 피는 꽃들은 세 번씩 핀다는 시가 있다
필 때, 흩날릴 때, 떨어져서... 나뭇가지에서, 허공에서, 밑바닥에서
새빨간 동백은 흩날리지 않는다. 장렬한 추락이다
강력한 외마디 ‘툭’.
동백꽃이 지고 있었다. 통째로......... 아무렇지 않게 해체된 꿈 아래,
개미들만 분주한다. 붉음이 땅을 물들인다. 이미 내려앉은, 이미 가라앉은 붉음 속에 여전히 붉음에 취한 동박새 한 마리 비틀거린다. 온통 붉음 속에 갇혀있다
떨어진 동백의 선홍빛이 짙은 갈색으로 변해갈 때까지 길 위에 동백의 흔적이 문신처럼 남는다.
지금은 개발되어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곳, 아주 오래전이었을까. 가슴이 죄어오던 젊은 날, 오동도를 향했던 기억이 난다. 오동도의 미로 같은 산책길을 따라 붉은 동백이 떨어져 있었다.
만개한 핏빛 울음. 한 무더기의 통곡 같은 꽃무더기.
경칩 지나서야 꽃이 피는 다른 꽃들과 달리 동백은 11월 말부터 꽃피우기 시작해 2.3월이면 만발하게 핀다. 수정을 새에게 의존하는 조매화(鳥媒花)다. 곤충을 유인할 향기가 필요 없으니 동백은 향기가 나지 않는다. 대신 동박새나 직바구리 같은 새를 유인하기 위해선 충분한 양의 꿀이 필요하다.
낙엽 지지 않는 진초록으로 반들거리는 잎사귀, 빨간 꽃, 동그란 열매 모두가 귀하고 아름답다
동양의 상징적인 나무가 은행나무라면 동양의 상징적인 꽃은 동백꽃이라고 한다. 한겨울 눈 사이로 빨간 동백이 피어있는 모습은 거룩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찰 주변에 동백꽃을 많이 심은 이유는 한 번에 지는 동백꽃의 모습이 인생무상이나 허무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선운사입구에도 유난히 동백이 많다.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김춘수의 <꽃>은 1959년에 출판된 시집 《꽃의 소묘》에 수록돼 있는 작품인데 이 무렵 김추수 시인은 언어가 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황동규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김춘수 시인의 고향이 동백으로 유명한 통영이고 시인은 동백을 ‘산다화’라 부르며 많은 시를 썼다고 한다. 동백꽃이 곧 산다화인 셈이고 그의 시 <꽃>에 등장하는 ‘꽃’도 동백이라 할 수 있다.
리처드 플래너건의 소설『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타이-미얀마 간 ‘죽음의 철도’ 라인에서 살아남아 잘 나가는 외과의사이자 화려한 전쟁 영웅인 도리고 에번스의 이야기다. 도리고 에번스가 전쟁에 출정하기 전 낡은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에이미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철도 건설 현장에서 전쟁포로로 겪어야 했던 비참한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P 88
그는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가 그것을 가슴 쪽으로 가져오자 책은 어둠을 벗어나 햇빛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빛 속에서 책을 들고 그 책과 빛과 먼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가 있는 이 세상과 늦은 오후의 햇빛이 순간적으로 형성한 빗줄기가 있어야만 실제 세계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숨은 세계.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고, 은은한 빛을 발하고 서로 아무렇게나 부딪쳐서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날아가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 빨간 동백꽃을 꽂은 여자가 어둠과 빛의 줄무늬 속에서 도리고 앞에 서 있었다.. 파란 불꽃이 사납게 타오르는 여자, 두 사람 사이 창문을 통해 빗줄기가 들어오고 그 안에서 먼지들이 솟아올랐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먼 북 (deep north)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먼 북이 있으리라. 저자가 ‘멀다’는 개념을 ‘깊다’라는 언어로 적고 있다. 전쟁 포로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생은 멀고 깊은 북쪽처럼 아득하다.
도리고 에번스를 끝내 살게 하는 힘은 낡은 서점 책꽂이 앞에 서있던 여자, 빨간 동백꽃을 머리에 꽂은 에이미 때문이었으리라. 멀고 깊은 북쪽 어딘가에 에미미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희망, 결국은 연인이나 아내가 아닌 숙모가 되어 그의 곁에 나타나지만...
이 소설의 그 어떤 내용보다도 머리에 빨간 동백꽃을 꽂은 에이미의 모습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낡은 서가 앞, 빛과 먼지들이 만들어내는 이중주 앞에 푸른 불꽃 눈을 지닌 빨간 동백의 여인이라니..
아버지는 꽃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유년시절 붉은 벽돌담엔 연분홍 장미 넝쿨이 흐드러졌고 화단 한가운데는 거대한 동백나무가 있었다. 눈이 내리던 날도 꽃봉오리 매달려있던 그 선연한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이른 새벽, 경보음을 울리지 않은 채 앰뷸런스가 집 앞에 멈추었다.
들것에 실려 방 안으로 옮겨진 아버지, 임종을 집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본인의 뜻이었으리라
20대의 어느 날 새벽의 일이다...
방 안으로 옮겨질 때 아버지의 몸에 꽂힌 주삿바늘이 거세게 흔들렸다
검붉은 피가 역류했다. 그때 빨간 동백 한 송이 툭 떨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무심하게, 평소 아무렇지 않게 듣던 동백꽃 지는 소리가 그 순간 몇 십배나 증폭되어 들려왔다.
대지를 두드리는 둔탁한 절규처럼... 생의 마지막 노크소리처럼 ..
아버지의 유언을 들었던가 듣지 못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잠시 눈을 뜨시고 어디인지 확인하신 것이 전부였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나는 빨간 동백이 지던 그 둔탁한 소리를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때부터였을까. 동백의 군락지를 찾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 위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곤 한다.
빨갛게 핀 동백 무리를 보면 가슴이 저며온다. 유년의 흔적이 남아있던 붉은 벽돌집을 떠나면서 화단의 동백나무를 아버지의 묘소로 옮겨 심었다. 지금도 여전히 죽지 않고 아버지의 곁에 있는 늙은 동백나무. 어찌 된 일인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해마다 왜소해진다.
그렇게 멀고 깊은 저마다의 북쪽으로 간다.
북망산천이라 하지 않는가
먼 북으로 가는 넓은 길도 아닌 좁은 길을 우리는 걷고 있다. 먼지 날리는 서점의 책꽂이 앞에서 마주친 인연을 마음에 품으며 고통을 견디어내듯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일 뿐, 그래도’를 품고 저마다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잇샤의 하이쿠처럼... 이슬의 세계, 모든 이슬방울 안에는 투쟁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일 뿐이다.
동백(camellia)의 꽃말은 사랑이다. 특히 빨간 동백꽃의 꽃말은 ‘당신을 열렬히 사랑합니다.’라고 한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단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한 말....... 뒤늦게 이제야...
‘당신을 열렬히 사랑합니다’를 중얼거리고 있다. 나의 뒤늦은 고백이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기를.
그 유년의 새빨간 동백나무 아래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
‘툭’ 장렬히 지고 말던.... 그 강렬한 외침을 또다시 듣고 싶은 봄날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건>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