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검은 펭귄 효과가 있다면...

나는 붉은 여왕 효과가 두렵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까 그 또한 두렵다

새하얀 눈 위를 검은 펭귄이 걷고 있다.

흑색증이라는 유전자 변이로 인해 피부와 깃털 전체가 검은색을 띤 검은 펭귄이 사우스 조지아섬 탐사 도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까만색 날개와 흰색 몸통이 마치 흰 셔츠에 턱시도를 입은 듯해 남극의 신사라고 불리는 펭귄 무리에 온통 까만색 펭귄이 한 마리 끼어 있다. 유난히 포식자의 눈에 잘 띄어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크고, 무리로부터 배척당할 가능성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검은 펭귄이 무리의 일원으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블랙스완효과(Black swan effect)는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충격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발생 전에는 전혀 예상되지 않았지만 발생하면전반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검은 백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모든 백조들은 하얗다는 것이 통념이었는데 검은 백조들이 모여서는 서식지가 1697년 네델란드 탐험가 빌럼 더 블라밍크( Willem de Vlamingh)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알려지면서 검은 백조는 이제는 더 이상 특이한 동물이 아니다. 검은 백조(cygnu satratus)는 서호주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데 호수, 습지 등 다양한 수역에서 발견되며 퍼스( perth)의 스완강(swan river)주변은 검은 백조의 주요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블랙스완효과’처럼 ‘블랙펭귄효과’를 가정한다면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펭귄 무리중 온몸이 검은 펭귄의 출몰)이 발생했지만 이미 블랙스완효과를 학습한 사람들은 사회,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부분에 있어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고 무난하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혼자 상상해본다.


펭귄과 관련하여 ‘펭귄효과’란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가 남들이 구매하기 시작하면 그에 자극돼 덩달아 구매를 결심하는 현상을 말한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펭귄들은 먹잇감을 구하러 바다에 들어가야 하지만 바닷속에는 바다표범과 같은 천적들이 있어 빙산 끝에서 눈치만 보고 모여 있다가, 바다로 뛰어드는 첫 번째 펭귄을 따라 나머지 펭귄도 바다로 뛰어든다고 한다.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은 위험한 상황에서 먼저 도전하는 용기를 내 다른 이들에게도 참여의 동기를 유발하는 선발자를 가리킨다. 퍼스트 펭귄효과는 신제품을 소비자가 선뜻 구매하지 않을 때 누군가를 내세워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된다.

학생들에게 퍼스트 펭귄이 될 생각이 있는지를 물으면 대부분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5번째 펭귄이 가장 안정적일 거 같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아주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라면 무리의 선봉에 서는 것도 두렵지만 무리의 마지막에 서고 싶지도 않은 요즘 아이들. 안정지향적인 성향을 반영한다. 위험을 무릅쓴 모험도 싫고, 그렇다고 무능해보이는 맨 뒷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서..

모두가 중간에 끼어있는 펭귄을 선호한다면 언젠가는 검은 색도 흰색도 아닌 회색의 펭귄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회색 코뿔소grey rhino

회색 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가 나와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말한다. 코뿔소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며 진동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지만 두려움 때문에 피하지 못하거나 대처 방법을 몰라 일부러 무시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블랙스완(검은 백조)이 예상할 수 없었던 위험 요인이라면 회색 코뿔소는 예상하면서도 대처하지 못하는 위험 요인이란 차이가 있다. 예상할 수 있음에도 그로 인해 초래될 효과를 간과하여 얻게되는 위험을 상징한다.

회색 펭귄 이론을 혼자서 상상해본다면 지속적인 위험성 경고 혹은 낙관적 전망 모두에 불신을 가지고 전진도 후퇴도 하지 않는 답보적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가끔 수많은 가설 중 가장 끔찍한 것이 붉은 여왕 효과라 생각한다.

붉은 여왕이론(Red queen effect)

붉은여왕효과란 어떤 대상이 변화하더라도, 그 대상의 주변 환경과 경쟁 상대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적으로 뒤처지거나 제자리에 머물고 마는 현상을 말한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 스』에서 유래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뛰어도 모두가 열심히 뛰기 때문에 혹은 아무리 내가 열심히 뛰어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의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쉬지않고 전진해야 한다는 것


사우스 조지아섬 탐사 도중 검은 펭귄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검은 펭귄은 더 이상 우리에게 독특하고 낯선 소재거리가 되지 못한다. 남극. 턱시도를 차려입은 듯한 펭귄들이 어느 순간 모두 사라지고...

멀리서 보면 온통 회색 덩어리 같은 회색 펭귄들이 무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펭귄 사회의 변화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붉은 여왕처럼 끝없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다.

어릴 적 나는 책에서 읽은 모든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 그 시절에 읽었던 빨강 표지의 책들이 그립다.

책꽂이가 별로 없던 시대라 커다란 장롱 위에도 책들이 있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책의 이름이 먼저 들어왔다. 책 제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버릴 정도로..

빨강 책을 열면 그 안의 세계가 세상의 전부인양 행복했던 유년이었다. 돌아보면...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요즘은 가장 두렵다

생각대로 살아가는 일... 내 의지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사는 형편대로, 상황대로 생각하게 된다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자신이 바라보는 눈높이가 곧 삶의 질을 결정하는 셈이다.

1월도 중순을 향해간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고 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쓰는 수밖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붙잡기 위해서....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20241226_170933.jpg

<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출간

20241231_094635 (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 길 위로 지그재그 선을 그리며 걷는 사람,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