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로 동굴그림으로 키푸로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책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오세요.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 olav h. Hauge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사소하고 소중한 것들...
우리는 왜 새처럼 바람처럼 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실 '우리'라는 그릇에 담을 수조차 없는 것
우리의 욕심은 과하다. 터무니없이... 물방울과 소금 한 톨로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찾는 것이다.”
하우게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다만 우리가 찾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어린 시절 동화책의 결말처럼 “그들은 ~~~ 그렇게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가 아닌 세상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사실 잘 모르겠다.
사람보다 책을 만나는 것이 더 익숙해서일까 사람도 책으로 보일 때가 있다.
세상 사람들의 일상.... 저마다 제각각의 무늬를 지닌 사람들은 살아 움직이는 한 권의 책들이다.
세상에 태어난 책은 프롤로그가 있고 에필로그가 있으며 목차가 있으며 추천가의 말이 있다
거의 완결된........ 형태. 가격과 ISBN 이 찍힌. 앞표지와 뒤표지가 본문이 달아나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견고한 성처럼.
그러나 ‘사람’이라는 책은.... 읽기도 난해하지만 프롤로그에서 만난 ‘사람’과 에필로그에서 ‘만난’ 사람이 동일인이 맞는가 싶을 때가 있다. 앞표지는 있으나 뒤표지가 언제 만들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목차도 그때그때 수시로 수정되어야 하니 끝내 미완성이다.
가격을 붙이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떤 기준으로.... 그 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까?
어떤 책은 중간에서 미완인 채로 끝나버린 책도 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날 방콕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리고 끝.
사람이라는 책. 살아 있는 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가 찾는 방향에 따라....
책의 결말도 사람의 결말도 달라진다.
수시로 움직이는 본문, 결말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사람이란 책으로, 책 속의 사람으로, 책 속의 책으로, 사람 속의 사람으로........
잊히는 것, 망각되는 것... 잊어도 좋은 것... 잊어서는 안 되는 것
기억해야 할 것,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
우리의 뇌에서 ‘기억’이란 얼마나 엄청난 단어인가 문득 생각한다
어떤 망각은 축복이고 어떤 망각은 불행이다.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는 기억은 때로 불행이다.
어떤 것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기에 소의 되새김처럼 끝없이 불러내야 하는 기억들도 있다
끝없이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잊히고 싶지 않아서, 또 끝없이 무언가를 적는 이유는 순간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닌가.
아르헨티나 손동굴 벽화... 동굴벽에 박제된 존재의 외침 ‘나 여기 있음’을 알리는 신호 같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상의 모든 처음과 환희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P 67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붉은 소 그림
여기가 아닌, 거기가 아닌 곳에서 후대의 우리는 시간의 발자국 소릴 듣는다
구석기인들에게 한 마리의 ‘들소’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들소’ 이상의 것이다. 먹잇감으로서의 들소가 아닌 ‘들소’로서의 ‘들소’를 마주한다.
<빨강 수집가의 시간> P 41~
붉은 배를 타고 떠나는 붉은 사람들.. 보후슬란 앞바다를 물들인 사람들
척박한 자연에 맞서고 거대한 바위에, 동굴벽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려던 이들
<빨강 수집가의 시간> p 44~
만일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무엇을 남기려 했을까?
만일 내가 그 시대로 돌아가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나는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암각화를 그리든, 손바닥 춤을 찍어내든.......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기록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오래전 그곳에 살아있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
스페인에 의해 야만적으로 파괴되고 일시에 사라진 잉카문명.
잉카인들의 키푸는 장식용 목걸이가 아니다. 얼핏 보면 형형 색색의 실로 매듭을 만든 키푸가 당시 의례용 목걸이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문자였다고 한다.
잉카인의 무덤에서 발굴된 키푸(khipu): 잉카매듭문자'는 중심 끈의 길이가 2m를 넘고 여기에 100개 정도의 하위 끈들이 이어져있는 끈 매듭이다. 결승문자(結繩文字)의 일부이며, 케추아어로 "매듭"을 뜻한다.
면이나 라마털로 만든 끈매듭이 한때 잉카인들 장식품으로 인식되었으나 학자들의 오랜 연구결과 소유한 가축 수, 빌린 대금의 잔액, 인구 조사 등을 기록한 거대한 장부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존하는 약 600개의 키푸는 가로로 놓인 끈에 일련의 매듭을 지은 끈들을 매달아 사용하는데 다른 문명에서 만든 매듭과 차별화를 이룬다. 이들 매듭은 네 번 돌려 만든 긴 매듭과 단일 매듭, 8 자 모양 매듭, 다양한 매듭들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 십진법에 의한 회계 정보를, 나머지는 문자 정보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1m 되는 줄, 끈을 매듭지어 매듭의 수나 간격에 따라 내용을 기록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는데 24개 이상의 여러 색깔들로 표기하며, 주로 노란색은 금이나 태양, 흰색은 은이나 달, 갈색은 감자 등을 뜻했다. 그 외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 등도 쓰였다. 색깔 외에도 매듭의 모양이나 위치, 방향에 따라서도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위치에 따라 숫자 수가 일, 십, 백, 천, 만 등의 순서를 표기했다. 중심 노끈에 있는 나머지 노끈도 개수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대략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쓰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전해지는 신화에 따르면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자 황제는 신의 지시를 받았는데 태양신은 문자를 쓰지 말라고 했다 한다. 이때부터 문자 비슷한 체계인 키푸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왕과 관리자들은 백성에 대한정보들을 표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높은 계급 관리들은 키푸를 통해 낮은 계급에게 지시를 내렸을 것이고 반대로 지역 회계담당자들은 키푸를 통해 인구, 자원 등의 지역 정보를 상층 계급에 제출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스페인군대 가 1532년 잉카제국을 정복할 때, 키푸가 잉카의 역사와 종교를 설명하는 미신의 대상이라고 믿고 대부분 없애버렸다. 남아있는 매듭문자의 비밀이 완벽하게 풀리면 정복자의 기록이 아닌 잉카인 스스로 남긴 기록을 볼 수 있으리라.
동굴 암각화든, 바위그림이든, 키푸든...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든
모두 저마다 다른 형태를 지닌 '책'임에 틀림없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는 다만 우리가 찾는 것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려원 산문집 202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