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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영화 arrival: contact의 원작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네 아버지가 지금 내게 어떤 질문을 하려고 해,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에 새겨두려고 하고 있지. 그이와 나는 밖에서 디녀쇼를 보고 방금 돌아온 참이란다. 자정을 넘은 시각, 우리는 보름달을 보기 위해 파티오에서 나와 있어... 달빛 아래에서 삼십 대의 남녀가 앞뒤로 천천히 몸을 흔들면서 춤을 추고 있어. 밤의 한기는 전혀 느끼지 않아. 이윽고 네 아빠는 이렇게 말해 “아이를 가지고 싶어?”

...

너를 가졌던 집과 네가 자란 집들, 네 아빠와 나는 네가 태어나고 이 년 후에 첫 번째 집을 팔아. 나는 네가 떠나간 직후에 두 번째 집을 팔지. 그 무렵이면 넬슨과 나는 그 농가로 이사하고. 네 아빠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그 여자와 함께 살고 있었지.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단다. 자주 그 생각을 해보곤 해.


지구 궤도상에 우주선이 출현했다는 기사가 나왔고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은 아마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대한 전화였을지 몰라.

첫 번째는 산악 구조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지... 네 아빠와 나는 일 년쯤 한 번이나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였지만 그 전화를 받고 내가 처음 한 일은 네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지.

... 직원이 시트를 걷어 네 얼굴을 보여주었지. “예 맞습니다. 제 딸입니다.”

그때 네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야.


캠프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체경 (Looking glass)라는 별명이 붙은 외계인의 기계장치였지. 게리 도널드와 나는 체경 연구에서 한 팀이었다.
체경은 반원형 방의 실물 크기 모형처럼 보였지, 게리와 나는 서둘러 모든 장치를 연결했다. 마이크, 음향분석기, 스피커 등등

외계인은 일곱 개의 가지가 맞닿은 지점에 올려놓은 통처럼 보였다. 방사상으로 대칭이었고 가지는 모두 팔이나 다리로 가능할 수 있었다. 네 다리를 써서 걷고 있었고 세 개의 가지는 팔처럼 측면에 말려 올라간 상태였다. 게리는 이를 ‘헵타포드’라고 불렀다.


눈꺼풀이 없는 일곱 개의 눈이 헵타포드의 몸통 꼭대기를 둘러싸고 있었다. 헵타포트는 다시 다른 헵타포드를 대동하고 돌아왔다.... 내가 체경을 향해 걸어가자 헵타포드와 같은 행등을 했다. 나는 나 자신을 가리키고 천천히 ‘인간’ 그리고 게리를 가리키며 ‘인간’ 그런 다음 각 헵타포드를 가리키며 “당신은 무엇입니까?”

반응이 없었다. 같은 일을 반복했다. 헵타포드 하나가 일곱 개의 가지중 하나를 써서 자신을 가리켰다... 짧게 퍼덕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고 동체 꼭대기의 오므라진 구멍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헵타포드는 자기 동료를 가리키고는 다시 퍼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덕거리는 소리를 나타내는 두 개의 음향 패턴이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다.


1770년 쿡 선장이 지휘하는 범선 인데버호는 오스트레일리아 퀸줄랜드 해안에서 좌초했어. 쿡은 부하들을 이끌고 원주민들을 만났지. 선원 중 한 사람이 새끼를 배의 주머니에 넣고 껑충껑충 뛰며 돌아다니는 동물을 가리키며 이름을 물었지, 원주민은 “캥구루”라고 대답했어. 이때부터 쿡과 부하들은 이 동물을 캥구루라 불렀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캥구루란 말은 “방금 뭐라고 했지?”라는 뜻이었대


디지털카메라와 대형 비디오 스크린이 필요해요. 헵타포드에게는 글을 생성하는 수단이 있다면 그들의 문자 체계는 매우 규칙적이고 안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체경을 통한 다음 세션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말을 하면서 ‘인간’이라는 글자를 컴퓨터 화면에 써서 보여주었다. 헵타포드 하나가 말을 했고 그다음 칠지 하나를 뻗어 흘려 쓴 낙서 같은 문자를 썼다. 두 헵타포드를 ‘플래퍼’와 ‘라즈베리’라 이름 붙였다.

“저들의 문자는 단어로 분할되어 있지 않아요, 구성 단어들에 해당하는 이 표를 결합해서 문장을 표기하고 있어요. 회전하고 수정하면서 어표들을 결합시키는 거예요.”

우리 입장에서 가장 큰 혼란의 원인이 된 것은 헵타포드의 ‘글’이었다. 전혀 글 같지 않고 오히려 정교한 그래픽 디자인의 집합체처럼 보였다. 플래퍼나 라즈베리는 필요할 때마다 어표들을 갖다 붙여 거대한 복합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문장을 작성하곤 했다. 이런 형태의 문자는 읽는 사람이 메시지 전체의 문맥을 미리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원시적인 기호시스템을 연상케 했다.

그들의 음성언어의 구문법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각적구문법.


우리는 정기적으로 헵타포드에게 지구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그럴 때마다 ‘보기 위해’ ‘관찰하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빛은 일단 선택 가능한 경로들을 검토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광선은 자신이 정확한 목적지를 알아야 해. 목적지가 다르면 가장 빠른 경로도 바뀔 테니까.

빛은 이전의 지점을 향해 출발한 다음 나중에 진로를 수정할 수는 없어. 빛은 처음부터 모든 계산을 끝마처야 해.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헵타포드 B를 연습했고 점점 헵타포드 B와 같은 능력을 발달시키고 있었다.

헵타포드 B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어는 달라져도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사고란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말하는 과정이었다.

헵타포드 B를 습득하는 동안 이질적인 경험을 하고 있었다. 사고가 도형의 형태로 코드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가 마음속 목소리로 표현되는 대신 유리창에 서리가 끼듯이 생겨나는 어의문자로 대체되는. 광경을 마음속 눈으로 보곤 했다.

앞으로 질주하는 대신 어의 문자들의 기반을 이루는 대칭성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부유하고 있었다. 어의 문자들은 단순한 언어를 넘어선 무언가처럼 보였다.... 사유에 관여된 모든 요소의 힘은 동등했고 모두가 동일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인류는 인과적 맥락에서 생각하는 편을 선호한다, 운동에너지나 가속도처럼 인류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속성은 모두 주어진 한 시점에서 어떤 한 물체가 가지는 성질이다. 이런 성질은 순차적이고 인과적인 사건 해석으로 이어진다. 어떤 순간이 다음 순간을 낳고 원인과 결과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작용’이나 적분에 의해 정의되는 다른 것들처럼 헵타포드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물리적 속성들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해야만 의미를 가진다. 목적론적인 사건 해석으로 이어진다. 사건을 일정 기간에 걸쳐 바라봄으로써 만족시켜야 할 조건, 최소화나 최대화라는 목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 상태를 알아야 한다. 원인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미래를 아는 일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 단지 추측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실제로 아는 것이 가능할까? 물리학의 기본법칙들은 시간 대칭적이며 과거와 미래 사이에 물리적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게리에게 들은 적 있다.

과거와 미래에 걸친 모든 사건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세월의 책> 앞에 한 여자가 서 있다. 한 손에 확대경을 든 여자는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자신이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을 기록한 대목을 찾아낸 그녀는 다음 대목으로 넘어간다. 그곳애는 그날 그녀가 나중에 하게 될 일들이 적혀있다. 경주마 ‘될 대로 돼라’에 100달러를 걸고 스무 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녀는 경마에 돈을 걸지 않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세월의 책>에 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유의지의 존재는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의지란 의식의 본질적인 일부인 것이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일까? 미래를 아는 경험이 사람을 바꿔놓는다면? 이런 경험이 일종의 절박감을 자기 자신이 하게 될 행동을 정학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면

물질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에 해당된다. 인과적인 것, 목적론적인 것

인류와 헵타포드의 조상들이 맨 처음 자의식의 불꽃을 획득했을 때 모두 동일한 물질세계를 지각했다. 하지만 지각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다. 세계관의 궁극적 상이함은 이런 차이의 결과였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은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었다. 나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 또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미래를 아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행위를 포함해서 나는 결코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아는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월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헵타포드가 왜 떠났는지 결국 알아내지 못하였다. 무슨 이유로 지구로 왔는지, 왜 그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에 관해서도 알아내지 못했다.

헵타포드와의 공동작업은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만났고 헵타포드 B를 배웠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내가 지금 너의 존재를 아는 것을 가능하게 해. 달빛에 물든 파티오에서 말이야. 훗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네 아버지도 떠나가고 너도 떠나가게 될 거야. 이 순간으로부터 내게 남겨질 것은 오직 헵타포드 언어밖에는 없어.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세월의 책>에 따르면 남자는 결혼 후 다른 여자를 만나 떠나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오래 살지 못한다. 남겨진 그녀는 헵타포드 언어를 연구하고 그에 관한 책을 낸다.

이 모든 것이 미리 예견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인생을 살게 될까? 설령 그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도 남자는 떠나고 아이는 죽게 될까?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최소시간을 계산하려면 당연히 출발점과 목적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빛이 빠른 이유는 이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삶의 목적지를 알 수 없다. 그러하기에 계산될 수 없는 것이다.

거대한 <세월의 책> 혹은 < 인생기록장> 등이 있어서

미리 열람 가능하다면.......... 열람 전과 열람 후 그 사람의 삶은 달라질까?
아니면 그 기록대로 이변 없이 진행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기록을 바꾸기 위해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정해진 길을 묵묵히 걷는 것보다 자유의지를 활용한다.

목적을 향하여 가지만 원인과 결과의 관련성을 중시한다

하나의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동일한 지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끝없이 선형으로 전진하는 것... 끝까지 열린 결말이다.

오늘 걸어온 길이 그만큼의 미래를 열어준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저마다 다른 인생의 이야기


내가 알지 못하는, 열람불가능한 책이 있다면

현재의 나는 그 책에 적힌 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빛은 나아가기 전에 이미 최종목적지를 알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다행히 '빛'이 아니다. 실수를 최소화하면서 목표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빛이 아니어서.... 달려가는 내내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최고의 속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실수 하나가 다음에 이르는 과정에 악영향을 미친다 해도...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내 인생의 이야기는 진행 중이고 끝없이 고치고 고쳐도 상관없다.

벌써 1월이 중반을 넘어섰다... 2025년 내 인생의 이야기는 지금 내가 쓰고 있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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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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