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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거의'와 '아직'이 뒤섞인 모자이크 같은 것

‘거의’와 ‘아직’ 사이에서


거의 다했다는 말은 어느 정도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일까?
‘거의’라는 말은 완결에 근접했음을 알리는 신호일뿐.

완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이 끓어오르는 온도. 비등점에 이르지 못하면 물은 끓지 못하듯 우리 삶에서 ‘거의’라는 말은 끓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의’라는 말은 완결에 다가가고 있음을 ‘아직’이라는 말은 완결에 상당히 많이 다가가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거의’와 ‘아직’ 사이에서 나는, 나의 삶은 ‘아직’에 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거의’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나를 뒤흔드는 것,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아직‘이 밀려오는 것 같은 밤이다.


거의 다 왔어

거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채울 것이 남아있었는데

조각을 얻지 못한 틈에서

성토하듯 빛살이 쏟아졌는데

거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말이다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 조각만 더 모으면 되는데

.....

오은 시인의 시 <모자이크> 부분 발췌


’아직‘과 ’거의‘가 뒤섞인 모자이크

’아직‘을 하나하나 채워가면 ’거의‘에 거의 도달할 것이다. 그런데 그날이 언제 올까?

아직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내 인생의 ’거의‘와 ’아직‘의 사이에서 나는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을 뒤적인다. 그의 어린아이 같은 질문에 답을 해보는 시간...


우리의 욕망들은 이슬을

뿌려줘야 한다는 건 맞나?


나무들은 왜 그들의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지?


빗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

슬픈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는 바다 저쪽에서 왔다

이제 그게 나를 방해하면 나는 어디로 가나?


나는 때때로 악한가

아니면 언제나 선한가?


우리는 친절을 배우나

아니면 친절의 탈을 배우나?


누가 무수한 순결한 것들에게

이름과 숫자를 부여하는가?

....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중에서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홀연히 ’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고 ’ 끝없는 시작‘속에 있는 것이다.... 타성, 관습, 확정 속에 굳어있던 사물이 다시 모태의 운동을 시작하는 시간...... 엉뚱한 질문은 세계를 그 원초로 되돌려놓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태초의 시간이 주는 한없는 신선함 속에 벙글거리게 한다. - 정현종


아직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 끝없는 시작‘속에 있다는 것일까.

’아직‘에서 ’거의‘로 이르는 길을 고민하는 밤.

이천이십오 번째 1월의 한 복판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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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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