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행 야간 비행> / 댈러스 위브
나는 오직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낡아빠진 잉크 대신 펜 끝에 그대의 피를 적셔라
사람들은 그제야 이 피가 그대의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니체-
스톡홀름행 야간 비행 / 댈러스 위브/ 1978년 봄 <파리 리뷰> 73호 실림
무명작가에서 최고의 작가가 되기 위해 게이브와의 거래를 감행한다.
결국 그의 눈을 마지막으로 노벨상 수상자 타이틀을 거머쥔다. 머리만 남고 곪아가는 몸뚱이가 되어버린 작가는 바구니에 담겨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러 스톡홀름으로 날아간다.
이 모든 게 게이브리얼 래칫 덕분이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의 왕복 비행기표를 나란히 두 자리씩 마련하고, 킹 구스타프 홀리데이 인에 숙박을 예약하고, 내 고리버들 바구니의 악취를 제거한 뒤 새 시트를 깔아주고, 여행을 위해 곪아가는 내 몸덩이를 목욕시키고 정장 느낌이 나게 위쪽에 흰색 리본끈을 단 검은색 자루를 새로 만들어 입혀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이윽고 나의 첫 번째 비행이 시작되었다. 낡은 보잉 747기가 요란하게 돌진하면서 내 몸덩이가 바구니 한쪽으로 미끄러졌고....
연이은 책의 출판과 세심한 교정과 초록색 수술복과 바스락거리는 지폐와 쨍강거리는 상패와 불후의 악취가 멈추지 않고 활강했다. 기장의 말처럼 내가 아이슬란드와 북대서양과 아일랜드, 잉글랜드, 북해, 노르웨이 15킬로미터 상공의 어둠 속을 이토록 느릿느릿 떠가게 된 것도 모두 게이브리얼 래칫 덕분이다. 스톡홀름에 착륙하면 나는 스웨덴 국왕과 어쩌면 그의 부인과 어린 왕복 전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게 계약전문가 게이브리얼 덕분이다.... 지난 30년간 그는 엄청난 수의 계약을 체결한 덕분에 수술칼을 휘둘러서 거머쥘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
내가 게이브를 처음 만나건 1977년 12월 현대언어학회 학술회의에 참석차 갔던 파머하우스 호텔 로비에서였다.... 그는 슬그머니 다가와 은밀하게 작은 명함을 내밀었다.
초록 바탕에 붉은 글씨로
사무실 주소 시카고 스푼 애비뉴 1313번지
업무시간 ; 고객님 편한 대로
직업 : 계약업자
그리고 좌우명 : ‘무명으로 절뚝이지 말고 이 세상에 발을 들여라.’
그에게 내 문제를 말하자 그는 한가하게 노닥거리기엔 나이가 너무 많으니 성공을 향해 필사적으로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이 도움이 필요해졌다. 그날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 <영미문학의 붕괴 원인으로서 은유적 사고>가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나는 늘 해왔던 일 즉 소설 쓰기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그의 초록색 명함을 꺼냈다.
“게이브 1978년 1월 13일 금요일, 내일이면 나도 예순여섯 살이 돼요. 평생 소설을 써왔지만 어떤 곳에서도 단 한 글자도 출판해주지 않았어요. <파리 리뷰>에 내 소설이 실릴 수만 있다면 내 왼손 새끼손가락을 줄 거예요.”
그는 정말 구매자를 찾아냈다. 톰 리드라는 친구가 내 왼손 새끼손가락을 가져가는 대신 내 소설 <시대에 격노하라>가 <파리 리뷰>에 실리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깨끗한 백지에 한 행씩 띄어서 소설을 타자하고 지워지는 종이는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소설 막바지에 교훈을 늘어놓으면 안 되고 ‘말 그대로’‘ 정말로’ ‘순전히’ ‘단지’ ‘;진정’ ‘절대로’ ‘ 아주’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 없는 단어로 강조하지 말라고 했다. 땀 얼룩을 깨끗이 닦아 내라고 했다. 나는 모든 것을 그대로 했고 도디폴 박사를 찾아가 손가락 제거수술을 받았다......
소설을 발표한 작가가 되어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는데.. 돈도 벌었다. 수술 비용이 50달러였는데 원고료로 60달러를 받았다.
< 시대에 격노하라>가 출판된 지 한 달 후 또 다른 소설 < 리엄 섹소브는 러브랜드에 산다>를 <트라이쿼터리>에 보냈는데 거절당하자 소설이 <트라이쿼터리>에 실리게 해주는 조건으로 고환 두 개를 게이브의 계약에 활용한다.
성령강림절 축제에 고환이 필요한 마마두크 랭데일에게 1978년 12월 어느 추운 금요일에 제거 수술을 하여 보낸다.
마마두크 랭데일은 소설 제목을 < 리브 고슈의 침묵>으로 바꾸고 주인공 이름도 바꾸고 중복되는 부분을 지우고, 눈물자국도 지우고, 느낌표 줄표 강조밑줄과 생략을 가리키는 말줄임표를 쓰지 말라고 했다. 그의 요청대로 다시 타자해 <트라이쿼터리>에 보내자 1주일도 안되어 두 번째 소설을 발표한 작가가 되었다.
<리브 고슈의 침묵>이 발표되자 나는 게이브에게 평생 에이전트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1979년 7월 내 왼손을 제거했다 어차피 오른손과 오른팔만으로 타자할 수 있으니까 상관없었다. 아일랜드 수영선수 그레이토렉스 씨가 왼손을 받은 후 회신을 보내왔다
분사구문 사용하지 말고, 별 효과 없는 묘사 없애고, 완곡어법, 우회적 표현을 통한 문학적 언어의 사영을 중단하며 ‘말할 것도 없이’ ‘ 너무나 놀랍게도’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같은 표현을 쓰지 말라고 했다. 원고에 핏자국이 묻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의 말대도 수정하자 <에스콰이어>는 내 세 번째 소설 < 두더지의 두뇌와 생존권>을 받아주었다.
1980년 1월 < 뉴요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머 클라위> 원고와 두 귀를 교환했다.
메인주 듀랜트호 섬은 내가 비정상적 어순을 사용하지 않고, 서사에서 틀에 박힌 클리셰를 제거하하고, 시점을 한 인물이나 화자에 집중하고 원고의 콧물자국만 지우면 귀 한쌍을 받는 거래에 동의하겠다고 말했다. 두 귀를 희생한 대가로 미국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게이브는 손이 붙어있지 않아도 왼팔이 하나 필요하다고 했다.
마거릿 배런스는 왼팔이 없어서 춤을 출 때 상대 남성의 어깨에 걸쳐놓을 게 없어 무도회를 갈 수 없었다. 1931년 3월 팔 이식 수술을 했다. 내 왼팔을 제거하기 전 원고를 세심하게 다듬고, 부수적 패턴을 통제하고, 주변 인물을 부각하고, 소재를 더 연구하고 독자를 더 불편하게 해야 거래가 성사될 거라고 했다. 원고에 붙은 귀지도 떼어내야 한다고..
그 대가로 나는 <말과 곡괭이의 울음소리>를 더불데이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다음 거래는 장편소설을 쓰기로 하고
게이브에게 거래를 성사시키라고 말했다. 내 코와 발, 다리, 눈, 음경, 콩팥을 입찰했고 장편소설 < 플리버티 지빗 >을 크노프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대신 그녀에게 내 왼발을 주기로 했다. 계약 내용가운데 ‘발생하다’ ‘문제적이다’ ‘격노하다’ ‘일시적으로’ ‘머지않아’ ‘둔부’라는 단어를 남용하지 말고 간결하게 고치고 멜로드라마에서 벗어나라고, 등장인물과 대상과 행위는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원고에 오줌을 흘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게이브는 이 책이 전국적 상을 받는다면 내 신체 부위를 왼 발과 왼쪽 다리 전체로 확대하기로 추가 계약했다. 1982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고 루스텅은 나의 왼쪽 다리 전체를 가져갔다.
... 흔들의자에 앉은 채로 연단에 옮겨졌다.
1983년 4월 4일 : 오른발
감정과 심리를 복잡하게 할 것, 문장의 리듬을 다양화, 어조 다양화, 원고에 똥 묻히지 말 것
장편소설 < 브라키아노의 유령> 퓰리처상 수상
1984년 7월 16일 : 오른손
‘존재’ ‘분리’ ‘추구’ 철자 교정, 수식어 반복하지 말 것, 독자와 게임을 벌일 것. 원고에 침 묻히지 말 것
단편집 < 겨울의 푸른 마녀> 오른팔 추가 세인트 로런스상 소설 부문 수상, 컬럼비아대 학과장 임명
1985년 2월 10일 : 두 눈
‘기타 등등’ 접미사 ~ 식을 사용하지 말 것. ~로서는 정확히 쓸 것, 도입부에 대화 쓰지 말 것 회상 장면 금지, 원고에 고름 묻히지 말 것
2부작 장편소설 <사마엘> 노벨상 수상 완료
그늘진 북구 위에 떠 있으려니 암흑 속으로 서서히, 조금씩, 부분 부분 들어선다는 생각이 든다. 산산이 분해되어 단어로, 문장으로, 단락으로, 서사로 들어선다. 삶이 흩어져 사진으로. 편지로. 증명서로, 책으로, 상으로, 거짓말로 들어선다. 기록이 하나씩 깨질 때마다 빛을 견딘다....
육체의 세계가 부서질 시간이다. 팔다리의 세계가 해체할 시간이다. 뼈의 세계가 튀어 오를 시간이다. 언어가 최후로 쪼개질 시간이다. 이중거래의 맛을 보았다. 날랜 손재주의 냄새를 맡았다. 아리송한 속삼임을 들었다. 차가운 수수께끼를 만져봤다. 누구도 자신의 비석과 뚝 떨어져 있지 않다. 누구도 자신의 외피 없이 웃지 않는다. 누구도 쪼그라들지 않고 숨 쉬지 않는다. 누구도 침묵과 떨어져 말하지 않는다. 고리버들 바구니에 누워있다고 해서 뚝 떨어져 누워 있는 건 아니다.....
밤하늘을 떠가는 것은 밝게 빛나는 새벽 별이 깨지고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 모두 언젠가는 떠나게 될 여정과 같다...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한다.
가지고 태어난 것보다 덜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음을 의식한다. 온전성이 전부가 아님을 알겠다. 상을 받기 위해 눈을 내준다면 확실히 수상자가 될 것을 안다...
나이 든 검은 왕이 두꺼운 안경 너머로 실눈을 뜨고 고리버들 바구니 안을 들여다볼 것이다. 나이 든 검은 여왕이 꾸르륵 소리를 내며 머리만 남은 상 받는 몸뚱이를 향해 킬킬 거리는 동안 왕은 강인한 인내심의 미덕을 극찬하고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를 지겹도록 떠들어댈 것이다. 내 눈에서 고름이 흘러나오는 동안 내가 수상 연설을 할 수 있도록 바구니 속으로 마이크를 붙잡아줄 사람이 왕자나 공주, 어린 군주였으면 좋겠다. 침을 제어할 수 있기를,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누가 내게 샴페인 한 모금을 먹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저 쿵하고 쾅하고 덜커덩하는 느낌은 틀림없이 활주로다.
무명작가에서 최고의 작가가 되기 위해 게이브와의 거래를 감행한다.
결국 그의 눈을 마지막으로 노벨상 수상자 타이틀을 거머쥔다. 머리만 남고 곪아가는 몸뚱이가 되어버린 작가는 바구니에 담겨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러 스톡홀름으로 날아간다.
학회에서의 비웃음에서 자극을 받아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 명예를 되찾기 위해 게이브와의 거래에 동의한다. 점점 명성을 얻어갈수록 단지 신체를 거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 수정을 요구하는 수준도 높아진다.
처음 왼쪽 새끼손가락 절단을 시작으로 왼손, 왼팔, 왼쪽 다리, 오른손, 오른 다리, 고환과 음경, 부귀와 코, 눈....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거래자의 입맛대로 원고를 수정해야 한다.
원고 위의 땀자국, 눈물자국, 핏자국을 제거해야 하고 콧물, 귀지, 고름, 오줌과 똥을 흘리지 말라는 조건.
게이브가 처음 내민 명함에는 그의 좌우명 ‘무명으로 절뚝이지 말고 이 세상에 발을 들여라.’가 적혀있었다,
글로 세상에 틈입하기 위해 온몸, 모든 것을 다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는 가를 묻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쓰고 있다.
저마다 쓰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생각들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고정되어있지 않은 가변적인 뇌라는 우주, 외부 충격에 예민하고 섬세한...
신기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들이 ‘손’이라는 신체를 통해 자판을 거쳐 눈에 보이는 활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뇌 안에 존재하는 것들을 알 수 없다. 수많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푹 꺼져 버리고, 터져버리고, 납작하게 엎드리고, 다시 일어서고.... 스멀스멀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모든 것들을 붙잡아두는 방법은 날렵하게 손을 움직이는 것뿐이다.
나는 좋은 글을 쓰는 대가로 신체를 하나하나 해체할 생각도 거래할 생각도 없다.
다만 자판 위를 달리는 손 끝에 피든, 눈물이든, 땀이든, 눈물이든, 고름이든, 콧물이든...
가장 정직한 신체의 흔적들이 묻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스톡홀름행 야간 비행>은 성공과 출세를 향한 욕망의 씁쓸한 모습을 보여주는 서늘하고 슬프고 참혹한 그러면서도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천이십오 번째의 1월이 가고 있다.
아침에 마시려고 타놓은 커피가 식어버렸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