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매티 브라운 감독 2025년 1월 영화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제자리에 있다
파도와 싸우며
파도를 물리치며
그 커다랗고
파란 괴물은 화가 나 있다.
<모래성>은 매티 브라운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1992년 자연보호구역, 1995년에는 지중해 특별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레바논 북부에 위치한 팜 아일랜드 자연보호구역에서 촬영했다. 감독은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고립된 가족의 긴박한 상황을 대조적으로 그려내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단순 재난 영화가 아니라 분쟁지역에서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참상을 ‘모래성’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섬에 고립되어 등대 안에서 살아가는 4명의 가족, 식수와 음식도 떨어지고... 날마다 짐을 챙겨 들고 해변으로 가서 그들을 데려갈 배를 기다리지만 배는 오지 않는다.
전쟁과 폭력을 피해 난민이 되었지만 기회의 땅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 중개인은 돈만 가로채고 소식이 없다.
극한 상황에서 가족 공동체는 끝없는 불안 속에 서로를 의심하고, 관계는 허물어질 모래성처럼 견고하지 않다.
폭력과 고통의 현실을 대하는 태도는 일어서 맞서거나 회피하는 것이다.
아빠 나빌은 밤마다 발전기를 돌려 자신들이 이곳에 고립되어 있음을 알리며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 노력을 한다. 야스민은 날마다 오지 않는 배를 기다리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반항기에 접어든 아들 아담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는 방법으로 시끄러운 음악에 빠져든다.
자라는 고통에 맞서기엔 너무 어리다. 자라는 상상의 세계로 눈을 감고 떠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눈을 떠보면 모든 것이 온전한 상태로 돌아와 있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자라는 해변에 모래성을 쌓는다. 조개껍질과 깃털로 장식한 모래성이 견고해질 만하면 파도는 화난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들어 모래성을 무너뜨린다.
자라의 가족이 살던 레바논의 집, 자라의 여동생이 다니던 학교.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들 모두 자라가 낯선 섬의 해변가에 만드는 모래성과 같은 것이다.
다시 세우지만 파괴되고 사라진다.
자라는 등대의 나무벽에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려간다.
모래성을 만들다 우연히 발견한 노란색 구명보트
고립된 가족들은 노란색 구명보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낡은 등대의 발전기가 고장 나고, 구조신호도 먹통이 된다. 식량과 식수마저 고갈되어 가자 아담은 잠수해서 작살로 오징어를 잡아서 먹기로 한다. 더 많은 오징어를 잡기 위해 깊이 잠수해 들어간 아빠는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놀라운 것을 보고 도망치듯 나오다가 다리에 큰 부상을 입는다.
폭격으로 무너진 학교, 빨간 구두 한쪽만 신은 여자 아이의 시신을 바다 깊은 곳에서 환영처럼 본 것이다.
상처가 악화되어... 하루하루 죽어가고... 야스민은 자라가 바다에 빠져 자신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익사한다. 야스민을 부르며 해변가까지 기어 나온 아빠는 아담의 앞에서 숨을 거둔다.
삶의 고통으로부터 철저히 무심하고자 했던 아담은 부모의 죽음을 목도한 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한다. 마침내 극적으로 한 시간 쯤뒤 배가 도착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받지만 배가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방향을 틀어버리자 헤엄을 잘 못 치는 자라를 위해 등대와 자신의 몸을 밧줄로 연결하고 성난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자라는 바다 한가운데로 사라지는 오빠의 모습을 보고 울부짖고 등대의 발전기를 돌려 불빛을 만들어낸다. 점점 가라앉는 섬... 등대의 지붕까지 침수된 상황. 자라는 마침내 모래성을 만들 때 보았던 샛노란 구명보트를 타고 구조대를 향해 나아간다.
자라는 상상의 세계로 눈을 감고 떠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눈을 떠보면 모든 것이 온전한 상태로 돌아와 있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아무도 구깨끗이러 오지 않는 고립된 곳,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
어린 동생의 빨간 구두 한쪽. 지붕이 날아간 집, 벽만 남은 곳, 천장의 샹들리에가 아래로 떨어져 깨진다. 끝까지 유리병 안에 가둬두고 있다가 등대가 무너지는 순간 뚜껑을 열어 놓아준 작은 물고기...
어린아이들은 상상으로서만 고통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만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영화 <모래성>의 엔딩에는 이런 문구가 뜬다.
약 5억 명의 전 세계 아이들이 분쟁 지역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강제 이주 등 중대한 권리 위반을 경험하며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레바논 영화 <모래성>에 어울리는 노래로 존 레넌의 <이메진>이 떠오른다.
Imagine
John lenon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Imagine no po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상 상
존 레넌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노력해 보면 그건 쉬운 일이에요.
발아래 지옥도 없고
머리 위론 하늘뿐일 거예요.
모든 사람이 오늘 하루만을 위해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국가를 위해 죽이거나 죽는 일 없고
종교 역시 없을 거예요.
세상 사람 모두가 평화롭게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가질 게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되고 굶주리지도 않을 거예요.
인류 모두가 형제 되고,
모두가 하나 되어
함께 나눈다고 상상해 보세요.
날 공상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만은 아닐 거예요.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언젠간 당신도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다 같이 하나 되어 세상을 살 테니까.
상상은 현실의 궁핍과 고난을 벗어나게 한다.
상상 뒤 눈을 뜨고 바라본 현실이 상상 속 모습과 동떨어져 있다 해도.
상상하는 동안 행복하였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곧 허물어질 모래성처럼 위태로운 것임을 보여주는 영화, 세상 그 어떤 것도 영원히 견고하지는 않다는 보여주는 영화다.
감독이 의도한 은유적 메타포를 한 번 보아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 <가버나움>의 주인공으로 나왔던 자인 알 라피아 (Zain Al Rafeea)가 어느새 자라 영화 속 아담으로 등장하였다.
삶이라는 유한한 시간 동안 우리는 모래성을 쌓으며 살아간다. 고립되었다고 믿으며
절망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면서... 끝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섬 어딘가, 어느 기슭엔가... 내가 탈출할 구명보트가 숨겨져 있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1월의 마지막 날이다. 겨울비가 내린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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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