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게
살아 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
-더글러스 던
2월이 지고 있다.
오래전 직장에 다니던 선배 언니의 이름을 February (2월)이라고 놀려 부르던 때 생각이 난다
이월 언니.. 서예 작가이기도 했던 꼭 2월을 닮았던 그녀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인생의 한 시절 같은 직장에서....
얼굴 부딪고 살아온 시간이 아득한 시절의 일 같다.
그때 우리는 충분히 젊었다. 젊음이란 두려움이 없는 시기, 용감해지는 시기... 무모해지는 시기... 자존감 하나로 세상이 만만해 보이는 시기.
탁상 달력의 2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주다.
해마다 이맘때 늘 오세영의 시 <2월>을 다시 읽는다.
2월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
.....
올해 2월은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폭설과 진눈깨비, 눈보라... 어제도 밤사이 약간의 눈이 흩날렸다. 2월이란 달은 유난히 견디기 힘든 시기다.
오래전 아버지를 흙 속에 묻고 돌아오던 날도 꼭 이런 날씨였다.
충분히 늙음을 경험해 볼 시간조차 주지 않고 한창 푸른 나이.. 요새로 말하자면 꽃 중년, 50 중반에 생을 마감하였다.
선산. 마을 어르신들이 미리 파놓은 깊고 깊은 곳으로 아버지의 관이 내려가고
검붉은 흙이 뿌려지던 날... 검은 상복 사이로 헤집고 들어오던 들판의 바람은 매서웠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세상의 끝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겨울의 끝, 봄의 시작... 삶과 죽음... 졸업과 입학... 아버지는 끝내 나의 졸업을 보지 못하고 가셨다.
바람이 매섭게 부는 이 계절... 밀려나지 않으려는 겨울과 성큼성큼 걸아오는 봄 사이의 힘겨루기... 햇살과 바람, 눈보라... 스산함, 나목의 춤. 얼어붙은 흙을 뚫고 나오는 강하고 여린 것들... 용감하고 무모한 것들... 슬프고 처절한 것들...
늘 2월은 마음을 잡기 힘들다.
글을 쓰는 일도, 책을 읽는 일도... 더디다.
탁상 달력을 넘기며 ‘2월’이구나 하던 시작의 날로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했을까..
<이누이트 족의 노래>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겨울에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아니오 나는 신발과 바닥 창에 쓸 가죽을 구하느라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어쩌다 우리 모두가 사용할 만큼 가죽이 넉넉하다 해도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여름에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은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까.
아니오. 나는 순록 가죽과 바닥에 깔 모피를 구하느라
늘 조바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빙판 위의 고기 잡는 구멍 옆에 서 있을 때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기잡이 구멍 옆에서 기다리며 나는 행복했습니다.
아니오. 물고기가 잡히지 않을까 봐
나는 늘 약한 낚시 바늘을 염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잔칫집에서 춤을 출 때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춤을 춘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했습니까.
아니오. 나는 내 노래를 잊어버릴까 봐
늘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내게 말해 주세요. 인생이 정말 경이로 가득 차 있는지.
그래도 내 가슴은 아직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이누이트 코퍼 지퍼의 전통 노래 -
태양이 하늘 지붕 위로 떠오를 때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새 계절의 시작은 늘 경이롭지만...
신발과 바닥창에 쓸 가죽을 구해야 한다는 걱정
순록가죽과 바닥에 깔 모피를 구해야 한다는 걱정
빙판 위의 고기 잡는 구멍 옆에서 약한 낚싯바늘을 걱정
춤을 추면서도 내 노래를 잊어버릴까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경이로움과 두려움... 이상과 현실... 생존과 생활의 문제...
이누이트 족의 노래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기대. 그러나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그렇게 양가감정을 느끼며 2월을 살고 있다. 이 밤이 가면 내일, 또 다른 날의 해가 뜰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우리가 인생에 대해 품는 생각이다. “라고 한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