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끄집어낸다/ 봄의 길목.... 나무에게서 배운다
무뚝뚝한 직유로서 한 그루의 나무가 반짝인다
저 나무는 생각들로 이루어졌다 나무가 걷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발이 닿는 곳에 나무가 있다
나무가 우리를 찾아왔을까 우리의 생각이 나무에 닿았을까
그러나 우리는 나무처럼 클 수 없고 우리의 발은 나무의 작은 발들에 닿을 수 없다
이우성 < 사람나무 > 부분
봄이 오고 있다 밤새 비가 내렸고 대지는 봄을 준비한다.
물기 머금은 나무들, 가장 분주한 곳은 아마도 뿌리일 것이다.
거침없이 잠든 땅을 두드리고 아래로 내려가
봄을 이끌어내는....
가스통 바슐라르는 “뿌리는 살아있는 죽은 존재다.”라고 말하였다.
살아있는 죽은 존재... 겉으로 보기엔 죽은 존재이나 누구보다 강렬하게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뿌리. 흙 속으로 스며드는 빗물에 모처럼 신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겨우내 방안에 들여놓은 화분들 일부를 밖으로 내놓았다.
부지런히 꽃대를 밀어 올리던 제라늄 화분, 방 안에서 말라가는 잎이 안쓰럽다.
생각들로 이루어진 나무들.
번민과 불안으로 이루어진 인간들.
오랜만에 뒷산에 올랐었다.
인적 드문 오후였다. 연휴여서일까. 오롯이 겨울을 견딘 나무들만 어깨를 기대고 서있었다.
듬성듬성하게 멀어진 산길들........ 그래도 봄이 오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봄 날이다. 나무도 그러하겠지... 올 한 해 살아갈 일이 복잡하겠지...
삶과 죽음. 예측할 수 없는 일들
봄이 와도 당신은 꽃씨를 뿌리지 않는다. 어린 나무를 옮겨 심지 않는다.
철 따라 물을 주고 살충제를 뿌리고 가지를 쳐주고 밑동을 싸맬 필요가 없다
이미 커다랗게 자란 장미, 목련, 무궁화, 회양목, 주목..... 박태기나무 들을 사들이면 되기 때문이다.
거대한 정원을 가득 채운 저 수많은 관상수들을 당신은 모두 나무라고 부른다
당신은 참으로 많은 나무를 가지고 있다. 단 한그루의 나무 이름조차 모르면서
김광규 <나무> 부분
그렇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제대로 나무를 알지 못한다.
마주치는 나무들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 않는다.
내 눈물과 피와 땀이 스미지 못한 나무들은 단지 ’ 나무‘일 뿐...
잿빛 하늘이다.
창문이 뿌옇게 서려있다.
먼 산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봄이 오지 않았느냐고...
밤새 봄을 맞이한 나무들이 팔을 벌리고 있지 않느냐고
생각들... 머릿속의 것들로 너의 하루를 옥죄지 말라고...
시간이 갈수록 삶에 대한 강박이라고 할까... 불안이라고 할까.
형체 없는 것들이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사람은 왜 점점 더 강해질 수 없는 것일까?
웅크리고 나약해지고... 삶에 맞설 용기가 사라지는 것
비겁하고 비루해지는 것일까.
우리는 모든 인간을 ‘수목인간(The Homo Arboris)’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누구든 인간은 날 때부터 지금까지 수목인간이었고, 수목인간이고, 수목인간일 것이다.
우석영
우석영은 인간을 가리켜 날 때부터 지금까지 수목이고 앞으로도 수목인간 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수목 인간의 후예로 의연해져야 한다.
과거는 지나간 오늘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라 하지 않은가?
오늘도 나무 하나가
미래의 바람을 키운다
막막하고 두려운 초록을 끄집어낸다
이근화 <나무 아래 학교> 부분
오늘도 나무 하나가 미래의 바람을 키우고
막막하고 두려운 초록을 끄집어내고 있다
초록도... 심지어 초록마저도
찬란해지기 전까지는 막막하고 두려운 초록이다.
나무는 묵묵히 그 일을 해낸다. 막막하고 두려운 초록을 찬란한 초록으로....
3월 셋째 날이다. 다시 힘을 내기로...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