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ltüte 오직 나만을 위한 3월의 선물을 준비하고 싶은 봄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입학선물 슐튜테 Schultüte
독일에서는 유치원과정을 마친 후 초등학교 입학식 날 부모들은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 ‘슐튜테’라는 선물을 준비한다고 한다. ( Schultüte는 학교 + 삼각봉지의 합성어)
슐튜테는 학교 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달하고 달콤하게 시작하라는 의미로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사탕, 마시멜로. 문구류, 시계, 머리핀 등등의 것을 담아 놓은 고깔모양 상자를 지칭한다. 1781년부터 독일 작센주, 튜링겐 주 등에서 유치원과정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슐튜테를 전해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격려와 축하의 선물이기에 슐튜테에 무엇을 담아서 아이의 입학식에 선물할지 부모들은 고민한다.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두렵지 않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기쁘게, 설레게, 날아갈 듯 가볍게, 행복하게 해 줄 선물.
아이들은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와 슐튜테를 열어보며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슈틀테를 손에 든 흑백 사진 속 아이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커다란 원뿔형 슈틀테 안에 부모의 사랑과 격려가 담겨있다. 거대한 트로피를 가슴에 안은 듯 뿌듯한 표정의 아이. 새로운 시작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를 위해 또 어떤 슈틀테를 준비해 주었을까?
입학선물로 고액의 현금을 주거나, 옷을 사주거나,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이나 문구 같은 것을 직접 고르게 하는 것보다 낭만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온기가 있다.
3월이다.
신학기가 시작된 지 2주에 접어든다.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3월에는 항상 3월 만의 냄새가 있었다.
처음으로 교복을 입던 날, 교복에서 풍기던 독특한 냄새, 처음으로 산 가방을 열 때 가방에서 풍겨 나오는 낯선 냄새... 새로 준비한 실내화 냄새.
필기도구..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공책을 펼치고 손으로 가운데를 납작하던 누르던 손의 기억... 낯선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선 어울림이 늘 필요했다. 사람, 사물, 공간과 시간의 어울림...
신학기면 작은 개인 화분을 하나씩 들고 가 창가에 놓고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신학기에 가져간 그 화분이 학기말이 될 때까지 잘 자랐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이들이 교실에서 성장을 하는 동안 스스로 가져온 화분 안의 식물들도 성장하길 바랐으리라.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입학 무렵 생각이 난다. 입학 전부터 갖고 싶었던 공주그림이 그려진 자석필통...
어쩌면 나는 그 분홍 자석 필통을 쓰기 위해서, 쓸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학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연분홍 자석 필통이 일종의 슈틀테가 아니었을까?
그 설렘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희석되고 심지어 오염되고.. 망각되기도 하였다.
어느 순간 학년이 올라가는 것, 새로운 학교, 새로운 과정에 진입하는 것은 달달하고 설레는 슈틀테의 느낌이 아닌 장애물 달리기 같은 느낌을 주곤 하였다.
체육대회 때 이어달리기에서 주자들이 바통을 넘겨주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나곤 하던 조마조마한 기억처럼....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교에 진입하는 것은 민첩하게 바통을 받아 쥐고 달려야 하는 중압감처럼 다가오기도 하였다.
요즘 아이들은 슈틀테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게다가 만일 한국에서도 초등학교 입학식 때 독일처럼 슈틀테의 전통이 시작된다면 말 그대로 난리가 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먼저 든다.
아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얼마나 그럴듯한 것들로 슈틀테를 채우려 들까...
어린 시절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까지 포함. 아이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려는 부모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3월 둘째 주다... 아주 오랜 기억 속, 나를 설레게 했던 연분홍 자석 필통처럼...
이천이십오 번째 삼월... 나를 위한, 오직 나만을 위한 슈틀테를 준비하고 싶다.
슈틀테 안에 들어갈 것들은 아마도 이런 것들이 아닐까?
나무의 숨소리. 새의 노랫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자판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 커피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프리지어 향기와 3월의 냄새들... 봄의 온기와 바람의 춤 같은 것, 대지를 뚫고 나오는 연초록 새싹의 동그란 머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은 것들....
봄의 슈틀테를 만들고 싶은 이천이십오 번째 봄날이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