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눈동자
나무의 눈동자를 보았다. 회색의 나목에서.... 슬프면서 강렬한....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림 <나목> 부분
- 나무의 눈동자-
가지가 잘려간 자리..
부릅뜬 눈이 있다. 파수꾼처럼... 나무마다 사방을 둘러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악어 눈처럼도 보이고, 고양이 눈처럼도 보이는 나무의 눈.
무엇을 지키기 위함인가, 무엇을 바라보기 위함인가
눈동자로 무엇을 알리기 위함인가
무엇을 알아차리기 위함인가
나무 눈동자는 나무빛깔이다. 나무의 눈은 무언가가 떨어져 간 자리... 결핍의 자리에 존재한다.
결핍, 허기진 곳엔 반드시 생겨나는 눈들.
감으려 해도 감기지 않는 나무의 눈을 응시한다.
한시도 깜박이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우는 나무들의 밤
초록의 빛깔이 진해질 때면 나무의 부릅뜬 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초록을 머리에 인 나무는 나른한 꿈을 꾸느라 눈을 감아버리는 지도 모른다.
나는 나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홀로 잔가지를 치며
나무의 침묵을 듣는다
“나는 여기 있다. 죽음이란 가면은 벗은 삶인 것.
우리도, 우리의 겨울도 그와 같은 것”
기형도 <겨울. 눈. 나무. 숲> 부분
나무들의 눈을 지나.
나무들의 눈을 피해 집으로 돌아온다. 마음에 나목 한 그루 끌고......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 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 지어 설 나무들 (신경림 <나무를 위하여> 부분)
다시 고개 들고 잎과 꽃을 머리에 이고
숲과 들판에 떼 지어 설 날을 기다리며 파수꾼처럼 부릅뜬 눈으로 이 시간을 견딘다.
어느 순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꽃과 무성한 잎으로
나무는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 봄..........
아직은 여전히 한기가 느껴지는 날씨.
나무들의 눈, 어둠 속에서도 부릅뜨고 있을 그 눈 생각이 나는 밤.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가장 나무다운 눈으로... 이 밤 나무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나의 3월이 가고 있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