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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버리고 말았다.용감해지는 수밖에

우리는 살아있는 한 자기 생의 ’ 영웅‘이다.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어떻게 사자가 되며, 마지막으로 사자는 어떻게 어린아이가 되는지에 대해서

낙타의 변모 즉 어린아이와 소년의 변모, 낙타는 무릎을 꿇고 “내게 짐을 실으라”라고 말한다. 책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과 수업을 받아야 하는 복종의 시절이 있는 법인데 낙타가 무릎을 꿇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짐이 실리면 낙타는 일어나 비틀거리면서 광야로 나가는데 낙타는 여기에서 사자로 변모한다. 등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사자의 힘은 그만큼 강해진다. 사자가 해야 하는 일은 용을 죽이는 일인데 용의 이름은 ’ 그대의 미래‘다. 이 괴물의 비늘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 그대의 미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4천 년 전에 써진 것도 있고 바로 오늘 아침에 써진 것도 있다. 낙타 즉 아이는 ’ 그대의 미래‘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에 사자, 즉 청년은 이것을 벗어던지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용이 완전히 제압되면 다시 말해서 ’ 그대의 미래‘가 완전히 극복되면 사자는 다시 사나운 본성을 버리고 아이로 변모한다. 굴대를 떠난 바퀴처럼... 이제 아이에게는 복종해야 할 법이 없다. 역사적인 필요에서 제정된 법률도 없고, 지역사회를 위해 제정된 법률도 없다. 들꽃처럼 그저 충동에 따라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아이가 버려야 할 ’ 그대의 미래‘란 아이의 자기 성취를 방해하 것이면 모두 ’ 그대의 미래‘라 할 수 있다. 낙타에게 ’ 그대의 미래‘는 낙타를 순치하는 수많은 강제(must)다. 낙타는 순치를 통해 인류의 동물에서 문명화한 인류의 동물로 변모한다. 청년기는 자기 발견의 시대. 사자로 변모하는 시기로 법률이 적용되기는 하나, 강압적인 ’ 그대의 미래‘에 복종시키는 방향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지를 갖게 하는 방향으로 적용된다.


우리는 동요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새로 얻은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우리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용감해지는 수밖에 없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기존의 질서, 익숙한 것을 전복시키는 힘, 우리 안의 신화를 만드는 힘이다.

여행을 떠나고 우리의 심층으로 내려가고, 용을 죽이는 일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용은 자아에 속박된 ’ 자기‘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용 우리에 갇혀있다.

용을 부수고 무너뜨리며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일

우리의 자아란 우리가 욕망하는 것, 우리가 믿으려 하는 것, 우리가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사랑하려는 것,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살면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신화는 없어요.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친다. 그러나 고통이 없는 인생,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인생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

캠벨 <신화의 힘> 중에서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우리 안에 있다.


신화의 문맥에서 생각하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눈물과도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겉보기에는 부정적인 것 같은 우리 삶의 순간과 삶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가치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모두 살아있음의 모험을 한다.

심리적 미성숙 상태를 박차고 자기 책임과 자기 확신 위에서 영위되는 삶의 현장으로 나오려면 죽음과 재생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한 자기 생의 ’ 영웅‘이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감에 동참하는 시기... 파스카 축제 엿새 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라 외쳤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수석사제, 율법학자, 군중들은 빌라도 앞에서 외쳤다

“ 그 자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해마다 부활이 다가오는 시기, 이 성경구절을 읽을 때마다 모순, 회의가 생기곤 한다.

찬미하던 군중이 일제히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어떤 완성, 고난 끝에 이루어야 할 어떤 필연적 완성을 위해서겠지만...

군중의 목소리로 행해지는 야만의 횡포가 두렵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하지 않은가...

저마다의 신화를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은 묻히고

군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이 두려워지는 4 월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묶여 있는 하나의 밧줄, 그러니까 심연 위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밧줄 위에선 건너는 것도 위험하고 오다가다 하는 것도 위험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벌벌 떨면서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은 그가 다리일 뿐 어떤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운 점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자 몰락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에게 말하건대, 인간이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신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대들에게 말하건대, 그대들은 여전히 그대들 안에 혼돈을 품고 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거센 비가 내렸다.

옥탑방 베란다의 화분들을 모두 아래로 내려놓았다. 굵은 비바람 속에 피할 곳 하나 없이 맞서는 거룩함....

그 밤 나는 진정한 영웅을 보았다.

가는 줄기와 여린 잎사귀, 이제 갓 여물기 시작한 봉오리로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는 그 용기를 생각했다.

축성된 초록 편백나무 잎을 십자가 위에 걸어두었다.

다음 해 부활절이 올 때까지... 어떤 고통에도 의연해지는 것을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우리 안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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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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