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본질적인 것을 기억하느라 심장에 금이 가는 우리들보다
< 고양이는 옳다>
날마다 고양이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추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는 길,
가장 따뜻한 지점과
먹을 것이 있는 위치를 기억한다.
고통을 안겨 주는 장소와 적들,
애를 태우는 새들,
흙이 뿜어내는 온기와,
모래의 쓸모있음을,
마룻바닥의 삐걱거림과 사람의 발자국 소리,
생선의 맛과 우유 핥아먹는 기쁨을 기억한다.
고양이는 하루의 본질적인 것을 기억한다.
그 밖의 기억들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마음속에서 내보낸다.
그래서 고양이는 우리보다 더 깊이 잔다.
너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면서
심장에 금이 가는 우리들보다.
-브라이턴 패튼 - (이 시의 원제는 <비본질적인 것들>)
고양이 한 마리 붉은 양귀비 흐드러진 길을 걸어간다
어둠으로 몸을 감싼 검은 고양이 한 마리.
우아하고 날렵하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걸음걸이
초록 숲 길 위를 걷는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고양이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향하여
네 개의 발과 기다란 검은 꼬리와 쫀듯한 두 귀와. 검은 눈동자
어딘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향해간다. 생을 가로질러가는 고양이의 진중한 경쾌함!
고양이는 하루의 본질적인 것을 기억한다.
그 밖의 기억들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마음속에서 내보낸다.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기억하는 고양이 한 마리, 그렇게 붉은 꽃길을 걷고 있다.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도나 마르코바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붉은 양귀비 흐드러진 꽃밭을...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기 위하여 걷는다.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고양이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한 것이다.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도
고양이의 눈에 스며드는 봄 햇살도
초록 어린 풀의 싱그러움도
고양이의 시간을 붙잡지 못한다.
오직 고양이로서 살아가는 검은 고양이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돌 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고양이는 가장 좋은 자리를 물색하고 마땅한 곳을 정하고 나면 몸을 웅크리는 즉시 반쯤 잠이 든다. 그러는가 하면 벌써 깊은 잠에 빠진다. 이제 그는 행복한 꿈으로 접어든다. 나무 위에 기어 울라가 새 한 마리를 노려보는 꿈이다. 그는 새를 가까이 붙들어 두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그의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물루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는 뒷걸음질 친다. 물루는 새를 유혹해 보려고 애쓰지만 헛수고다. 마침내 새는 훌쩍 날아가 버린다. 고양이는 반쯤 잠이 깨어 앓는 소리를 내면서 기지개를 켠다,
황혼 녘, 대낮이 그 마지막 힘을 다해 가는 저 고통의 시각이면 나는 내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고양이를 내 곁으로 부르곤 했다... 해가 저물 때, 내가 잠들려 할 때, 그리고 잠에서 깰 때 이렇게 나는 하루 세 번 무섭다. 내가 획득했다고 여겼던 것이 이렇게 나를 저버리는 세 번... 허공을 향하여 문을 열어 놓는 저 순간이 나는 무섭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 대낮은 그대를 속여 위로한다. 그러나 밤은 무대장치조차 없다. 물루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다. 그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믿음직스러워졌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네 말을 다 듣는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고개를 돌리고 순간을 지워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 보세요. 제 어미가 입으로 물어다가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어린 고양이가 제 몸을 맡기듯 당신을 가만히 맡겨보세요>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이런 가득함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즉 그냥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연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비틀거릴 것이고 내 상대역이 묻는 질문에 해야 할 대답을 잊어버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멍청하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
....
내 주위를 에워싼 침묵들은 하나씩 하나씩 더해져 갔다. 집의 침묵, 들의 침묵, 작은 도시의 침묵, 나는 여러 겹으로 싸인 솜 덩어리 속에서 숨이 막혔다. 그것을 걷어내고 싶었다.
고양이는 아침나절 줄곧 내 곁에 남아있었다. 종이를 뭉쳐서 던지면 이놈은 그걸 잡아서 먼데로 다시 던졌다. 얼마나 재미있는 시합이었건가... 장 그르니에『섬』 고양이 물루 중에서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제1부 존재의 의미 찾기 p61~
초록 숲길을 가로질러 가는 검은 고양이가 말한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그리고 나는 당신 안의 어정쩡한 두려움들이 만들어낸 연민이고요.
당신 안의 불안이 만든 고뇌이고,
당신 안의 슬픔이, 침묵이, 우울이 만들어낸 흔적들이지요
그러나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 속에 살지는 말아요."
양귀비 꽃 흐드러진 초록 숲길 위에 햇살 내리쬘 때
눈을 반쯤 감고
가릉거리면서
기지개를 쭉 켜고 나면
그래도 삶은 살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하루의 본질적인 것만을 기억하고 그 밖의 기억들은 모두 마음속에서 내보내는 고양이...
너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느라 심장에 금이 가는 우리들보다 더 현명한 고양이처럼 살아가기로...
다시 6월이다. 한 해의 정점에 올라선다. 시작의 날이다./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선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