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곳은 네가 없는 곳, 너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온다.
저기 고양이가 온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어둠이 내린 도시
고양이 한 마리가 온다
그 혹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 혹은 그녀의 미래가 함께 오고 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잠 못 드는 밤, 같은 정원을 공유한 고양이와 나
우리는 서로 다가간다.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길에서 고양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
풀숲 사이로 뛰어들까 아니면 뒤돌아 다른 곳으로 갈까?
그 혹은 그녀도 멀리서 다가오는 나의 존재를 알아채었을 테니...
점점 가까워진다.
그 혹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가까워진다.
<네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네가 있는 곳에 도달하고
네가 없는 곳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쁨이 없는 길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모르는 것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지의 길을 지나야 만 한다.
네가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서는
무소유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너 자신이 아닌 것에 가닿기 위해서는
네가 아닌 길로 가야만 한다.
네가 모르는 것이 네가 아는 유일한 것이고
네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네가 소유하지 않은 것이며
네가 있는 곳은 네가 없는 곳이다.
조용히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희망은 잘못된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사랑은
잘못된 것을 얻기 위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믿음과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희망은
바로 기다림 속에 있다.
모두 괜찮아질 것이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T.S엘리엇 장시 < 네 개의 사중주 > 중에서
네가 있는 곳에 도달하고
네가 없는 곳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쁨이 없는 길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너 자신이 아닌 것에 가닿기 위해서는
네가 아닌 길로 가야만 한다...
네가 있는 곳은 네가 없는 곳이다.
일주일을 힘들게 보냈다. 일부러 과한 걷기를 한 것이 도리어 독이 된듯하다.
방전된 나를 채우기 위해서 무언가를 억지로 쑤셔 넣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는 주말.
토요 미사에 가는 길. 평화를 찾으러 가는 길이다.
조용히 기다리고 희망 없이 기다리고 사랑 없이 기다리는 시간....
미사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성당에 앉아 나를 기다린다.
미처 알지 못하고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처 사랑하지 못한 부족한 나의 일부들을
아픈 몸 끌고 느릿느릿 오고 있을 빈약하고 고독하고 유약한 나의 정신들을 기다린다.
어둠 속 고양이는 낮게 가르랑거리며
내 곁을 당당히 통과한다.
너는 네가 있는 곳에 도달하고 네가 없는 곳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길을 기꺼이 통과하는구나.
방해자 같은 사람이 너의 앞에 서 있어도 너는 기꺼이 이 길을 지나
너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끌고 짙은 잉크빛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구나......
너의 삶, 너의 빛과 그림자 속으로 너는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구나.
과도한 열망이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열망하지 않으리라.
일부러 희망하지도
일부러 사랑하지도 않으리라.
비소식이 있는데 비는 오지 않고 있다. 7월이다.
무료하고 지친 시간........ 쉬고 싶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