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가 담론을 생산하는 동시에 담론 자체가 예속된 주체를 생산. 미셀푸코
어항 속의 금붕어
푸코는 주체가 담론을 생산하는 동시에 담론 자체가 예속된 주체를 생산한다고도 보았다. 따라서 담론-바깥에서 사유하려는 시도는 탈예속화 내지 저항에 기여할 수 없다(주체가 예속되어야 탈예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애당초 담론이 주체를 구성하기 때문에, 담론-바깥의 실재는 존재할 수 없다.
담론의 주체는 언어적 또는 담론적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을 부르는 곳을 향해 돌아섬으로써 생산되고 그렇기에 담론 바깥에 실존해 있을 수 없다. 주체는 애초에 담론 안에서 생산되는 것. 이것이 바로 담론주의의 핵심 테제다.
벤느는 이러한 푸코의 사상을 어항 속 금붕어에 비유한다. 폴 벤느는 푸코의 죽음 이후 그를 애도하기 위해 『푸코: 그의 사유, 그의 인격』을 썼다. 원제는 ‘사무라이와 금붕어’다. 어항 속의 금붕어. 금붕어가 주체, 어항이 담론이다. 푸코를 사무라이에 빗댄 이유는 펜(칼)을 지닌 자라는 의미다.
어항은 금붕어의 활동 반경을 분명히 제약하지만, 금붕어는 어항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가면 죽기 때문이다. 담론주의는 주체가 담론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기에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회의주의로 이어진다.
금붕어는 어항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 금붕어는 물이 가득 차 있는 어항 속에서 어항의 바깥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가? 금붕어는 어항 바깥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가? 금붕어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을 살아 숨 쉬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어항을 거부하는 것, 저항하는 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로 인해 물이 다 빠져나가 자신이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해 죽게 되더라도 어항에 구멍을 뚫는 것일까?
금붕어와 어항 모델이 담론주의의 핵심으로 주체는 담론 내에서 실존한다는 점을 더 나아가 바로 이 담론이 주체를 생산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금붕어는 어항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 『금붕어의 철학』(배세진) 부분 인용
어항 속의 금붕어
금붕어가 주체이고 어항이 담론이라면 금붕어라는 주체는 어항이란 담론 안에 살고 있다. 금붕어는 어항의 끝에서 끝까지 헤엄친다. 다시 끝에서 끝으로... 투명한 어항의 끝이 막혀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리라.
끝없는 반복과 회귀
주체인 금붕어는 어항밖을 꿈꾸어 본 적이 있을까? 금붕어의 눈에 비친 담론 밖의 세상은 어떠할까?
내가 살고 있는 터전에서 나는 주체이고 내가 머무는 곳은 곧 나의 담론이다.
어항 속 금붕어보다는 담론 밖을 꿈꿀 기회가 많다.
그러나 이끝에서 저 끝으로 끝없는 반복을 하는...
그리고 "~ 했더라면"의 생각으로 자기 안위나 체념에 젖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래전 기억이 난다. 투명한 유리 어항이 깨진 뒤 바닥에 엎질러진 물, 유리조각 사이에서 금붕어는 마지막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우연한 일로 혹은 불운으로 담론이 파괴되고 금붕어는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담론 밖으로 던져진다. 담론 밖에서 금붕어는 주체적 역할을 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자각한다.
푸코는 주체가 담론을 생산하는 동시에 담론 자체가 예속된 주체를 생산한다고 보았고 애당초 담론이 주체를 구성하기 때문에, 담론-바깥의 실재는 존재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대단한 철학가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이론을 이해하기는 늘 어렵다.
나의 담론 안에서 나는 주체로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창가의 화분.... 햇볕을 받아 쑥쑥 자라는 화분 안의 식물들.. 화분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 어설픈 분갈이를 시도했다가 뿌리와의 사투를 벌였다.
알뿌리가 그토록 단단하게 화분과 얽혀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나는 식물의 담론과 한바탕 몸싸움을 하였다. 담론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뿌리에게 익숙한 담론에 안주해서는... 죽을 수도 있을 거란 협박을 해가며.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주었다.
더 큰 담론 속으로 옮겨간 식물은 하루가 지났지만 별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는다.
변화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리라.
나는 나의 비좁은 담론을 깨트릴 용기가 있는가.
누군가 나의 뿌리를 쭉 잡아 빼어 더 큰 담론 속으로 옮겨준다고 할 때... 두렵지 않을 수 있는가.
변화를 꿈꾸면서도 여전히 안주하고 있는... 나는 끝에서 끝으로의 반복을 습관적으로 일삼는 무기력한 주체가 아닌가.
벌써 올해도 8월 중순을 넘어섰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향해 가는가? 늘 머릿속을 지배하는 질문들에
나는 답을 해야 한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12
2022 아르코 문학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 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