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목소리, 환희 혹은 흐느낌 같은 이브클랭의 파랑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 기형도와 이브클랭

이브 클랭( Yves Klein)의 국제적인 푸른색(International Klein Blue, 즉 IKB)

선명하고 진한 울트라 마린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

“파란색이란 무엇인가? 파란색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

파란색에는 차원이 없다. 파란색은 다른 색들이 어울리는 차원을 넘어섰다.

- 이브 클랭


1955년에 파리에 정착한 클랭은 곧 모노크롬 회화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커다란 캔버스를 하나의 색채로 균일하게 칠한 그림을 말한다. 선명한 색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물질과 화학 약품들을 가지고 실험했다.

클랭은 빨강, 오렌지색, 초록색, 금색(<모도골드>), 분홍색(<모노핑크>) 등의 여러 색으로 작업을 하긴 했지만, 이 모노크롬 회화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클랭의 국제적인 푸른색(International Klein Blue, 즉 IKB)'으로 그린 그림이다. 선명하고 진한 울트라마린 색, IKB로 특허를 받았다. (1960)

젖은 상태이건 마른 상태이건 동일한 밝기와 농도를 지닌 색을 만들기 위해 클랭은 합성수지에 건조한 안료를 섞어 IKB를 만들었다. 클랭에게 IKB는 순수한 빛과 공간과 관련된 것이었다. 1957년에 그 색이 처음으로 완성되었을 때, 클랭은 그것을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라고 말했다.



1959년 소르본 대학 초정을 받은 그는 자신의 모노크롬 회화 이론을 가리켜, 색채에서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오브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색채를 객관화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한 가지 색에 천착한 화가. 클랭은 자신의 파란색 모노크롬을 창조과정 중에 남은 재와 같은 찌꺼기라고도 하였는데 강렬한 울트라마린은 비물질적 영역에 대한 생각을 향한 통로이자 공허로 이어지는 가교같은 것이었다.

IKB를 통해 클랭은 파란색 시기 ( epoca blue )에 진입했는데 여기에는 꿈과 공간의 경계가 없었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하여

“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음의 깊이와 푸른색의 깊이만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중심이나 위계도 없는. 색 자체에 대한 경험을 방해하는 어떤 형태도 없는 순정하고 완벽한 파랑.

이후에도 클랭의 회화 실험을 계속되었다. '우주 발생론'(1960) 연작에서 그는 바람과 비의 예측할 수 없는 효과들을 캔버스에 기록했고, '인체 측정'(1960~1961) 연작에서는 IKB페인트를 온몸에 칠한 여성들이 나신을 커다란 캔버스에 굴려 그림을 그렸다.

이브클랭1.jpg

또한 화염 방사기를 사용해 그린 '불 그림'(1961~1962)도 있다. 개념미술을 추구하기 시작한 클랭은 파리의 이리스 클레르 화랑에서 '텅 빈 전시회'를 열었다. '텅 빔'(1958)이란 표제의 이 전시회는 화랑의 내부를 온통 하얗게 칠한 다음 텅 비워놓은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인체 측정' 연작 가운데 하나를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퍼포먼스로 시연함으로써 다시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클랭이 직접 작곡한 곡인 '단음 교향곡'(1949)이 연주되는 가운데, 벌거벗은 여인들의 몸에는 푸른색의 페인트가 롤러로 칠해졌다. 정장을 차려입은 관객들은 이 나신의 여인들이 바닥에 놓인 커다란 캔버스 위에서 구르고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다.

여인들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붓 (living brush)이 되어 캔버스를 온몸으로 채워나갔다.

원초적 벽화작업처럼 여겨지는 기괴하고 발칙한 그러나 신선한 퍼포먼스

이브클랭.jpg

1960년에 클랭은 프랑스의 미술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둘은 현대적인 삶에 대한 반어적인 논평으로서, 자신들의 작품에 실제의 오브제를 통합하는 미술가 그룹임을 표방하며, 신사실주의 일명 누보 레알리즘 운동을 일으켰다. 그의 혁신적인 신체 작품들은 많은 20세기 미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쳤다.

1962년 심장발작으로 34세의 푸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나이 34는 IKB의 상징처럼도 여겨진다. 그의 파랑이 너무 깊어지기 전에 어떤 상태에서든 균질한 파랑으로 남기를 바랐던 열망이 이루어진 것일까.


<어느 푸른 저녁>

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이브클랭의 파랑.jpg

롤러로 푸른색을 온몸에 바른 나신의 여인들이 캔버스 위를 구른다.

미추가 사라지고 오직 파랑만 남는다

인생 도장을 찍듯, 존재 증명 투쟁이라도 하듯

구석기인들이 벽에 찍어놓은 손도장 벽화처럼.... "나 여기 있소." 존재의 목소리...

일종의 환희 같기도 하고 흐느낌 같기도 한...

누보 레알리즘..

이브 클랭, 그는 세상에 없지만 세상은 그의 색 IKB를 품고 있다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공기마저도 해방된 파랑으로 물든...

어느 푸른 저녁... 파랑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시인 기형도와 이브 클랭의 IKB와 겹쳐 보인다. 기형도는 이브클랭처럼 전위적이진 않았으나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묘하게 가슴이 파랑으로 물드는 것 같은. 시의 행간에서 씁쓸한 파랑이 스며 나오는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어느 푸른 밤. 9월의 초입.

귀뚜라미 소리 푸르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50321_092557 (1).jpg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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