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그리고 놓지 마라.

가난, 허기와 결핍 속에서도 푸른 기타리스트는 기타를 결코 놓지 않는다

파블로 피카소 < 늙은 기타리스트>와 조지 프레드릭 왓츠의 <희망>을 보며 삶을 생각한다


문학을 하는 이들은 손으로 시를 쓰고

예술을 하는 이들은 붓과 악기로 시를 쓴다.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 늙은 기타리스트 >를 보는 순간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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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피카소가 하나의 색에 천착했던 ‘Blue period ’ 시기 1903년 무렵 작품이다.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 찬 그림. 화면을 가득 메운 파랑은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권리를 박탈당한 자, 용도를 상실한 자의 설움을 보여준다.

기타를 끌어안고 있는 노인이 피부 또한 창백한 파랑이다. 앙상한 몸, 손가락의 도드라진 마디, 희끗한 머리까지도... 누더기처럼 찢겨 어깨가 드러난 짙고 푸른색의 옷

노인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난과 허기와 결핍이 묻어난다.

깊이가 다른 푸른색과 부드러운 갈색 기타.

마지막 끈을 붙잡고 있는 고독한 노인. 푸른 절망, 푸른 설움, 늙은 기타리스트는 처절한 삶의 바다에 침몰해 있는 것인가.


x선 촬영 결과 이 작품의 아래 또 다른 작품이 겹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여인의 모습 혹은 여인의 상반신) 아마도 무명이었던 피카소가 돈을 아끼려 캔버스를 재활용했기 때문이라 추정한다. 당시 캔버스를 재활용하는 것은 가난한 화가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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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기타리스트>가 그려진 1903년 무렵은 피카소에게 있어 절친 카사헤마스의 자살로 인한 충격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기라고 한다. 카사헤마스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 결과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기에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으리라.

피카소는 훗날 전기작가이자 친구인 피에르 덱스에게 ‘카사헤마스를 생각하면 파란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고 고백했다고 한다.

피카소가 특정 시기 가장 중요하게 여긴 색이 그의 작품 세계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화가는 충만과 공허를 겪는다." 또한 "그것이 모든 예술의 비밀이다. 나는 퐁텐블로 숲을 산책하러 가고, 나는 녹색 소화 불량에 걸린다. 나는 반드시 이 감각을 그림으로 옮겨 없애야 한다. 녹색이 그것을 지배한다"

아마도 <늙은 기타리스트>를 그리던 시기. 피카소는 파란 소화불량에 걸려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반드시 이 감각을 캔버스에 옮겨 토해내지 않으면 평생 시달릴 소화불량이었을 테니까.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기형도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 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가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할 때...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애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

먼지투성이의 삶일지라도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여전히 푸른색이듯...

어떤 삶의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는 못한다.

나의 감각들이 여전히 강하고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는 한.......


늙은 기타리스트의 모습에 조지 프레데릭 왓츠의 <희망>(1886년)에 나오는 리라를 가슴에 안은 여인이 모습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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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은 인간의 꿈'이라 말했다

단 한 줄만 남은 리라. 앞은 보이지 않고 현실은 막막하다. 맨발, 허름한 옷, 붕대로 감은 듯한 눈....

삶으로부터 조난당한 것처럼 보이는 여인이 가슴으로 연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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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제4부 존재의 변주곡.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은 인간의 꿈 p242~


리라를 연주하는 여인이든, 늙은 기타리스트든 무언가.... 결코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꼭 끌어안고 있다.

늙은 기타리스트에게는 갈색의 기타가

여인에게는 줄이 끊어진 리라가 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끝내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살아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

--- 더글러스 던

사랑하라. 그리고 놓지 마라! 이 가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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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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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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