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저마다 자기 안의 영웅을 발견하는 달.
어떻게 하면 심장이 상실의 축제와 화해할 수 있을까?
< 층들 >
수많은 삶을 걸어왔다.
그중 어떤 것은 나 자신의 삶
몇 가지 원칙을 지키며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가 아니다
여행을 계속해 나갈 힘을 얻기 위해 뒤돌아보면
보이는 것은
지평선을 향해 작아지는 이정표들과
버려진 야영장에서 피어오르는 힘없는 불꽃들
그 위로 무거운 날개로 선회하는
거리 청소하는 천사들
나는 진실한 애정으로 부족을 만들었지만
나의 부족은 모두 흩어졌다.
어떻게 하면 심장이
상실의 축제와 화해할 수 있을까.
불어오는 바람 속
도중에 쓰러진 친구들의 회한에 참 먼지가
아프게 얼굴을 찌른다.
그러나 나는 돌아선다.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이 어디든
가고자 하는 온전한 의지로 기쁘게 나아간다.
길가의 모든 돌들이 내게는 소중하다.
달마저 가리운 어두운 밤
잔해들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비구름 속 어디선가 하나의 목소리가
내게 알려주었다.
‘쓰레기 더미가 아닌
층들 속에서 살라.’
비록 그 의미를 해독하는 기술은 부족하나
의심할 여지없이
내 변신 이야기의 다음 장은
이미 써져 있다.
나의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탠리 쿠니츠
층들 사이를 건너왔다.
틈과 틈 사이, 층과 층 사이.. 어떤 틈은 아늑했고 어떤 틈은 그렇지 못했다.
어떤 층에선 다시 돌아갈까를 고민했고 또 어떤 층에서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으면서도 때론 족쇄 같은 원칙을 벗어던지기 위해 발버둥 쳤다.
찬란한 희열과 이름 모를 열패감은 결국 같은 얼굴인가?
극과 극은 닮아있는 것이니까.
달력을 넘기며 생각한다. 12월 중반을 향해간다.
날마다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으면서도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은 어떤 부담에 시달렸다.
어쨌든 나는 ‘쓰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어쨌든 나는 스스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심장의 언어를 받아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니까....
어떻게 하면 심장이 상실의 축제와 화해할 수 있을까.
스텐리쿠니츠는 얼마나 많은 상실을 경험했을까? 감히 ‘상실의 축제’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상실이 축제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음을 의미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 하면 심장이 상실이 축제와 화해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심장의 언어는 손가락 끝으로 전해오는 이성의 언어와는 다르다.
12월 해마다 이 무렵이 되면 ‘상실’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본디 내 안에 있었으나 스멀거리며 빠져나간 것들
무엇이 빠져나갔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채로 소멸해 버린 것들
상실의 축제를 바라보는 심장과의 화해 후 그는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다.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이 어디든
가고자 하는 온전한 의지로 기쁘게 나아간다.
....
내 변신 이야기의 다음 장은
이미 써져 있다.
나의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변신 이야기의 다음 장은 이미 써져 있다는 역설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생각했다.
이상을 버리지 마라.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버리지 마라.
...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영예는 거기에서 주어진다.... 그럭저럭 현재에 만족하며 주저앉지 마라. 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을 버리지 마라.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버리지 마라
12월.. 저마다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끄집어내는 달/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