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안의 영웅을 버리지 마라/니체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와 막스 데미안의 우정을 바탕으로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시련과 시련의 극복, 깨달음을 통해 완전한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토마스 만은 “1차 세계 대전 직후 『데미안』이 불러일으킨 반향을 잊을 수 없다. 섬뜩하리 만큼 정확하게 시대의 신경을 건드린 작품이다. 그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은 그들 또래의 선지자 한 명이 나타나 삶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드러냈다고 생각했고 그 고마운 충격에 기꺼이 휩쓸렸다.”라고 말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을 관통하는 것. 데미안은 나를 여러 차례 관통했다. 데미안이 나를 관통하기 전과 후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삶의 모퉁이 어디선가 길을 잃고 나를 잃고 헤맬 때마다 수없이 데미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닌 ‘나'로 살아가는 일이 그리도 어려웠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는 하나의 점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누구 속에서든 정신은 형상이 되고, 누구 속에서든 피조물이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속에서든 한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있다.
저마다의 가슴속에서 미성숙한 자아가 괴로워하고 있고
그 미숙한 자아를 구원하기 위해 또 다른 자아가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의미인가.
결국 자신을 구원할 이는 자기 자신일 뿐이라는 말일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라는 그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두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 우리가 바라는 ‘우연’이란 것은 결국 자기 안의 욕구와 필요가 불러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헤세는 데미안의 입을 빌려 일관되게 말한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가 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것.
자신의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굴절 없이 살아가는 것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벌써 그것을 알고 있어.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자신의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굴절 없이 살아가는 것....
막스 데미안을 싱클레어의 멘토 같은 존재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싱클레어가 자살을 시도한 급우 크나우어에게 멘토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 헤세가 데미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려움이 있을 때 외부의 멘토를 찾아 나서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안에 분명 존재하는 멘토적 자아를 발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바로 이 표현이 우리 내면의 멘토적 자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p66
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점이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P 75
다만, 스스로를 그렇게 조련시켰기 때문인 거야. 어떤 짐승이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하지....
오로지 소망이 나 자신의 마음속에 온전히 들어있을 때, 정말로 내 본질이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뿐이야. 그런 경우가 되기만 하면, 내면으로부터 너에게 명령되는 무엇인가를 네가 해보기만 하면, 그럴 때는 좋은 말에 마구를 매듯 네 온 의지를 팽팽히 펼 수 있어.
p86
"그러니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야 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이 말은 묘하게 위로를 준다.
선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닌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는 것. 현실은 불리하더라도 기어이 그리고 기꺼이 내 편이 되어주는 것.
p 116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데미안>에서 가장 익숙하고 잘 알려진 문장은 아마도 아래 문장일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새의 이름은 압락사스다.
압락사스 :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자신의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는
압락사스는 자네 생각 그 어느 것에도, 자네 꿈 그 어느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결코 잊지 말게. 하지만 자네가 언젠가 나무랄 데 없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렸을 때, 그때는 압락사스가 자네를 떠나, 그때는, 자신의 사상을 담아 끓일 냄비를 찾아 떠나는 거라네.
무엇인가 정말 근사한 생각 혹은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누군가를 죽이거나 그 어떤 어마어마한 불결한 짓을 저지르고 싶거든, 한 순간 생각하게. 그렇게 자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은 압락 사스라는 것을 !
자네가 죽이고 싶어 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개 씨가 아니라 그 사람은 분명 하나의 위장에 불과할 뿐이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것만을 남에게 줄 수 있다. 내 안에 미움이 많다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줄 것이고, 내 안에 또 다른 무언가가 가득 차 있다면 누군가에게 그것을 줄 것이다.
악이 우리를 지배할 때는 압락사스가 거침없이 날갯짓을 할 때이고, 시간이 흘러 내면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면 압락사스는 다른 냄비를 찾아 떠난다.
P 171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미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이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나는 자주 미래의 영상들을 가지고 유희했었다. 어쩌면 시인으로 혹은 예언자로, 혹은 화가로 혹은 어떻게든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을 역할들을 꿈꾸곤 했었다.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짓기 위하여, 설교하기 위하여, 그림 그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존경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함부로 갈라놓은 세계의 절반만 나타낸다고.. 그것은 공식적이고 허용된 환한 세계였다.
P 128
희열과 오싹함이 섞이고, 남자와 여자가 섞이고, 지고와 추악이 뒤얽혔고, 깊은 죄에는 지극히 청순함을 통해 충격을 주며..... 나는 운명을 동경했고,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거기 있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P 221
싱클레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번 필요로 할 거야.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P 222
아침에 사람들이 깨웠다. 붕대를 감아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완전히 잠이 깼을 때. 나는 얼른 옆 매트리스로 몸을 돌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 거기 누워 있었다.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살아가면서 ‘나’로 살기 위한 투쟁은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진부한 세계들을 깨트리는 일이다. 어쩌면 ‘알’이란 것은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 나를 길들이려 하고 나를 길들여온 세계 인지도 모른다.
알을 깨트리고 낯선 것,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과 맞서는 일....
시간이 흐를수록 알을 깨트리려는 투쟁 의식도 흐려지고, 알의 세계가 주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간다.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가 내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 , ‘우연’을 기대하며 그날을 그날처럼 살아간다. 결국은 그날이 모여 또 다른 ‘그날’이 될 뿐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내 안에서 솟구쳐 나오려는 것들
바로 그것을 살아볼 시간이다.......... 비록 그것이 그토록 어려울지라도.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미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자주 미래의 영상들을 가지고 유희했었다. 어쩌면 시인, 화가, 예언자로 혹은 어떤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을 역할들을 꿈꾸곤 했었다.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니체의 말 중에 ‘자신 안의 영웅을 버리지 마라.’는 문구가 있다.
어떤 외부의 영웅을 추앙하려 들지도, 외부 영웅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도, 외부 영웅을 닮으려 하지도 말고 오직 자신 안의 영웅을 깨우고 일으켜 세우는 일..
어떤 군더더기 같은 것들에 매달리는 대신 내 안에 존재하는 힘을 믿는 일
그것이 바로 헤르만 헤세가 막스 데미안의 입을 빌려 말하고 싶은 본질이리라.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여러 개의 운명을 찾으려 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자신 속에서,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굴절 없이 제대로 살아내는 것
2025년 12월을 보내며 그리고 다가올 새해를 기다리며 할 일이 아닐까.
12월의 바람에 나무들이 존재증명 투쟁 중이다.
버리고 비워야 할 것들을 거침없이 내려놓고 바람의 길을 만들어 놓고
바람의 결대로 찬란하고 황홀한 춤을 추고 있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