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2월은 시작되었다
<겨울의 사과나무 전지>
나뭇가지들과 함께
높이 치솟으려는
내 안의 모든 가지를 잘라냈다
새롭게
눈들은 유의하며
바깥쪽으로 뻗는 가지들은 유의하며
사과나무의 수관을 뚫고
바구니를 들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늙은 정원사가 말한다
너무 큰 괴로움, 너무 큰 기쁨도
우리를
뚫고 가야만 한다
- 라이너 쿤체(1933~2024)
2월 1일이다.
라이너 쿤체의 시에서처럼 높이 치솟으려는 자기 안의 모든 가지를 잘라내는 달.
사과나무의 수관을 뚫고 바구니를 들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듬성한 여백을 만들어 주는 일.
너무 큰 괴로움과 너무 큰 기쁨이
우리를, 우리 사이를 뚫고 지나갈 수 있도록
촘촘한 가지, 가지 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는 여백이 없다.
여백이 없어서 너무 큰 괴로움도 너무 큰 기쁨도 지나갈 수 없다.
봄이 오기 전.... 마음의 가지 치기가 필요하다. 뒤엉킨 것들, 들뜬 것들, 산만한 것들을
잘라내야 한다.
<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 올라브 하우게
쿤체는 사과나무 수관 사이로 바구니를 들고 내려올 수 있을 정도로 가지치기를 하고
하우게는 눈 내리는 날 막대기를 들고 나서며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준다.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벌써 2월이 되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많아진다.
더 시간이 흐르면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지 치는 일은 힘에 어느 순간 힘에 부칠 것이고
막대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어쩌면 더 수월할 것이다. 그 막대기의 용도는 지극히 단순하고 선하다. 세상의 무엇이든, 세상의 누구든 돕기 위한 용도.
사과나무 가지치기와 어린 사과나문 눈 털어주기 사이에 우리의 2월이 있다.
우리의 2월이 시작되고 있다.
해마다 사람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이 당연한 순리처럼 여겨지면서도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모습들이 존재하는가..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거쳐온 시간. 그때그때 꺼내 쓴 수많은 얼굴.
이것과 저것.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기억과 망각, 쉬고 싶음과 쉬고 싶지 않음 사이..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둠.... 생각은 여기에서 저기로 수시로 넘나 든다.
글을 쓰는 일도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려서 인가, 길을 잃어버려서 인가...
신춘 당선 사진을 냉장고 문에 붙여놓았다. 각성하기 위하여.... 그런데도 벌써 낯설게 느껴진다. 아득히 오래전 일처럼,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2월 1일의 밤. 각성의 시간.
모든 것들이 고요 속에 있다.
내일은 또 새로운 시작......../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