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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들 Aug 21. 2022

어반 드로잉의 맛

서울 어반 스케쳐스 정모 참가기

나는 꿈을 꾸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굳게 믿는 사람이다. 그 꿈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글로 적어두면 더 빨리 이루어지는 것 같다. 버킷리스트 달성 목록은 그 증거인데, 어반 스케쳐는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단 하나뿐인 나의 그림엽서를 받아보는 친구의 감동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연초에 어반 스케쳐들의 서울 모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날이 내 오래된 꿈의 첫 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첫 모임의 낯섦을 극복하고 나니 그다음부턴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가하여 어울리게 되었다.


8월 어반 스케쳐스_서울의 정기 모임이 을지로 3가~4가 사이에서 있었다. 일반인에게는 공구거리로 더 잘 알려진 곳인데, 요즘 한창인 도심권 재개발의 현장이다. 오랜동안 땀과 피로 일군 삶의 장소가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사라질 일을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고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이루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 보니 노포들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 추억을 간직하려는 사람들로 주말이면 늘 혼잡하다. 마치 마지막 꽃잎을 떨구기 전의 떨림이라고나 할까?



을지로 공구상가의 허름한 골목, 재개발로 올라가는 건물들과 대조를 이룬다

오전 10시 30분, 계양 공구 앞의 꽤나 넓은 공간에 운영 본부가 차려지고 나는 그곳에서 명찰을 구입했다. 오늘 참여하는 어반이들이 워낙 많아 골목에서 마주치면 알아보기 쉽도록 패용하는 것이다. 조우하면 살짝 눈인사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그림쟁이라는 동질감을 주는 데 그만이다.  잠시 후 어반 스케쳐로 함께 첫 발을 디딘 동지들을 만나 오늘의 스케줄을 공유하고 각자 적당한 장소를 찾아 흩어졌다. 강렬한 직사광선이 내리꽂는 터라 야외에서 어반 스케치를 하기에는 너무 무더운 날씨였다. 나는 공구상가의 뒷골목과 청계천변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물가에 자리를 잡기로 하였다. 물이 흐르는 천변의 나무 그늘은 생각만 해도 최적이었다.

마땅한 풍경을 찾다가 전태일 기념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분신을 하였던 전태일.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발전과 근로환경 개선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중심지에 기념관이 설립되어 많은 이들에게 노동인권운동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의 외벽은 전태일 열사가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 내용이 한글 흘림체로 채워져 있어 시선을 끈다. 이곳은 또한 천주교회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초기 천주교가 이 땅에 태동할 때, 강암 이벽(요한 세례자) 선생의 집터가 수표교 근처였는 데, 거기서 세례가 이루어짐으로써 최초의 신자 공동체 즉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되었다고 한다. 여러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이곳을 기록으로 남겨도 될 성싶었다.


나무 그늘 밑, 가능하면 물가 가까이 내려가니  편평한 바위가 있다. 간이 의자를 꺼내어 앉았다. 마치 세월을 낚는 듯하다. 이렇게 두어 시간 펜과 색연필로 씨름하였다. 도통 채색에 관심이 없기는 하였지만 오늘 초록을 담아내지 않으면 더위에 지칠 것만 같아 물감을 많이 사용하였다.   


정모의 피날레인 집합 시간은 4시, 그림을 그리고도 시간이 꽤나 남았다. 마침 배가 고프던 차에 먹을 것을 준비했다는 동료의 소리가 반가웠다.  고맙게도 김밥 한 줄과 복숭아 하나, 꿀맛이 따로 없다. 동료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도 곁에서 그림 한 점을 더 그려 보기로 한다. 이번엔 밑그림 없이 펜으로 그려나갔다. 손놀림이 빨라지니 아쉬운 대목이 한 둘이 아니지만 이런 연습도 나중엔 도움되지 않을까?


4시가 가까워지자 운영진의 집합 메시지가 울렸다. 골목 여기저기 숨어있던 어반이들이 손에 스케치 북을 들고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표정을 보니 아쉬움 반, 뿌듯함 반이다. 그림이라는 게 늘 그렇지, 어디 맘에 쏙 든 적이 몇 번이던가.

어반 스케쳐스_서울의 깃발 아래 그림들이 모여든다. 크고 작고, 길쭉하고 네모나고, 족자처럼 펴지고, 누구는 화려하게 채색하고 누구는 단색으로 하는 등 각양각색의 그림들이 서로 어울리니 이 또 한 장관이다.  동료들의 그림을 보면서 감탄하며 반성하고, 격려하며 위로받고, 또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잠시 술렁이는 시골장터 같은 분위기를 정리하고, 기념사진을 끝으로 오늘의 모임은 막을 내렸다.


뒤풀이가 없다면 뭔가 아쉽지 않을까? 노가리에 시원한 생맥주는 오늘 같은 날씨에 필수였다. 우리 일행 (어반 스케쳐 입문 동기)은 펜 드로잉 선생님을 모시고 을지로 맥주집으로 이동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각자의 그림 여정을 이야기하며 우정을 다지니 이 모두 어반 스케치를 통해 기쁨으로 충만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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