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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Jul 28. 2021

영화 <김복동>



당신에게 왔습니다.


야윈 손을 만지다 품에 안기고도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 앞에서 낯선 이가 되어버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립니다.

눈 오는 날 당신은

종종 목화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목화밭에 핀 꽃을 보며

솜이 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꽃이 지고 솜 날 때면 집으로 가리라.


누가 그러더군요.

낯선 세상에선 익숙한 것을 찾기 마련이라고.

솜이 나는 걸 보면서도 돌아가지 못한 당신에게

여전히 그 참혹은 익숙한가요.


어느 세계에선 망각의 비가 내린다던데.

나는 오늘 내린 눈이 부디 망각의 눈이기를 바랍니다.

창백한 저 목화솜마저 끝내 당신에게 낯설어지길.






당신이 왔습니다. 


가만히 쓰다듬다가

가슴에 품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분명 내가 아는 당신인데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가슴 아파 마세요.

잊힌 건 당신뿐이 아니니.

내 이름도, 나이도, 요즘엔 밥 때도 잊고 삽니다.

방금 막 먹었는데 또 점심이라나요.


바람이 셉니다.

흩날리는 허연 것들은

때가 되어 터져나온 목화솜이겠지요.

난데없이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흐릅니다.

나는 도저히 영문을 모릅니다.


누가 그러데요.

옅어지는 기억은 자기를 지키는거라고.


어느 곳에는 망각의 비가 내린다지요.

나는 왠지

바람에 흩어지는 이 목화솜들을

온몸으로 맞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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