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건 업무와 비업무 경계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취향에 꼭 맞아 환호하며 볼 때면 비업무고, 영 재미없는데 동향 파악 등의 이유로 꾸역꾸역 볼 때면 업무로 정의하곤 한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자꾸 분석하면서 보려고 하는 게 단점이지만. 캐릭터가, 미술이, CG가, 연기가, 음악이 어떠한지 면밀하게 살펴본다. 레퍼런스 상자 속에 잘 보관해 뒀다가 적재적소에 꺼내어 쓰고자 함이다.
이번 주의 영화는 <밀수>다. 친구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스포일러에 노출돼 흥미가 떨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덕후라는 분류 안에 함께 존재함에도 자세히 보면 또 다르다. 친구는 영화관에서 보는 모든 것이 낯설어야 하지만 나는 모든 줄거리를 알고 보는 편을 선호한다. 새로움을 마주하는 설렘보다 주인공이 겪을 고초가 얼만큼일지 알 수 없을 때 오는 두려움이 먼저라서다.
지나고 보니 상당 부분 불안을 상쇄하는 방향의 선택을 해온 것을 알았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수시입학 결과에 주변에선 재수를 권유했으나 이 지리한 공부를 다시 할 자신이 없어 그냥 입학했고, 다들 해외 경험을 쌓는데 나만 없는 것이 영 못마땅해서 대책 없는 영국행을 택했으며, 모두 대기업 공채만을 목표로 할 때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 대기업으로 경력직 이직 전략을 취했다. 프리랜서로 시작한 경력의 첫 삽 이후로 메뚜기처럼 돌아다니며 몸값을 올리기보다 잘 아는 한 사람과의 꾸준한 협업을 택했다. 꽤나 모험적인 삶을 꾸려왔다고 자평했는데 앞이 캄캄한 순간을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오늘에서야 명료해진다.
인생에도 스포일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간절함으로 사주를 보고 점을 보는 것이겠지. 몇 살쯤 레벨 30 짜리의 역경을 겪고 한 뼘 성장할 테니 지금 불어오는 이 정도 비바람에 꺾이지 마, 하고 말해준다면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 그렇게 호락호락하면 그게 인생이냐?? 하는 호통이 돌아온다. 만만하지 않아서 참 재밌는 게 삶이지. 그걸 잊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나에게 주어진 재미를 마음껏 누려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