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는 건 왠지 쑥스러워 얼굴이 후끈거린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내가 뭐 그렇게 잘났다고 뚫어져라 보나. 필요에 의한 때만 짧고 간단하게 보고 끝낸다. 어느 누가 거울을 보더라도 아무렇지 않으면서, 유독 자신만 어색하게 느끼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올 늦봄의 어느 날 갑자기 양 볼에 콩알만 한 좁쌀여드름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평소 호르몬 주기에 따라 종종 한두 개씩 여드름이 나곤 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수롭지 않음을 눈치챈 좁쌀여드름은 존재감을 뽐낼 요량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그러자 거울이 쑥스러운 자신은 온데간데없이 피부 상태를 점검하려는 목적으로 틈만 나면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여드름과 땅따먹기에서 이길 각오로, 거울 속 얼굴에 선을 그어 놓고 더 이상 넘어오지 말고 그만 가라앉으라고 성을 내기도, 제발 사라져 달라고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익숙한 생각이 흐른다. 얼굴의 구석구석 참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많구나. 비로소 거울과 낯간지러움이라는 감정이 왜 짝을 이뤄 다녔는지 깨닫는다. 자신의 박약한 점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다.
한참을 씨름해도 차도가 없는 좁쌀여드름과의 사투를 위해 방문한 피부과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십수 년을 외면하고 있다가 이제사 자신의 얼굴을 적확히 보게 됐는데 너무 못나 보이더라고, 이 그지같은 좁쌀여드름은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웃으면 볼록 올라오는 볼살과 광대가 잔망 루피를 닮았다며 친구들은 내게 잔망 루피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나도 작은 얼굴과 날렵한 턱 선을 갖고 싶다고. 고민을 한참 듣던 직원은 공감의 맞장구를 치기도, 잔망 루피라는 말에 푸하하 웃기도 하면서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 준다. 이렇게 하면 고민은 어느 정도 해결될 거란다. 상술임을 알면서도 속는 셈 치고 큰 값을 치렀다.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은 달라지고 싶었다. 거울 앞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봄에 시작한 피부과 방문은 의사의 권유대로 초가을이 된 지금까지 개근했지만 변화는 거의 없다. 그저 기분을 풀기 위해 큰돈을 지불한 셈이 됐다. 그러나 아깝다거나 후회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의아한 일이다. 그저 이렇게 배우는구나 싶다. 돈을 써 보지 않았다면 거울 속 자신을 접할 때마다 피부과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에 떠다녔을 테니.
오랜만에 뒤적인 어릴 적 앨범에서 활짝 웃는 어린 나와 마주한다. 삼십 년 전 나와 지금의 나는 소름 돋게 닮아 있다. 웃을 때 작아지는 눈과 볼록 솟는 볼은 타고난 것이었구나. 알량한 과학기술로 자연을 거스르려 하고 있었구나. 심연에 자리한 못마땅한 마음을 걷어내고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자리를 내어준다. 이제는 내가 잔망 루피를 닮은 것이 아니라 잔망 루피가 나를 닮은 것이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