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완연한 어른이 되었는지 자꾸 해가 갈수록 나이 듦을 이야기한다. 유명인의 나이가 더 이상 나와 비슷하지 않음을 알게 되는 순간 질겁하며 그와 나의 나이차가 얼만큼인지 센다. 간단한 사칙연산 암산이 힘겨운 나는 열 손가락을 동원해서야 그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 어머, 당신은 너무 어려서 2002년 월드컵을 제대로 보지 못했겠네요.
88올림픽도 못 본 아가들의 '아가들'을 담당하던 내가 어릴 때 듣던 말을 똑같이 내뱉고 있다니. 아 세월이여.
나보다 어린 후배들이 그득함에도 나와 꼭 열두 살 차이인 선배는 내 나이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회사에서 아래로 두 바퀴 띠동갑인 후배를 만났을 땐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래. 근데 벌써 한 바퀴 띠동갑을 만났다니.. 나도 얼마 안 남았구나. 슬프네. 하고 말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를 가진 친구가 전한, 언니는 개봉한 모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다는 이야기 속 언니가 되었으면 했다. 고작 몇 해 어리다는 이유로 연령 제한에 걸려 보고 싶은 영화의 비디오 -혹은 DVD- 가 출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 무척이나 부조리한 어른의 규칙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가끔 영화관에 갈 때면 그때의 치기 어린 정서를 상기하곤 한다. 학업 외에도 감당할 것이 많았던 나는 주체하기 힘든 마음을 털어놓기 전 얼마나 빽빽한 여과지를 대어야 하는지 미처 배우지 못했다. 위로가 고픈 근심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였다. 우리의 내밀함을 견고히 하기 위해선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홀로 삭인 설움이 얼마나 성숙할지 가늠할 수 없었기에 생기는 즉시 드러낸 감정은 겉절이처럼 풋내가 풀풀 풍기었다. 폭풍의 언덕을 한참 굽이굽이 넘고 나서야, 여물지 못한 성근 그물 틈새로 어찌나 많은 것을 흘려왔는지 깨닫는다. 많은 것에는 소중함도, 행복함도, 고통도, 괴로움도, 분노도 함께다. 사사로운 조각은 새어나가고 성근 그물에 걸릴 수 있는 큰 마음들만 온전하게 자리한다. 미숙했기에 찬란했고 서투르기에 쓰라렸다.
젊음이 아쉬워서 자꾸 세월을 이야기하는 걸까. 아쉬움에서 미련을 빼면 그리움이 된다. 그 시절을 더 멋지게 살아내었으면 했던 미련을 걷어내며 겉절이에게 능숙함을 바라면 도둑놈 심보지, 하는 농담을 건네는 여유도 갖추었다. 아직 모호하지만 나의 세월을 아쉬움보다는 그리움으로 형용하고 싶다. 풋내는 그리움으로 숙성되어 깊은 맛을 낼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