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치과의사, 의사, 외교관, UN 사무관, 동시통역사, 아동 음악치료사, 홍보마케터. 평생 동안 꽤 진지하게 가슴에 품었던 지향점들이다. 시간 순대로 쭉 늘어놓고 보니 아주 귀엽다. 점점 현실적으로 변모하는군. 지금의 나의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천직이라 여기지만서도 과거에 마음을 주었던 목표에 다다른 이들을 보면 괜히 애틋하다. '만약 그때 저 길을 고수했더라면?' 하는 가정을 한다. 상상 속에선 티모시의 내한 프로모션 통역도,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통역도, 한미 정상회담 통역도 척척 해내는 유수한 통역사다. 한국에서 온통 영어로 둘러싸인 삶은 외국에의 생활 같을까. 동시통역사인 나도 지금의 나처럼 천직을 얻었다 생각하고 있을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까.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중학교 동창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는 내가 선망하던 모든 걸 가졌다. 그는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갈 수 없었던 미국 유학을 갔으며, 한국에 돌아와선 나는 실패한 바로 ‘그’ 외고에 너무 쉽게 진학했고, 나는 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이 접었던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에 한 번에 합격해 벌써 두 번째 해외공관 발령을 받아 모스크바에 거주 중이다. 그에게 질투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특히나 외고 입시 실패로 짙은 패배감을 안고 있을 무렵 전해온 친구의 '그'외고 합격 소식은, 정말 축하하지만 동시에 슬픈 감정이 무엇인지 난생처음으로 알게 해 주었다. 그랬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외교관 생활은 어떤지 한참을 들었다. 말미엔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는 네가 정말 신기하고 자랑스럽다는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내가 친구의 자리에서 일했다면, 하는 상상으로 행복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질투나 아쉬움은 없었다. 부러웠지만 부럽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그가 자랑스럽기만 했다.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감정은 전혀 섞이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좋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평생 한 번도 고려해 본 적 없는 자리에 와 있지만, 이대로 참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내 그릇보다 넘치는 욕심을 부려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충분히 가졌다. 우리는 각자가 행복한 방법으로 즐거운 인생을 꾸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