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탄생하는가?
난 공대 출신이다.
그것도 공대 중의 공대인 기계 계열 (정확히는 항공우주공학). 우리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는지 남들이 불렀는지, 그 기원은 모르겠지만 속칭 ‘개’과라 한다. 기계는 기’계’인데 줄임은 왜 ‘개’과인지도 도통 모르겠다. ‘개’과는 ‘족’(조선해양공학)과와 함께 공대 of 공대 로 불리는데, 나름의 자부심으로 전공을 살리고자 ‘석사’까지 하고, 정말 전공을 살려 연구소에 취직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지 상경계 쪽 전공자들이 멋있어 보였다.
착실하고 성실한 신입사원을 거치고, 남들보다 빨리(사실 석사과정 기간을 연차로 인정해줘서) 대리(선임연구원)를 달게 되었는데, 그때에도 웬지 기획팀, 사업팀 이런 분들이 멋있어 보였다.
회사의 방향타를 잡고, C레벨의 옆에서 다른 직원들을 진두 지휘하는 그런 모습, 석사 씩이나 하고 연구소에서 이제 일좀 한다 소리를 들어도 그게 멋있어 보였다. 경영 이란 것이 폼나보였고, ‘기획’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은데, 모르면 용감하다고, 경영이란 것을, 기획이란 것을 배워보고, 또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어 무모하게 경영대학원(MBA)에 들어갔다.
좋았다. 좋은 동기들을 만났고, 멋진 내용들을 배웠다. 그런데, ‘기획’이란 건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학비 5000만원에, 연봉 몇 천을 2년간 포기하고 ‘기획’을 배우러 갔는데, ‘기획’을 알려주지 않았다.
망했다싶었다.
망했다싶었다. 어찌되었건 충격속에 졸업을 하고 조단위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의 기획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기획’이란 걸 했다. 근데 배우진 않았지만 그 ‘기획’이란 걸 할 수 있었다.
사실 풀타임 MBA과정은 착실히 학업을 이수하면, 다양한 과목의 어마어마한 과제와 텀플을 쉴틈없이 하게 되며,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기획’의 방법과 순서, 그리고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며 몸에 익히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훈련을 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 기획, 사업 기획, 같이 Planning으로 불리는 기획이라는 단어 앞에 OO 기획이 붙으면, 기획의 과정에서 OO라는 분야의 전문 지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근데 이 전문 지식은 말 그대로 전문 지식이기에 해당 분야에 몸담지 않으면 쉽사리 익히기 어렵다. 좀 한다는 기획자들을 보더라도 ‘상품기획자’, ‘서비스기획자’ 같이 기획이라는 기본기에 해당 분야의 지식을 더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다.
즉 ‘기획’을 배우고 싶다면 ‘기획’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OO기획을 묶어서 배워야 하고, 나 역시도 MBA과정에서 익힌 기획이라는 방법에 해당 분야의 지식의 숙달이 업무로서 주어지고, 또 쪼이고 깨지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획팀으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OO기획, OO를 붙이면 정말 그 범위가 달라진다. 전략기획, 상품기획, 마케팅기획, 그리고 서비스 기획 등, 이 중 서비스 기획은 모바일과 IT가 삶에 없어선 안될 수단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더욱 주목받고, 또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이 서비스 기획은 또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할까?
흥미롭게도 “현업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 기획 스쿨” 이라는 책이 그 답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M/PO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야 하는 책임이 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담당자들과 소통을 통해 개발을 진척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따라서 각 담당자들 수준까지 모든 것을 다 알 필요까지는 없지만, 대화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다. 대략적으로만 봐도 갖춰야 할 역량은 요건 분석부터 UI설계, 개발지식과 검증(Validation & Verification) 등등.
문제는 이런 지식들을 각 영역에서 깊이 있게 배울 수는 있지만, 파편화 되어 있고, 또 배운다 하더라도 PM/PO의 입장에서는 깊이 팔 필요도 없다. 즉 알아야 하지만, PM/PO가 알아야 할 지식은 너무 다양하고 모여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배우기 어렵고, 배운다 하더라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PM/PO를 막 맡게 된 초보 들 또는 PM/PO를 꿈꾸는 누군가의 어려움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온 것 같다.
각각은 나름의 깊이와 전문성으로 인해 따로 따로 배울 수는 있나, 해당 분야의 담당자가 아닌 이상 너무 깊게 팔 필요도 또 다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서비스 기획 PM/PO 가 알아야 할 내용들을 딱 맞게 정리해 두었다. 일종의 택스트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저자가 10년에 걸쳐 겪은 다양한 사례들, 특히 디자이너와 소통하기, 개발자와 대화하기 같이 경험해 봐야 알 수 있고, 해결해봄 직한 내용들을 수록해 둔 점이다. 서비스 기획자로서 혹은 그 길을 가려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염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할 현실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서비스 기획을 이해하고 공부할 루트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회사마다 서비스를 이루는 조직과 상황이 다르고, 여전히 체계화시 키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삽질한 내용들을 꾸준히 기록해 두었고, 다양한 지식이 한데 모아져 꽤나 괜찮은 교재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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