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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언제부터 엄마였어
by 진진 Nov 29. 2018

엄마, 김치 담그지 마

#1 나는 언제까지 엄마의 김치를 먹을 수 있을까

"알타리가 맛있게 됐더라고."


엄마가 김치를 잔뜩 담아왔다. 힘든데 오지 말라고 할까 봐 '알타리가 너무 맛있어서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핑계부터 댔다. 배추김치, 알타리, 깍두기. 종류도 다양하다. 요리에 쓰기 쉽게 마늘이랑 생강은 다지고, 청양고추 송송 썰어왔다. 고춧가루에, 국물용 멸치까지 가져왔다. "사서 쓰면 되는데.."라고 했는데 엄마는 못 들은 척했다. 마지막으로 미역국이 든 봉지를 내밀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나는 서른여섯에 결혼하기 전까지 내내 부모님과 살았다. 집에서 지하철로 2시간 걸리는 회사를 다녔던 약 3년 동안만 자취를 했다. 짧은 독립생활 당시 내가 인스턴트로 연명했기 때문인지, 엄마는 불혹이 가까워 오는 딸에게 자꾸만 뭘 주려고 한다. 염치가 없는 줄 알면 당장 곳간을 채우는 데 눈이 멀어 이번에도 넙죽 받았다.


사실 엄마가 타고난, 혹은 오래된 살림꾼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취직한 엄마는 내가 15살이 될 때까지 행원으로 일했다. 살림은 함께 살았던 할머니가 도맡았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밀린 집안일을 했지만, 김치 담그기부터 먹거리 준비는 할머니 담당이었다. 그래서 퇴직 후 엄마가 만든 반찬은 식구들의 입맛에 썩 맞지 않았다.


이후 엄마는 요리학원을 다녔고, 김치직접 담그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온 김치는 할머니 것과 비슷하진 않았다. 신기하게 할머니는 김치 국물만 봐도 밥맛을 잃을 정도로 김치 혐오자임에도 기가 막히게 담그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엄마는 그 천재성과 비교해 늘 자신의 김치를 셀프디스 하곤 했지만,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이제는 할머니의 김치가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



할머니는 엄마가 '깔끔병'이 걸렸다고 했다. 배추 한 장, 마늘 한쪽을 씻어도 눈을 까뒤집고 여러 번 씻는다고, 그러니까 손이 느리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했다. 그래도 엄마는 굴하지 않았다. 여전히 재료를 손질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얼마나 오래 물에 손을 담그고, 문지르면서 공을 들여 만든 음식들인지 알기 때문에 엄마가 준 반찬은 깨 한 알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열심히 퍼다 먹은 바람에 동날 것 같지 않던 엄마네 김치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지난 두 달은 김치를 사 먹었다. 불특정 다수의 입맛을 맞춰야 하는 바깥의 음식들이 그렇듯 입에 쫙쫙 붙었다. 엄마가 김장을 할 때쯤 사놓은 김치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남편은 오랜 자취생활로 식당밥과 msg의 노예가 됐기에 사 먹는 김치가 맛있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얼마나 좋은 고춧가루와 젓갈을 썼는지, 얼마나 손질을 꼼꼼하게 했는지, 그래서 이게 얼마나 안전한 음식인지는 나만 안다.


남편은 친정에서 뭘 받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드리지는 못할 망정 뭘 그렇게 가져오냐"고 꼭 입바른 소리를 한다. 그러고선 제일 잘 먹는 언행불일치의 아이콘. 사위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엄마는 꼭 섭섭해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한테 주고 싶어서 그래~"


자식이 열 명이어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들은 뭘 그렇게 퍼주고 싶을까. 친자식뿐이 아니다. 사위도 자식이라고 남편이 좋아하는 파김치와 고추장아찌도 잊지 않는다.


가끔 보는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엄마가 딸아들을 위해 만든 반찬을 전달해주는 코너가 있다. 매번 놀라는 게, 그 종류와 양이 어마어마하다. 큰 가마솥에 갈비찜을 하고, 게장을 담그고, 감자를 갈아 전을 만든다. 한 가지 하기에도 까다로운 음식을 기본 서너 가지 뚝딱 해 보내면서 더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엄마들은 대개 비슷하구나 싶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있는 대로 아낌없이 내어주고 싶은 마음.


오늘도 김치 없이 못 사는 남편 덕분에 한 움큼씩 사라지는 김치를 보며 뿌듯한 한편으로 미안해진다. 나는 언제까지 엄마의 김치를 먹을 수 있을까. 더 솔직히는 엄마가 더 이상 김치를 담그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거운 무 배추도 나르지 말고, 찬물에 손을 담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무엇도 주지 말고, 그럴 여력이 있으면 좀 더 당신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썼으면 좋겠다. 못 줘서 미안해하지도 말고. 물론 이런 말은 해봤자 엄마의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로 사라질 것이 뻔하지만.


엄마의 반찬 무더기 속에서, 하다 하다 심지어 새 양말 다섯 켤레를 발견하고 '맙소사'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양말 정도는 나도 사서 신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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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에세이스트
낭만을 품고 제주에 왔다가 큰코 다치는 중. 이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전 기자, 현 주부 겸 알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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