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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Aug 04. 2022

텃밭 정글 속 참외 찾기

참외와의 전쟁

텃밭 애물단지로 전락한 참외


참외는 농사짓기 어려운 농작물입니다. 저는 그걸 모르고 심었고, 지금도 참외와 전쟁 중이죠. 고생스럽지만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희 텃밭에서 참외를 키우고 있습니다. 여름에 참외를 수확하고 나면, 어차피 참외는 텃밭에서 사라질 예정이라서, 기왕에 시작한 거 올여름까지는 키워볼 계획입니다. 


참외라는 녀석은 생장 속도도 굉장할뿐더러, 앞뒤 양옆에 뭐가 있든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갈길만 보고 뻗어나갑니다. 이렇게 무서운 녀석인 줄 알았더라면 첫 농사에 참외를 절대 들이지 않았을 텐데 싶지만, 참외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제 부족함도 이번 농사를 망치는데 한 몫했습니다. 사전에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고, 좁은 공간에 참외 모종을 너무 많이 심은 탓도 있고, 제때에 맞춰서 순지르기를 해주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제가 이 상황을 좌초한 꼴이 되었네요. 충동적으로 하기보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과정이 얼마나 인생에서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낍니다.



참외 덩굴 그물 설치


독불장군 참외를 어느 정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덩굴 그물을 설치해주면 좋다고 유튜브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참외가 그물을 타고 올라가면서 성장하면,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더군요. 그래서 저도 부모님과 함께 난생처음 덩굴이 타고 올라갈 그물을 설치해보았습니다. 농약사에 들려서, 지주대 6개와 그물을 구매하고 텃밭에 설치를 해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길에 돈 뿌린 격이 되었네요. 그물을 도대체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 건지... 그물은 여기저기 농작물에 걸려서 구멍 나기 일쑤에, 심지어 참외 덩굴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약해 보였습니다. 가뜩이나 30도가 넘는 뙤약볕에 지쳐있던 부모님과 저는, 덩굴 그물 설치에 진땀을 빼며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엉성하지만 설치를 마친 참외 덩굴 그물


하지만 일단은 시작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설치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모였고, 남들이 보면 비웃을 만한 수준의 엉성함으로 덩굴 그물을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텃밭 주인인 친구 아버지의 농작물에까지 참외가 뻗어나가면서 피해를 주지는 않게 되었죠. 모양은 엉망이어도, 제가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해소가 된 격입니다. 



정글 속 참외 찾기


다음 주 찾아간 텃밭의 상태는 더욱 엉망이었습니다. 그나마 간간히 버티던 그물 기둥은, 참외 줄기와 잎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져갔고, 그물망의 축 쳐진 모습은 마치 참외 녀석에게 패배를 인정한 듯 보였습니다. 농부인 저마저도 참외에게 백기를 들뻔한 위태한 순간이었죠. 


참외가 많이 열려서, 올여름 참외 원 없이 먹기를 바라던 욕심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이 참외의 야심 찬 기세를 꺾어줘야겠다는 조금은 악한 마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참외 생장점을 모조리 잘라버렸습니다. 제발 더 이상은 자라지 말아 달라는 제 외침이 참외에게 들렸을까요? 


참외 녀석 혼쭐 내주는 도중에, 묵묵히 자라고 있는 참외를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표면적으로 눈에 띄는 참외 덩굴에만 혈안이 되어 정작 참외가 열렸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참외는 제 몫을 다하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참외 정글 속에서 발견한 참외


정글 속 참외는 아직 노랗게 익지는 않았지만 주먹보다 크게 자라 버린 참외도 있었고, 손가락만 한 크기의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참외도 보였습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더군요. 참외 과실을 보자, 참외를 향해 들었던 나쁜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참외덩굴에만 집작 하느라, 정작 중요한 참외 열매를 제대로 봐주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에 참외에게 미안한 마음도 살짝 비쳤고요. 비록 이번 참외농사는 엉망이 되었지만, 이번 경험을 밑거름으로 내년에는 부족한 점을 채워 농사를 더 잘 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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