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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Jul 29. 2022

텃밭, 그 속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옥수수 수확, 고추 분별

작은 고추가 맵다?


아주 유명한 속담이죠. 작은 고추가 맵다. 여기서 작은 고추가 의미하는 건 아마도 청양고추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청양고추들이 작으면서도 그 속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우니까요. 


장마가 오고 난 후, 요즘 엄청난 수확량을 보여주는 농작물 중에 하나가 바로 고추입니다. 저희 텃밭에는 청양고추와 일반 풋고추가 함께 심어져 있습니다. 손도 얼마 안 가고, 신경을 많이 못써줘도 알아서 잘 자라 주는 기특한 농작물이죠. 문제는 제가 청양고추와 풋고추를 심을 때 어디에 뭘 심었는지 모른다는 거에서 시작됐습니다. 모종을 심을 때는 나름 분리해서 심은다고 심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 머릿속 텃밭 고추의 기억은 희미해져 갔습니다. 게다가 장마를 겪고 난 후, 상당히 많이 자란 고추는 서로 뒤엉키며 누가 누구인지, 서로의 뿌리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뒤섞여버렸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주부 경험을 토대로, 큰 고추는 풋고추, 작은 고추는 청양고추이겠거니 단정 짓고, 잘 익은 고추를 골고루 수확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수확량에 기뻐하며 집으로 가져와, 그날 점심으로 남편과 함께 고기를 구웠죠. 물론 그날 따온 싱싱한 고추와 상추를 곁들인 식사였습니다. 아삭한 오이 고추를 상상하며, 큼지막한 고추를 한입 베어 물은 순간, 고추의 극한의 매움이 제 입안에 터지면서, 오이 고추의 탈을 쓴 청양고추에게 당한 제 속도 터졌습니다. 매운걸 평소 잘 못 먹었기에, 눈물을 훔치며 고추를 남편에게 권했습니다. 


남편은 우리 텃밭 고추가 이상하다는 걸 재차 확인시켜주더군요. 그야말로 작은 고추는 청양고추, 큰 고추는 오이 고추라는 저희의 기존 상식을 깨버리는 사건이었죠. 겉만 보고 판단했다가, 큰코다친 저희 가족은 이제 텃밭 고추에 손도 대기 무서워졌습니다. 내년에는 심은 작물에 꼭 이름표를 붙여주렵니다. 꼭.


어느 고추가 청양고추인지, 어느 고추가 오이고추인지 분간이 어려운 모습



옥수수는 키우는 것보다, 수확이 더 어렵네요.


텃밭에서 가장 미적으로 멋진 농작물을 뽑으라면 저는 옥수수에 한 표를 던질 겁니다. 우아하고 웅장한 잎부터 시작해서, 큰 키에,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 위치한 별처럼 멋들어진 옥수수 꽃까지. 하나하나 관찰해볼수록 멋지기 그지없습니다. 쑥쑥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옥수수가 어느덧 꽃을 피웠습니다. 이전에도 본 적은 있었지만, 이게 옥수수의 꽃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죠.


크리스마스 트리 별을 연상시키는 옥수수 꽃


옥수수 꽃은 개꼬리라고도 불립니다. 아마도 개의 꼬리를 닮은 모습에서 별명이 붙여지지 않았나 싶은데, 참 정겨운 표현 같습니다. 개꼬리도 터지고, 옥수수수염도 익어가는 모습이 수확할 때가 다가오는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옥수수 수확시기를 의미하는 몇 가지 단서를 찾아보았습니다.


1. 옥수수수염이 갈색으로 변하고 바짝 말라간다. 

2. 옥수수 알맹이가 단단하다. 옥수수수염 쪽을 잡았을 때 묵직하고 단단하다.

3. 옥수수 꽃이 핀다. 


단서에 맞춰보며 옥수수를 관찰해보니, 저희 텃밭 옥수수도 얼추 수확시기가 된듯했습니다. 그 사이 호기심이 발동했고, 옥수수 중에서도 크게 자란 몇 개를 따서 수확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자란 옥수수 몇 개를 위에서 아래로 뜯으며 첫 수확을 했습니다. 


옥수수 첫 수확


두꺼운 옥수수 껍질로 철벽 무장한 옥수수 속을 알아볼 방법은 까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옥수수 속이 너무나 궁금했고, 집으로 오자마자 옥수수 껍질부터 까 보았죠. 커 보이던 옥수수는 과대포장 과자처럼, 껍질을 빼고 나니 속은 생각 외로 빈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먹어왔던 알알이 크게 박힌 옥수수는 온데간데없었고, 갓난아기의 유치처럼 작은 옥수수 알맹이들 뿐이었죠. 농사라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싶습니다.


첫 수확한 알맹이가 작은 비약한 옥수수


하지만 저희 아이들은 그 빈약한 옥수수도 좋다며 옥수수를 달라고 졸라댔고, 간단히 옥수수를 쪄서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과연 이걸 잘 먹어줄까라는 걱정은 시간 낭비였습니다. 아이들은 옥수수 알맹이가 작아서인지, 옥수수 대까지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며, 제게 옥수수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죠. 지금 남아있는 옥수수는 더 키워야겠습니다. 부디 알맹이 큼직한 멋진 옥수수가 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맛있는 옥수수를 선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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