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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나 Nov 25. 2024

눈 오는 날

언제쯤 눈이 올까요?

눈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10살 아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물어본다.

"짱구야~ 오늘 인천시 청라3동에 눈소식 있어?" 

있을 리 없다.

"오늘 청라3동에는 눈 소식이 없습니다"

잔뜩 실망한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눈이 올법한 다른 지역에 대해서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짱구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에는 눈 소식이 있어?"


아이가 해마다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는 눈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서이다. 희한하게 여름보다 겨울이 백배는 좋단다. 겨울에 오는 눈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눈이 쌓이면 눈사람도 만들고, 눈오리도 만들고, 또 눈썰매도 탈 수 있어서 좋단다.

작년 이맘때 첫눈이 내렸다. 꽤 많이 왔었다. 작년에 찍어 둔 첫눈 오는 날의 영상은 더욱더 올해의 첫눈을 기다려지게 만든다.

"엄마~ 올해는 왜 이렇게 눈이 안 오는 거야?" 오늘도 뾰로통해진 입술로 아이가 물어온다.

눈 오는 날


하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은 손을 꼭 모아 본다.

구름 사이 흩날리는 바람,

"언제 눈이 올까요?"


첫눈이 오면,

나는 달려 나갈 거야.

발자국으로 길을 그리고,

손끝으로 눈꽃을 잡을 거야.


마당 가득 눈사람 친구도 만들고

목도리 둘러준 뒤 인사할 거야.

"어서 와, 겨울아!"

내 마음속 하얀 세상처럼.


오늘은 기다림의 날,

눈이 오기를 꿈꾸는 날


내가 어렸을 때는 눈이 참 많이도 왔었다. 겨울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하얗게 뒤덮인 세상이 보이면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조그마한 장갑 속 손은 금세 시렸지만, 이상하게도 추운 줄도 모르고 계속 놀았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눈길 위에 남은 발자국을 보며 누구 발자국일까? 상상 속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오들오들 떨면서 엄마가 끓여주신 코코아 한잔을 마셨던 기억까지. 눈 오는 날은 단순히 풍경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따스한 기억과 설렘이 있어서 지금도 그날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첫눈이 늦어지고, 눈이 쌓일 만큼 많이 내리는 날도 손에 꼽을 정도다. 너무 많은 눈이 내리면 교통 혼란을 일으키고, 건물이나 시설물이 손상되거나 산사태와 같은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세상이 선사하는 눈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우리에게 설렘과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이유는 주로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기온이 상승하면 눈보다 비가 내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 패턴 자체가 변화하고 있어 눈이 오는 양과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기후변화가 첫눈 오는 날까지 늦추어 버리다니.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느낀다.


아이만큼 나도 눈이 기다려진다. 첫눈처럼 특별한 날에는 어른들도 아이 같은 마음으로 설렘을 느낀다. 어른들도 눈 내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감성적 설렘과 현실적 고민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의 추억이 떠올라 마음 한 편의 따뜻함과 설렘이 느껴지다가도, 출근길이 불편해지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할 테니까.


"이번주 수요일에 눈 소식이 있습니다."

AI스피커가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을 들려주었다.

아이가 만세! 를 외치며 펄쩍펄쩍 뛰었다! 이거 이러다 갑자기 일기예보가 바뀌거나 하면 큰일인데...

기쁘기는 한데, 만약 눈이 오지 않았을 때 아이가 느낄 실망감이 클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오늘, 내일은 아이와 함께 창가에 앉아 첫눈을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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