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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Mar 21. 2023

남자는 모르는 여자의 마라톤

생리할 때 운동해도 되나요?

나의 첫 풀 마라톤 대회 정말 즐거웠고 또 나가야지!(photo by @class0321)


여자로 살면서 자주 자궁을 미워했다. 이번 동아마라톤 풀코스를 앞두고도 그랬다. 남자 마라토너는 대회 전날 발목이나 무릎의 안녕을 기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인 나는 달랐다. 대회 2주 전부터 자궁의 심기를 살폈다. 평소 말썽이던 무릎과 발목이 안정을 찾으며 온몸이 '42.195km 뛸 준비 완료'를 외쳤는데, 딱 한 곳 자궁만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와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대회 2주 전부터 배를 어루만지며 자궁에게 사정했다. 하루라도 빨리 생리를 하지 않으면 마라톤 대회와 생리일이 겹쳐서 대회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리통을 참고, 피를 흘리면서 뛰는 건 생각만 해도 짜증 난다.


자주 자궁과 여성호르몬한테 지곤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시간엔 생리를 이유로 가만히 벤치에 앉아있었다. 쓰러져서 죽을 거 같은 건 아닌데, 어딘가 아프고 많이 움직이면 혈흔이 샐 거 같아서 행동을 작게 하던 날들, 그냥 불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엄마랑 싸운 날. 어른이 돼서도 뭔가 예민하거나 잠이 많고 식욕을 주체 못 하겠을 땐 '곧 생리하니깐 그런가 보다'라며 자주 무언갈 포기하거나 미뤘다. 그때마다 여자로 태어난 팔자가 싫었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매달 1주일을 날리니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인스타와 유튜브에도 종종 여자들이 생리할 때 돼지력이 상승하고, 자제력을 잃으며 운동 브이로그 대신 먹방을 찍곤하는데, 미개하게 이미지화되는 게 싫었다.


생리하면 당연히 풀마라톤은 못 뛰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몇 주 전 본 기사가 퍼뜩 생각이 났다. 산악인 김영미가 113kg 무게의 썰매를 홀로 끌고 남극점에 도달한 기사였다. 김영미 산악인은 몇 년 전에도 7 대륙 최고봉을 한국 최연소로 완등했으며, 바이칼호 724km 종단 등 굵직한 등반과 모험 업적을 남겼다.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생리할 때 계속 산행했나요?'그리고 '봄날씨의 42.195km는 괜찮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궁에게 통보했다. '네가 생리하든 말든 난 뛸 거야'라고. 다음날 아침 40일 넘게 멈춰 있던 생리가 대회를 이틀 앞두고 시작했다.


마라톤을 앞두고 자매님을 붙잡고 ’ 생리할 때 콩쿠르이나 대회를 앞두고 어떻게 했냐 ‘고 조언을 구했다. 산악인 김영미는 지근거리에 없지만, 김영미 산악인처럼 매일 운동하며 자신의 한계를 높여가는 자매님들이 많았다. 숱한 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를 계절마다 즐기는 언니, 23살 때부터 바다 수영을 다니는 친구, 매일 강도 높은 발레 클래스 와 정기 공연을 하는 발레리나. 모두가 ‘그냥 해'라는 너무 단순한 답을 했다. 몸이 힘들지 않았는지, 혈흔이 샐까 봐 걱정이 되지 않는지? 빈혈이 와서 쓰러진적은 없냐는 질문에 걱정을 덧대보았지만, '생리를 해도 하고 싶은 건 해야지'라며 잘 완주하고 오라며 응원해 줬다. 누구는 오히려 몸의 컨디션이 더 좋아지니깐 매달을 딸 거라고 말했다. 나는 한평생 자궁을 미워하며 생리하는 시간을 버려왔었는데, 누군가는 몸의 일부를 단련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이번 풀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


그리고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4시간 40분을 쉼 없이 달리며 첫 풀 마라톤을 건강하게 완주했다. 올해 1월, 추운 겨울부터 대회 전 주까지 매주 60km를 뛰었다. 다른 약속은 미뤄도 달리기 약속은 꼭 지켰다. 비교적 느린 러너지만 매주 훈련 때마다 채워야 할 거리를 다 뛰었다. 그래서 대회에서도 30km까지 달리는데 즐겁고 재밌게 달렸다. 무엇보다 대회를 4개월 동안 준비하면서 몸과 많이 친해졌다. 특히 매달 문제였던 자궁에게 고마웠다. 항상 생리할 땐 안 뛰었는데 이번 대회는 32km 까지 평소보다 다리가 가벼웠고, 뛰는 동안엔 생리가 멈췄던 거 같다. 4시간 40분 내내 중력을 받은 발목, 등, 허리, 몸 구석구석에게 고맙다고 말을 걸며 앞으로 더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다. 완주 기록보다 더 소중한 건 마라톤을 준비한 4개월, 그리고 대회 4시간 40분 동안 몸과 대화하는 시간들이었다.


대회 준비 전, '생리를 할 땐 어느 정도 운동 해도 될까' 궁금해서 유튜브와 블로그에 검색을 해봤다. 근데 이를 설명하는 콘텐츠가 2~3개 정도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애매하게 설명돼 있었다. 익명의 의사들과 바디 프로필을 찍은 헬스장 코치가 '적당히, 몸에 무리 가지 않게'라는 조언이 참 추상적이고 참고가 안된다 싶었다. 그래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로 써둔다. 생리할 때 풀마라톤 코스를 완주도 완전 가능하다. 템폰을 끼고 하면 오히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아서 생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오히려 혈액순환이 잘돼서 뛰는 내내 몸의 컨디션은 더 좋았다. 그러니깐 앞으로 나는 생리하더라도, 몸의 부위 어디가 아프거나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걸 핑계로 하고 싶은 걸 포기하거나 미루지 않기로 했다. 귀한 배움을 얻은 첫 풀 마라톤, 하길 잘했다.

생리 중 겁도 없이 하얀옷 입고 뛴 대범함, 스타일이 중요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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