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이 운동하기
운동 중독자로 언 3년을 살면 어엿한 운동 꼰대가 된다.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밥때가 되면 요깃거리를 먹는 사람을 보면 꼭 한마디 하고 싶다. 특히 홈트를 보며 아등바등 운동하고 있는 사람 앞에 가, '에헤! 그러면 운동 안 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정확한 자세는 말이죠' 하며 꼰대질을 하고 싶다. 우리 아빠는 자주 사정권 안 목표물이 된다. 노쇠해지는 몸 때문에 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잠깐이라도 맨몸 운동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딸 눈에는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학습하는 것이 목격된다.
우선 아빠가 홈트를 하는 거부터 맘에 안 든다. 방에서 몰래 스쿼트와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을 봤는데 중량도 없이 깔짝 하는 것이 가장 문제다. 또 처음에는 트레이너에게 정확한 자세를 배우고 거울을 보면서 올바른 자세로 반복연습을 해야 하는데 자린고비인 아빠는 운동에 절대 돈 안 쓰겠다고 우긴다. 그런 만만한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갑이 가까워지면서 아빠는 자주 우울감을 휩싸인다. 정신적으로는 점점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기가 오면서 패배감을, 체력적으로는 몸의 한 부분씩 고장이 나면서 두려운 감정이 겹쳐서 무력감에 빠진다. 제일 속상한 건 본인 이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딸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제 좀 제대로 운동 했으면 하는 마음과 내가 운동 좀 한다는 우월감이 뒤섞여 꼰대질로 표출된다.
고작 아침운동 10분으로 녹초가 된 아빠에게 말했다. 잘못된 자세로 하고 야식을 먹으면 아무 소용없으니 돈을 들여 배우라고, 운동 중독인 나를 보라고 내가 왜 돈 주고 배우겠냐고 핀잔을 줬다. 잠시 말이 없던 아빠는 삐죽거리며, '나도 중학교 때 어렸을 땐 육상선수였어', '네 엄마가 나 농구하는 모습에 반했어'라는 말했다. 아침부터 꼰대질을 당해 뾰루뚱해 출근한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후회했다.
되짚어 보니 오늘의 운동중독의 나는 아빠의 희생과 피땀 눈물이 만들었다. 어렸을 적엔 운동을 싫어했다. 그런데도 아빠는 애원하며 테니스, 스키, 수영 등 여러 운동을 배우게 했다. 하지만 항상 잔꾀를 부리거나 농땡이치곤 했다. 아빠는 레슨 전후 픽업은 물론. 테니스 공 줍기, 스키장비 들어주기 및 예쁜 운동복에 사다 바치기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서 했다. 그런데도 나는 투정 부렸고 아빠에게 짜증을 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유 없이 운동하고 집에 가던 길 아빠가 말했다. '우리 딸이 아가씨가 돼 남자가 운동하러 가자고 하면 김밥 싸고 벤치에서 뒷바라지가 아닌 스키든 골프든 뭐든 할 줄 알아서 같이 운동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지금 좀 배워놔야 해'. 아마 그날부터 난 어떤 운동이든 군말 없이 배웠던 거 같다.
사회인이 된 지금. 아빠가 이것저것 알려준 운동들이 얼마나 큰 자양분인지 매일 느끼고 있다. 어떤 운동을 배우러 가면 초급반에서 시작하더라도 빨리 중급, 고급 반으로 넘어갔다. 또 심리적으로도 어렸을 적 배운 운동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데 부담감이 적었다. 그래서 어떤 운동이든 빠르게 배우고 커뮤니티에서 게임을 치르고 있다. 무엇보다 아빠의 바람데로 연인이든 어느 누가 됐든 함께 경기를 할 수 있는 파트너 노릇을 한다. 운동을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대등한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그 관계에서 내 목소리와 실력을 내게 만든다.
아빠가 키운 딸이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아빠가 20년 동안 몸소 알려줬다. 지금 함께 운동하는 것. 그래서 지난 주말 북악산을 다녀왔다. 지난 3년간 등산동아리를 주최해 주변에 사람들 다 등산하게 만들었으면서 아빠랑 함께 갈 생각을 못했다. 아빠에게 난 운동하기 싫어하는 사춘기 소녀에 머물러 있었다. 이 능선 저 능선 힘차게 뽈뽈거리며 다니는 모습에 깜짝 놀란 모습이다. 같은 시간 속 건강하고 튼튼해진 나와 달리, 아빠는 배도 나오고 근육도 많이 빠졌다. 아빠가 힘에 부쳐하고 헉헉거려리는 모습에 속상했지만 그래도 같이 등산을 다니고 다른 운동도 많이 해야겠다고 계획했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에게는 김밥 안 싸줬지만, 우리 아빠에게만큼은 특별히 김밥도 싸주고 장비도 사주면서 영원한 치어리더가 돼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