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량과 박자를 선택하기
혼돈 속에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법. 운동을 통해 체득했다.
매일 HIIT(Hyper Intensive Interval Training)를 하고 있다. 이 운동은 45분 동안 1분 동작 후 40초 휴식을 지속해 600칼로리 이상을 소모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운동 내내 혼돈에 빠진다. 나도 그 혼돈에 휩싸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또 한 공간에서 30여 명의 남녀가 함께 운동을 하다 보니 서로를 알게 모르게 의식하게 된다. 고중량을 뽐내기도 하고 그런 이들이 주목을 받다 보니, 나도 강하다는 걸 인정받고 싶었다. 실제로 몇몇 코치들과 회원들이 잘한다고 칭찬도 해줬고, 복근도 생겼다.
딱 그뿐이었다. 그런 나날이 반복되면서 한동안 몸이 닳는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고중량 운동을 하지만 고기를 거의 먹지 않다 보니 단백질 보충은 안돼 살은 쭉쭉 빠졌고 피로가 쌓였다. 그래도 복근이 선명해지고, 누군가가 열심히 운동한다고 인정해주니 무리해서 계속 운동했다. 내 주제를 모르고 무리했던 건 비단 운동만이 아니었다. 일상이 그랬다. 회사일도, 이직 준비도, 인간관계도 과부하 상태 었다. 인간관계 잘 쌓아둬야 하니깐 꾸역꾸역 누군가와 약속을 잡았고, 내가 싫어한 동료보다 더 이직 잘하고 싶으니깐 하면서 방향키는 잃은 채 수많은 회사에 기계처럼 지원서를 써냈다. 누군가를 만나서 요즘 겪고 있는 시련들이 얼마나 강도가 높은지, 전시하듯 말했다.그런 날들이 이어지고 겨우 일상도 운동도 지속하던 날, 한 코치가 와서 옆 운동하는 걸 보다가 말했다.
"왜 이렇게 집중 못하죠. 하나의 동작을 하더라도 집중해서 하는 게 중요해요!"
사실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하나를 해도 집중해서 제대로 해야 하는 거 누가 모르나. 그리고 그동안 고중량을 여자 치고 잘 드는걸 봤을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몇 번 나의 동작을 보더니 가벼운 중량을 주면서 말했다. 무거운 중량을 한번 하는 것보다 규칙적인 박자로 1분을 채워 동작하는 것이 체력과 운동 실력을 높일 수 있다고. 지금 몸으로 고중량을 하는 건 근육의 피로도를 높이고 몸에 무리를 주는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돈오가 왔다. 코치가 쥐어준 적당한 무게의 덤벨을 들고 1분을 규칙적인 리듬에 맞춰 반복했다. 고작 1분이지만 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내가 중심이어야 했다. 나의 주제와 박자를 염두해 한 동작 한 동작씩 시간과 에너지를 안배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1분의 속도는 제어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박자와 무게는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주도권을 이날 자각했다.
사회생활에서 강한 자는 결국 가장 마지막에 남는 자라고 한다. 매일 출근을 시작으로 수많은 선택을 해야겠지만 내 박자에 맞춰서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빼고, 쉴 땐 쉬어야 마지막에 남을 수 있다는 걸 이날 체득했다. 이날 이후로 내 박자에 맞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 상태를 점검하고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시간을 채우고 있다. 예전 같으면 '다 할 수 있어' 하면서 꾸역꾸역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을 텐데 말이다.
며칠 전 한 이직 제안을 거절하는데도 그날의 배움이 떠올랐다. 이직 자리는 원하는 직무가 아니지만 연봉과 네임밸류는 나를 멈칫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 맡은 업무들과 앞으로의 커리어 목표를 그려봤다. 지금 회사에 맡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 그리고 미래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매일 퇴근 후 배우는 코딩. 이걸로도 충분히 벅찬데 며칠 만에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다시 면접까지 보려니 머리가 지끈했다. 그래서 거절했다. 그리고 참 개운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삶의 속도는 빠르게 흘러가겠지만 그 시간을 내 박자로 채우는 삶. 어떻게 하다보면 끝나겠지라고 허겁지겁 해치우기 보다는 마지막 1초까지 박자와 무게를 주도하며 시간을 채우고 싶다. 한동작 한동작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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