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추도사 Nov 19. 2020

산은 사람을 바꾼다

산이 가르쳐준 스치지만 뜨거운 인연

사람은 변한다. 3년 전 첫 산행. 관악산을 오르는 데 한 아저씨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눈을 껌뻑이며 그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했다.'저분을 어디서 봤나?’ 그리고 이내 ‘아저씨 저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빵 터졌는데, 혼자서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날 모르면서 왜 인사하지' 갸우뚱해했다.


왜 사람들이 빵 터졌는지는 곧 이해했다. 정상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정상 언제 나와요?'라고 다짜고짜 물었다. 살기 위한 질문이었다. 초점을 잃은 내게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빙긋이 웃으며 '20분만 가면 된다'라고 말하곤 훌훌 떠났다. 그 말만 믿고 20분을 넘게 걸었는데도 정상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또 누군가를 붙잡고 물었다. '정상 가려면 몇 분 남았어요?', '원래 이렇게 힘든가요?' 산악회 아줌마 아저씨들이 이구동성으로 ‘20분 정도만 가면 돼 거의 다 왔어’라고 말했다. 이제 와서 하산하기도 애매하고 여길 제 발로 걸어온 자책이 뒤섞여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울분을 토했다. 아까도 20분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왜 시간은 그대로냐고. 근데 아무도 ‘왜 나한테 따지고 난리야’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다들 나 몰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웃으며 진짜 20분만 가면 된다고 응원해줬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정상에 다다랐다. 그날 정상에서 마신 물이 참 달았다. 그리고 하산길 사경을 헤매고 있는 낯선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20분만 가면 돼요! 진짜 다 왔어요!'


인간관계는 이진법이었다. 내 사람과 아닌 사람. 근데 그마저도 정말 좁았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서 그중에서 또 찐사람을 골라냈다. 자라온 환경이 비슷한 사람, 비밀을 공유한 사람 등 사소한 것들로 기준을 만들어 관계에 선을 그었다. 별로 안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서서 도움을 주면 '뭔 꿍꿍이지'라고 의심부터 했다. 나 또한 누군가가 힘들어 보이면 가서 도와줄 때도 있지만 주책 같다며 자기 검열을 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가 상대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도, 나도 폐를 끼치기 싫어 혼자 해내는 게 속편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인간관계는 한없이 좁아지고, 결국엔 사소한 도움을 요청하거나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는 방법을 까먹었다. 어느 순간 외로웠고 무언갈 하려고 해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됐다.


그런 내가, 산에 다니면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뜨거움을 배웠다. 산에서 스친 인연들이 준 한마디가 인연이 되기도 하고, 정상에 다다르게 하는 기폭제가 됨을 여러 번 경험해서일까. 산에서든, 일상에서든 스쳐가는 인연을 붙잡고 등산 별곡을 부른지 언 3년이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윗집 아저씨, 초등학교 때 인사만 주고받던 친구와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야 할 때면 등산 이야기를 한다. "제가 등산을 정말 좋아해요 저번 주는 소백산에 다녀왔고요, 이번 주말은 단원들 이끌고 아차산을 갈 예정입니다. 아 소개가 늦었네요 양배추 등산회 대장이에요"라며 TMI를 시전 한다. 그리고 '당장 주말부터 당신도 양배추 등산 렛츠고'를 외친다. 모두가 신기하게도 ‘가면 아는 사람이 배추도사님 말곤 없어서 어색할 거 같아요’라며 도망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산에서는 누구든 친구이며,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게 도움을 받고 함께 갈 사람이 있으면 정상에 갈 수 있다고 설파한다.


진짜다. 이름 정도만 알던 지인들과 산에 오르며 등산동호회를 만들기 까지 산에서 만난 스친 인연들의 몫이 컸다. 아슬아슬한 걸음걸이를 보며, 올바른 등산 걸음마를 알려준 ‘관악산 아저씨’, 절벽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내게 손을 내어주며 용기를 가지라고 했던 ‘육봉의 피카츄 아저씨’, 젊은 청년들이 건강해 보이는 게 보기 좋다며 아이스크림을 쏜 ‘골든벨 아저씨’등 찰나의 순간만 함께 했을 뿐인데, 정상에 다다르게 하고, 등산에 재미를 붙기도록 도와준 뜨거운 인연들이다. 산에서 옷깃만 스친 이들과 ‘안녕하세요’, ‘정상에서 봐요’라고 인사를 나누면 묘한 힘이 생기며 정상을 향해 내딛을 힘이 생긴다는 걸 등산을 하면서 알았다. 이젠 초행길이나 험한 산을 간도 두렵지 않다. 어느 산에서든지 스치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넬 용기와, 누군가의 인사에 대꾸할 열린 마음이 있다면 정상은 이미 정복은 완료이기 때문이다.


등산을 시작하고 나서 일상생활도 변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며 따스한 말을 건네려 하고,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스치듯 위로의 말을 하려고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주면 그저 감사해한다. 업무상으로 한번 본 사람에게 능청스럽게 등산하자고 하고, 산 정상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산악회 아저씨들에게 번호를 따며 다음에 태백산맥을 탈 때 연락하겠노라 호언장담하는 그런 사람이 됐다. 오늘도 연락이 끓긴 친구에게 등산을 빌미로 메시지를 먼저 메시지를 보낸다. '등산 갈래?' 산은 그렇게 사람을 변하게 한다.

지나가던 산악회 대장 아저씨가 지시한데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이 알려준 시간을 지배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