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자율성이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판단력과 경험이 미숙한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서, 정작 어른으로서의 지도력과 책임을 방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율성은 귀한 가치다. 하지만 그 가치에도 한계와 조건이 존재한다. 이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자율성은 아이를 성장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방치의 변명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영화에는 연령에 따른 관람 등급이 정해져 있다. 전체 관람가부터 제한 상영가까지, 등급을 나누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령별로 판단력, 이해력, 감정적 수용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인간 성장의 속성을 반영한 원칙이다.
아이의 판단력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와 경험에 따라 서서히 발달한다. 그런데도 일부 부모들은 이 기본적인 사실을 무시한 채, 마치 전체 관람가 영화를 본 아이가 곧바로 제한 상영가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처럼 자율성을 허용한다. 이는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세계에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자율성은 아이가 선택을 경험하고 책임을 배우는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영화 등급이 연령별로 나뉘듯, 아이에게 제공되는 자율성 역시 그들의 발달 수준에 맞춰 조정되어야 한다. 아이의 선택 범위가 과도하거나 불안정할 경우, 자율성은 성장이 아니라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며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법을 배워간다. 하지만 그 선택은 언제나 제한적이어야 하고 교사의 지도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성장하지 않은 아이에게 무제한적인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동시에 어른의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다.
부모는 자율성을 명목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결정적 순간에 최종 판단권을 상실한 부모는 나침반 없는 선장꼴이 된다. "좋을대로 해"라는 말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판단의 기회가 필요하지만, 그 판단의 한계를 정하고, 궁극적인 책임은 부모가 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른은 단순히 권위자가 아니라, 아이가 실수와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이끄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네가 결정하되, 여기까지는 내가 관리할게"라는 태도는 아이에게 자유를 제공하면서도 안정감을 심어준다.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한 자율성도, 무조건적인 규율도 아니다. 아이의 성장 단계에 따라 적절한 지침과 실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율성은 아이가 선택과 책임을 배우는 귀중한 도구지만, 그 도구가 방치로 변질되지 않도록 어른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율성은 성장의 열쇠지만, 그 열쇠를 잘못 사용하면 아이는 혼란의 문을 열게 된다. 어른의 책임은 그 열쇠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아이가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