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파트장님, 저 이날부터 이날까지 연차써도 될까요?'
2019년 10월초.
개천절과 한글날이 주중에 띄엄띄엄있었던 주간이라 회사에 연차를 쓰고 홀로 유럽으로 날아가 2주라는 시간을 보냈다. 길게 연차를 쓰기 좋은 형식상 명분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그보다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무엇이 내 심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것일까. 특별히 그때 더 바빴던 것은 아닌데 경력이 4년 남짓 되던 시점이라 슬럼프로 추정되는 녀석이 찾아왔던 것 같다.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거론되지 않는 것 같지만, 흔히들 일과 삶의 균형을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이라고 부른다. 당시 나는 이 균형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소위 내 주변에서는 '퇴사위기' 또는 '슬럼프'라고 부르는 직장인의 위기를 짝수연차, 그러니까 2년차·4년차·6년차 같은 식으로 겪는다는 말을 많이 했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신입으로 시작하여 경력을 쌓고, 중간관리자를 거쳐 책임이 주어지는 관리자가 되기까지 일반적인으로 직장인이 그즈음 겪는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시점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스트레스의 두 번째 시점을 지나는 중이었다.
유럽 여행의 절반이 다가올 때 쯤 나는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아 멍하니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둥근 아치형 지붕이 얹어진 이국적인 모습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위치한 몽마르뜨 언덕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볼거리가 가득했다.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웨딩촬영 중인 사람들부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리기 바쁜 전세계사람들, 어느 곳을 보더라도 지루할 틈이 없었지만 파리 시내를 조망하며 시선의 틈을 주는 여유도 부려보았다. 나홀로 여행의 최대 장점은 생각할 시간이 많아 쉽게 상념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시선이 머무는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웃음과 미소에 여행 중 마음 한 켠에 묻어두었던 '일'과 관련된 어두운 부분이 더욱 짙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걸까? 다들 너무도 행복한 삶인 것 같은데'
여행 중 대부분의 시간동안 육체적으로는 관광을 하고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깊은 상념에 빠져있는 일종의 '유체이탈의 시간'이었다. 몽마르뜨 언덕 뒷편 식당가 골목으로 들어서니 한 쪽 길을 따라 풍경화를 팔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줄지어 있는 게 보였다. 수십년도 더 된 것만 같은 파렛트와 붓을 주름진 손에 쥐고 하얀 캔버스에 색을 옮기던 희뿌연 머리의 할아버지의 눈빛은 여전히 젊은 시절의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작은 물감 용기 뚜껑을 여닫으며 사람들과 웃으며 즐겁게 일하는 그들을 보며 워라벨의 의미에 대한 나의 출구 없는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갔다. 도대체 진정한 워라벨은 무엇일까. 그렇게 2주라는 시간에도 온전한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여전히 출근길에 오르고 있다.
얼마 전 퇴근길에 SNS를 통해 접했던 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워라벨'이란 내가 업으로 하는 직장에서 하는 일이 내가 좋은 일이 아니라 남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수록 그 중요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말이었다. 결국 워라벨은 단순히 일과 삶의 균형이라기 보다는 '나 좋은 일'과 '남 좋은 일'의 균형이라는 얘기다. 워라벨에 조금은 철학적일 수 있는 이야기가 입혀지니 어느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이야기의 핵심을 '남 좋은 일' 보다는 '나 좋은 일'의 비중이라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출근 후 내게 주어지는 회사 일이든 퇴근 후 내가 하는 나만의 일이든 내가 좋아하면 그 뿐이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추면 워라벨도 어쩌면 굉장히 심플하게 정의할 수 도, 실천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지만 매일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시선을 조금만 달리 하여도 온 세상이 바뀌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워라벨은 그렇게 제 방향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많은 실험과 실패, 그리고 성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당신의 워라벨은 지금 어떠한가.
워라벨, 지금 잘 지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