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17화] 육아와 체력 그리고 운동

25. 01. 15. (목)

by 영글생

살다 보니 아쉬운 것들이 생긴다. 어느 땐 돈이 아쉽고 다른 때에는 시간이 없다. 두 아이를 기르다 보니 아쉬운 자원이 또 늘었다. 바로 체력이다. 육아 동지들은 많이들 공감하리라. 출산과 함께 잠과의 사투가 시작되잖는가. 통잠을 자면 조금 낫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곤하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부모의 관심과 자극을 바라니까. 잠깐 눈 돌린 새에 물을 엎거나 바닥에 낙서를 하는 일은 다반사다. 무거운 쇳덩이는 거뜬히 들건만 아이를 비행기 태우는 놀이는 왜 이리 금방 힘든지. 육아와 살림을 웃으며 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휴직을 하며 운동부터 다시 시작했다.


내 운동의 이력은 성인 이후에 시작됐다. 학창 시절에는 운동을 거의 안 했다. 군 복무를 하며 강제로 운동을 했는데 하다 보니 복학을 하고도 꾸준히 이어졌다. 주로 턱걸이나 평행봉과 같은 맨몸 운동을 했는데,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헬스장에서 기구를 이용했다. 초임 발령지는 시골이었고 사택 근처엔 헬스장이 없었다. 취업 후 내게 주는 선물 격으로 홈짐을 꾸렸다. 미니랙과 중량봉, 원판과 벤치. 본격적으로 배운 건 결혼 이후였다. 앞자리 체육 선생님이 대학에서 복싱을 전공하고 퍼스널 트레이너를 하다가 교직에 들어온 분이었다. 마침 군대 선임이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호형호제하며 함께 운동했다. 이때 체중도, 수행 능력도 꽤 늘었다.


첫째가 태어날 땐 청주에 위치한 대학원에서 연수 파견 중이었다. 이른 아침에 학교 운동장이나 주변을 뛰고 가벼운 턱걸이 정도를 간간이 했다. 파견에서 복귀한 24년 1학기엔 정말 운동 시간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바쁜 새 학기인데 둘째 출산 전 난산이 예상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출산 전후로 정신이 없는데 조모상도 치렀다. 아내의 몸과 마음도 회복되지 않아서 나 혼자 개인 시간을 보내기 어려웠다. 새벽에 일어나 좀 뛰다 보면 어김없이 두 아이 중 하나는 깨어 울곤 했으니.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턱걸이를 하다가 도중에 어깨를 다쳐서 그것도 그만뒀다. 가장 체력이 필요할 때에, 가장 운동과 멀어졌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 우리 부부는 첫째 목표를 체력 증진으로 삼았다. 공동 휴직을 시작하면서부터 아내는 집 앞 구립 헬스장에 등록했다. 아내가 첫째를 등원시키고 운동을 가면 나는 둘째 이나를 돌본다. 이나가 일찍 자거나 아내가 돌아오면 홈짐에서 내 운동을 한다. 목표가 건강한 일상에 있으니 무리하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니 효과가 좋다. 맨몸 운동의 수행도 좋아졌다. 주말엔 유나가 탄 유모차를 밀며 뛰었다. 거리는 7Km 남짓. 여름엔 뛰다가 천변 물놀이장을 지나며 물놀이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사달이 났다. 크리스마스에 양가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마침 새벽에 눈이 떠지길래 일찍 하체 운동을 시작했다. 벨트 없이 중량 스쿼트를 하는데 어느 순간 허리가 벌어지는 느낌이 나며 시큰하다. 바로 운동을 멈췄지만 요통이 뻐근하게 올라오며 근 2주 간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혹을 떼야하는데 혹이 붙었다.


병원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중량 스쿼트를 왜 해요?” “직업이 운동선수예요?” “아니 그걸 왜 하는지 참” 엑스레이 사진을 보더니 머쓱해하며 말을 꺼낸다. “척추는 건강하네요.” 대기실에 순서가 꽤 밀렸는데 갑자기 강의를 시작하신다. 모형을 보여주다가 아예 일어나서 진료실에서 직접 시범까지 보인다. 강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척추에 부하를 주는 운돈는 다 안 좋다. 스쿼트, 데드리프트 모두 고중량으로 수행하면 부상을 당하지 않더라도 노화가 빨라진다. 프리 웨이트를 멈추고 헬스장에 가서 기구 운동을 하라. 열정적인 눈빛이 고맙다. 이제 또 운동 방법을 바꿔 봐야겠다. 보름을 쉬니 통증이 줄어서 어제는 재활 삼아 턱걸이 5개와 평행봉 7개를 한 세트로 묶어서 22세트를 했다. 강도는 낮지만 오랜만에 움직이니 개운하다.


지난 학기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몸과 마음의 관계에 관한 글을 읽었다. 심신이원론이란 마음과 몸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입장에서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이와 달리 심신일원론은 정신 현상이란 것이 모두 육체적인 사건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군 복무 시절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을 읽다가 군의관인 의무 중대장과 물질과 정신의 관계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이란 뇌에서 일어나는 단백질의 화학 작용에 불과하다고 하였는데 바로 심신일원론적 관점이겠다. 두 이론에서 모두 육신의 건강이 마음의 평화를 위한 필요조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의 유명한 시구가 있지 않은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한 가지 걱정은 복직 이후에 운동 시간을 마련할 문제다. 새벽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 그래도 그땐 애들이 좀 컸으니 좀... 낫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16화] 허탕에 허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