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하는 요리 수업

한 번쯤 참석해 보세요.

by 달초롱

저녁 8시 30분이 막 지났다. 2로 시작되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낮 동안에 오는 모르는 번호는 스팸인 경우가 많아 무시하고 넘어가는데 이 시간이면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응답'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여기 도서관입니다."

"네."

"궁중 디저트 만들기 신청하셨죠?"

'아! 네, 네."


혹시나 또 나를 약 올리는 전화라면, 얼른 끊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받았는데 기억이 났다. 작년 이맘때쯤 도서관에서 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었던 추억이 떠올라 문화, 행사 코너를 뒤적거렸지만 이미 마감이 끝난 상태였다. 거의 재료비만 들어가는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연령이 안되거나 시간이 마음에 안 들어 입맛만 다시다 대신 발견한 '취미를 찾아드려요'가 접수 중이었다. 10명 모집은 이미 차서 대기자로 올려 두고는 어차피 좀 멀다 싶어 잊고 있었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역시 기회는 두드리는 자에게 오는 것인가!


인원이 다 찼을 때는 간절히 원했다가, 막상 취소한 사람이 있다면서 나를 원하는 목소리에 망설여지는 못된 심보가 발동했다. 재료비가 만오천 원, 거리가 있어 차를 가져가고 싶은데 남편이 이미 찜한 상태, 대중교통으로는 한 시간 걸림, 수업이 3시간 소요라 하루에 할당된 자유시간을 다 끌어다 쓰는 셈이 된다. 요즈음 인생 모토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이다. 매번 거절할 핑곗거리를 찾다 보면 내 무덤 앞에서 못다 한 일들을 떠올려하며 아쉬워하지 않을까. 더 이상 머리를 굴리기 전에, 재료비를 입금했다.


아침부터 눈이 날렸다. 집 안에서도 매서운 추위가 느껴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30분 넘게 시간이 남았지만 버스를 탔다. 일찍 도착해서 도서관도 둘러보고 여유 있게 강의에 참석했다. 3년 발효된 유자절임청, 시중에는 쉽게 팔지 않는 향기로운 쌀가루로 만든 반죽, 식용꽃이 준비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한식 자격증을 준비하시면서 만드셨던 화전에 반했었다. 꽃을 먹는 것도 신기했지만, 하얀 떡을 바탕으로 알록달록한 자연의 색이 아름다웠다. 정작 어머니께서 자격증을 따신 이후로는 맛볼 수 없었지만 한 번씩 생각나던 별미였다. 이제는 내가 커서 우리 아이와 남편을 생각하며 만들고 있었다.


모양틀에 반죽과 교실에 은은하게 향이 퍼지고 있는 유자청을 넣고, 다시 반죽으로 덮어준다. 검은깨와 식용꽃으로 수를 놓듯 마음껏 재주를 펼쳐본다. 강사님께서 아이들도 좋아하는 힐링이 되는 작업이라고 하셨지만 창작이 쉽지는 않다. 어설프게 줄기와 꽃을 찢어 살포시 올려본다.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를 따라 그린 낙서판이 되었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가족들 이니셜에 하트도 그려보고, 아침에 밟았던 눈이 생각나 눈사람도 그려본다. 어느새 기고만장하여 초록 난에 청초하게 핀 꽃잎, 나비, 곰돌이, 상상하는 대로 꽃잎이 그림이 되어 떡에 올려진다.


다 같이 만들어 머릿수대로 나눠 갖는 줄 알았는데, 다들 본인이 만든 떡에 애정이 생긴 눈치다. 바로 사진을 찍어두거나 구석에 검은깨로 하트 표시, 일정한 꽃 모양으로 특허를 내는 분도 있었다. 사라져 가는 빈 모양틀이 아쉬워 한 개라도 더 달라고 옆자리에 굽신거렸다. 알고 보니 찐 떡을 틀에서 빼고 나면 또 작업을 해야 했다. 아직 큰 반죽 통이 한 개가 더 남아있다. 그림이 점점 간소화된다. 이제 새로운 아이디어는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해 둔 모양을 따라 하며 공장식으로 바뀌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유산지컵에 찜해둔 떡들을 넣어 상자에 담는다. 주인을 잃은 떡들이 몇 개 있어 한 개씩 입에다 넣었다. 폭신한 떡에 숨어있던 유자청의 새콤함이 입에서 퍼졌다. 용기 내어 수업에 참석한 나에게 주는 선물같이 느껴졌다. 가족들을 위해 사랑 한 상자를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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