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을 시작할 때이다
방 세 개와 화장실 두 개가 딸린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신축이라 그런지 발코니를 확장하고,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되자 네 식구가 살기에도 좋아 보였다. 신혼 때의 가구들을 대부분 처분하고 친정집에 있었던 터라 혼수 장만하듯 침대부터 옷장, 식탁, 냉장고, 세탁기, 각종 주방도구와 침구류 등을 새로 장만했다. 할부를 이용하면 한도 자체가 없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신용카드 덕을 봤다. 대리점에서 3D 인테리어로 안방 가구를 배치해 주는데, 골라둔 침대, 화장대, 옷장이 다 들어가지를 못했다. 결국 옷장은 군침만 흘리고 제외시켰다. 입주하는 날, 끝도 없이 나오는 사계절 옷 때문에 거울이 부착된 저렴한 슬라이딩 옷장을 급하게 주문해 작은 방에 두었다. 두세 달은 계속 쇼핑이 이어졌다. 이케아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다이소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건들이 있는지 자주 들락거렸다. 계절 용품이거나 당장 필요 없어진 물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납형 침대와 대피 공간, 지하에 있는 작은 창고를 활용할 수 있었다.
일주일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죠슈아 베커의 '삶을 위한 완벽한 몰입'을 읽었다. 집중력을 높여 주는 자기 개발서 책인 줄 알았는데, 미니멀리즘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미국 가정에는 평균 30만 개의 물건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집만 봐도 놀랍지 않았다. 책장, 소파, 화분, 스타일러, 공기청정기, 어항, 조화 등 남아 있는 벽면이 없었다. 서랍 안은 더 가관이다. 아기 때 잠깐 쓰던 코 흡입기, 전동 손톱 다듬기, 일주일 쓰고 처박아둔 마사지기, 피부 관리기 등 끝도 없다.
작가는 설레는 제품이 아닌 현재 삶을 증진시켜 주는데 필요한 제품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어떤 물건을 한 개만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 쓰지 않고 있다면 이미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수납형 침대에 있는 글로브와 신발장에 있는 자전거 전용 클릿 신발, 캐나다에서 산 스케이트, 결혼식장에서 입었던 원피스가 떠올랐다. 거의 10년 동안 쓰지 않은 채 가지고 다니던 것들이었다.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었고, 언젠가 다시 쓰일 날을 기대하며 소중하게 여겼다.
항상 더 갖고 싶다는 목마름만 있을 뿐, 적게 소유한다는 건 나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 제대로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이번엔 넷플렉스에서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아 있던 짐을 정리하던 중에 테이프로 꽁꽁 봉인된 박스에서 조슈아 어렸을 때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초등학교 때 풀던 숙제나 잡다한 종이 같은 것들, 하지만 몇십 년 동안 꺼내 보지도 않은 추억들이었다. 조슈아는 삶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그의 친구 라이언은 좀 더 방법이 획기적이다. 포장 이사 형식으로 모든 짐들을 박스에 담아 포장한 후 3주 동안 필요한 물건들을 꺼내 썼다. 박스의 80프로는 그대로 있었으며, 나중에는 박스에 뭐가 들었는지 기억도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물건을 덜 소유함으로써 불필요한 소비 (돈이나 정신까지도)를 막게 되었고,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물건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사 온 지 2년이 지났다. 버리는 것은 없고, 새로운 물건들이 더해져만 갔다. 공간이 부족하다며 더 큰 평수로 이사 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해볼까 한다. 어제는 아이가 더 이상 보지 않는 '공룡 유치원' 책들을 찍어 당근 마켓에 올려뒀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닌데도 또 욕심을 내어 비싸게 올렸나 보다. 옷은 이미 한차례 버렸지만 한두 벌씩 계속 나올 것 같다. 기부나 헌 옷 사장님에게 팔까 했지만 결심이 해이해지기 전에 쓸모 없어진 물건들을 바로 처분하기로 했다. 남편이 절대 안 된다는 셋째를 위한 수많은 장난감들도 제거 목록에 추가시켰다. 의미 있는 물건만 남은 삶은 어떨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