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지금이 좋아
"셋째가 갖고 싶어." 내 짝에게 잊을만하면 뱉어대던 말이다. 둘째가 놀아 달라고 떼쓰거나 친구와 놀다 헤어지며 서럽게 울 때, 아장아장 아슬하게 걸어가며 방긋 웃는 아기를 볼 때, 어린이집 친구 엄마에게서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때로는 길을 건너다가, 삶이 평화롭게 흘러갈 때면 한 번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픈 첫째가 어찌 될지 모르니, 혹시 우리가 일찍 명을 다해 둘째 혼자 짊어질 짐이 크지는 않을까, 새 생명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대본다.
남편은 아이를 좋아하지만 현실적으로 낳기도, 키우기도 어렵다고 반대한다. 하지만 정관 수술이 무섭다며 영구 피임을 미루는 덕분에 끊임없이 희망을 꿈꾼다. 매해 아직은 늦지 않았다며, 올해가 가면 정말 포기해야겠지, 태어나지 않은 셋째의 모습을 이제는 상상해 볼 수 없겠지, 더 절실해진다. 이제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한번 더 기회를 준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 속에 상상은 커져간다. 요즈음 읽고 읽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도 쉰이 넘어 아이가 둘이나 더 생겼다고 하지 않은가!
두 번의 임신은 입덧이 심해 거의 누워만 있었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산책도 하고, 사람들도 만날 거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면 될 테니까. 출산은 브이백으로 수중 분만을 할 거야. 대학교 때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거든! 그럼 날 때부터 순하고, 건강한 아이로 자랄 거야. 만약 딸이면, 정말 남편은 딸바보가 될까? 크면 아무래도 아들보단 딸이랑 수다 떨기 좋겠지. 그래도 나는 꾸밀 줄 모르는 엄마니까 아들이 한 명 더 있어도 좋을 거야. 나와 남편을 닮았지만 첫째도, 둘째도 다 다른 얼굴이잖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셋째가 보고 싶어.
그러다 둘째의 방학이 시작됐다. 주말까지 포함하면 2주가 되었는데, 시작도 전에 독감이 어린이집을 쓸고 갔다. 영재도 예외 없이 고열에 몸살로 며칠을 고생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물 한 모금 겨우 마시고 콜록거리며 누워 있는 아이의 신음 소리가 환청처럼 내 귀를 맴돌았다. 아이가 나을 때쯤, 수순대로 내가 하루 정도 앓아줬다.
몸이 가벼워진 우리는 매일 떠날 준비를 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밖에서 눈 놀이를 하고, 너무 추운 날에는 도서관, 박물관, 예약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낸다. 마침 남편 휴가와도 겹쳐 일박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집에 들어와 잠든 아이를 살며시 눕혔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어지럽혀진 거실을 정리하고, 누웠다.
남편에게 속삭였다. "셋째는 나의 착각이었어. 그동안 어린이집 보내고 편했었나 봐. 분명 너무 힘들어서 다시 엉망이 되고 말 꺼야. 지금이 딱 좋아." 내가 성장한 줄 알았다. 기분을 잘 다스릴 수 있고, 아이를 올바르게 훈육할 수 있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같이 있는 첫날부터 휘둘리고, 지쳐 버렸다. 몸이 힘들자 예민해졌다.
아무래도 셋째에 대한 기대는 이제 접어야겠다. 나는 아이를 돌보는 시간만큼 나만을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에 감사하자. 함께하고 있는 두 아이를 더 사랑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