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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초롱 Jan 16. 2024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되는 순간

셔틀과 기다림의 연속

매주 화요일은 하원이 한 시간 당겨진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요깃거리를 챙겨 15분 거리에 있는 롯데 백화점으로 향한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이름표를 찾아 붙이고,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외친다. "아! no work sheet 요" 이제 나에게 제한된 장소에서 2시간이라는 자유가 주어진다. 주로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같이 간 친구 엄마와 수다를 떨거나 매번 가져가기만 하는 책이 어떻게 생겼나 들추다 타이머가 울린다. 아이와 놀아줄 때는 하염없이 닫히는 눈꺼풀을 사수하며 멈춘 듯한 분침을 계속 곁눈질이 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여기는 비바람을 막아주고, 구경하고, 쉴 수도 있으니 다행이다.


작년 한 해는 체육 프로그램이 있는 센터에 다녔다. 낯을 가리고 주로 책을 읽으며 정적인 시간을 보내는 아들에게 신체활동을 시켜 주고 싶었다. 50분 동안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맞춰 놀이로 둔갑한 다양한 운동들을 맛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옆에서 지켜보다 아이의 적응이 끝나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가 아닌 선생님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필요한 분리였지만 건물 안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그나마 날이 좋으면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았지만 비가 오거나 날이 추워지면 옆 편의점으로 향했다. 자릿세 값으로 한 개를 덤으로 주는 음료수를 고르다 군것질까지 결제하다 보면 수강료 보다 쓸데없이 커지는 식비와 출렁이는 내 배가 걱정이었다.


주말의 하루 이상은 외출을 한다. 밖에 돌아다녀야 멈춘 듯한 시간이 흘러가니까. 보통 전날밤이나 당일에 장소를 정하기 때문에 예약을 해야 하는 장소는 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예약이 오픈되자마자 클릭에 성공한 부지런한 가족들에게도 변수는 생긴다. 새로고침을 해가며 취소된 자리를 기웃거린다. 이번에는 항공박물관의 어린이 공항 체험 티켓을 얻었다. 아이가 모형의 공항과 기내를 경험하는 동안 부모 한 명은 안에서 끝날 때까지 대기를 해야 한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나서자 부모들은 하나같이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붙잡고 싶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면서 부모는 자신의 삶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된다. 지난 30여 년간은 나만을 위한 선택을 했다. 매번 무언가를 배우지는 않았어도 늦잠을 자고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를 허투루 보내도 아쉽지 않았다. 학업과 일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등 힘든 일도 있었지만 여전히 내가 주인공이었다. 첫째가 태어났다. 아이의 수면, 건강, 먹거리, 즐거움을 챙기느라 제대로 잠을 자기도 쉽지 않았다. 6년이 지난 지금도 형태만 바뀌었지, 내 심장과 시간은 아이에게로 흐르고 있다.   


옆에서 잠든 아이의 잠꼬대와 뒤척임에 잠을 설친 하루가 시작된다. 장난감과 책 도서관을 다녀오고, 새로운 레시피를 찾아보며 음식을 만들고, 셔틀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좋아하는 장난감이 할인을 하는지 찾아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네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닐지도 모르는데, 혼자 기대하고, 실망한다. 무대를 양보한 아이의 시간에 집착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이 나왔다. "아차"


다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분리수면을 하고, 등원차량을 신청해 아침 시간을 확보했다. 특별 활동은 아이를 기다리면서 내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장소로 제한했다. 누군가를 위한 요리가 아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본다. 아이가 책을 고르면, 예약해 둔 내 책도 같이 챙긴다. 장난감 코너를 기웃거리는 대신에 책을 한 장 더 보고, 집중하기 힘든 날은 관심 가는 유튜브 방송을 보거나 쇼핑몰을 걸어본다.


내가 아이 대신 성장해 줄 수 없듯, 내 삶도 아이가 대신 할 수 없다. 내 것을 바로 챙겨야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바른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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